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코로나 피해 손실보상제 법제화 추진으로 채권 시장이 요동쳤다. 적자 국채 발행이 수급 불안으로 이어져 금리를 자극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2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2.2bp(1bp=0.01%) 오른 연 1.78%에 거래를 마치며 지난 2019년 11월 18일(연 1.781%)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국고채 3년물 금리 역시 지난주 금요일보다 1.3bp 상승한 연 1.006%에 마감했다. 장단기 금리 모두 상승세를 타는 가운데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심리적 저항선인 1%를 지난해 4월 29일 이후 처음으로 돌파했다.
채권 시장에서 금리 상승은 채권 가격이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의 재정 확대에 채권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셈이다. 앞서 정치권에서 소상공인 손실보상제에 대한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나왔던 22일에는 국고채 10년물이 전날보다 5.2bp나 오르기도 했다.
재정 확대를 위해 장기물을 중심으로 채권 발행을 늘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장단기 금리 차도 확대되고 있다. 이날 국고채 10년물과 3년물 간 금리 차는 77.4bp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계속 70bp대를 유지하고 있다. 장단기 금리 차 확대는 경기회복의 신호일 수도 있지만 기준 금리 인상 및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의 신호가 될 수도 있다. 증권 전문가들은 ‘구축 효과’에 대한 우려를 내놓고 있다. 구축 효과는 재정 지출 증가로 시장 이자율이 올라 민간 투자가 감소하는 것이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포퓰리즘으로 적자 국채가 늘면서 금리가 올라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정부의 재정 지출과 투자 규모가 늘어나 구축 효과가 고착될 경우 경기회복의 주체인 민간의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손실보상금 재원을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장기 금리 상승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은 내부에서는 중앙은행이 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방안은 이례적이고 제한적인 상황에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주열 총재도 이미 여러 차례 국채 매입으로 정부 적자를 보전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한은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손실보상금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진행 상황이나 규모 등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면서도 “금리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올해 통화정책 운영 방향에서 밝힌 대로 필요한 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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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들이 정부 ‘곳간지기’인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잇달아 확대 재정 편성을 압박하는 가운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적자 국채 발행을 무작정 늘릴 경우 경기 부양 효과보다 금리 왜곡에 재정 경직성이 심화되는 역효과가 더 커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23일 페이스북에서 “정부의 적자는 곧 민간의 흑자이고 나랏빚은 곧 민간의 자산”이라며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기재부를 거듭 ‘저격’했다. 민간 투자자에게 국채는 부도 우려가 없는 안전 자산인 만큼 올해 93조 5,000억 원 규모로 편성된 적자 국채 물량을 더 늘려 과감한 자영업자 손실 보상 및 4차 재난지원금 지급에 나서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애초에 기관투자가들이 흡수할 수 있는 국채 물량에는 한계가 있고 과도한 정부 지출이 시중에 풀리면 유동성 과잉으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한국은행의 국채 매입으로 확보된 막대한 자금을 시중에 풀 경우 즉각적인 통화량 증대로 이어지게 된다. 인플레이션 가능성과 함께 통화가치 절하로 인한 환율 상승까지 나타날 수 있다. 또 대규모 국채 발행으로 금리가 급변동하거나 국가신용 등급까지 강등될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리·물가 동시 다발 인상 우려
당장 가장 큰 문제는 국채 발행 확대가 시중 금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국채 발행을 늘리면 수급 불균형으로 국채 금리가 뛰면서(국채 값 하락) 시중 금리도 덩달아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 국고채 금리는 자금 조달 시장에서 벤치마크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 가계 및 기업의 자금 조달 금리도 함께 오르게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쇼크에 대응해 소상공인 및 중소·중견기업의 이자 상환을 유예해줄 정도로 금리에 예민한 모습을 보이는 정부가 오히려 금리 인상을 부채질하게 되는 셈이다. 이날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2.2bp(1bp=0.01%) 오른 연 1.78%에 거래를 마치며 2019년 11월 1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일단 금리가 뛰기 시작하면 가계와 기업의 부담이 커지면서 경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한 보험 회사 투자 담당 임원은 “그나마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 대출은 고정 금리 비중이 높아 상대적으로 버틸 여력이 있지만 기업 대출은 대부분 변동 금리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 고용과 투자에 충격을 받게 된다”며 “신용 등급 A등급 이하 기업들도 회사채 발행이 사실상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동성 확대 및 금리 인상은 곧장 물가 상승 압력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 지출 확대는 곧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부채비율 오르면 신용등급도 도미노 하락
적자 국채 발행을 늘려 부채비율이 급등하면 국가 신용등급 하락도 각오해야 한다. 당초 기재부는 올해 정부 부채와 국가 채무 비율을 각각 956조 원, 47.3%로 예측했지만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선심성 지원 요구를 모두 받아들일 경우 연내에 부채 1,000조 원, 부채 비율 50%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국가 재정 부실화에 따른 신용등급 하락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한국의 국가 채무 비율이 오는 2045년 99.6%까지 오를 경우 신용 등급이 2단계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칫 현재 ‘AA(S&P 기준)’인 국가신용 등급이 ‘A+’까지 떨어진다는 의미다. 이 경우 국채 발행 금리가 오르면서 시중 금리까지 덩달아 상승하는 ‘쓰나미’ 효과가 나타나는 한편 외국인 투자 자금이 국내 시장에서 한꺼번에 탈출할 가능성도 있다. 또 우리 국채를 보유한 외국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 국고채 잔액에서 외국인 투자가가 차지한 보유 비중은 16.7%로 약 123조 원에 이른다. 2006년 약 4조 원 수준에 불과했던 보유 물량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과거 글로벌 금융 위기와 같은 상황이 또다시 찾아와 외국인들이 ‘팔자’에 나선다면 우리 경제의 취약점을 자극하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
미래 자산 갖다 써 재정 경직성 확대
무리하게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위기 대응에 나서면 향후 국가 위기 대응 여력이 낮아지는 것도 문제다. 코로나19 위기로 늘어난 국채를 상환하느라 다른 필수 사업에 쓸 재정적 여유는 없어질 수도 있다. 적자 국채 상환을 위해 또 국채를 발행하는 일본의 상황이 남의 일만은 아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은 불가피하더라도 나중에 이 빚을 어떻게 갚을지 고려해야 한다”며 “기축통화 국가인 미국의 재정 정책을 함부로 따라가면 부채 비율이 급등해 해외 자금이 빠져나가는 등 아르헨티나와 같은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서일범·박효정 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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