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 있으려면 많은 게 바뀌어야 합니다. 한국의 인건비는 경쟁 해외 공장보다 비싸고 규제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크리스토프 부떼 르노삼성자동차 최고재무책임자)
한국에 투자한 외국계 기업 관계자들이 국내의 투쟁 지향적 노동조합과 높은 인건비, 경직된 노동 유연성, 세계 최고 수준의 규제 등 사업 환경에 대한 쓴소리를 쏟아냈다. 한국산업연합포럼이 28일 ‘외국계 투자기업 관점의 한국 경영·투자환경 평가 및 제언’을 주제로 개최한 ‘산업발전포럼’에서다. 이날 포럼에는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 부떼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외국계 기업의 최고위급 인사들이 이례적으로 참석해 작심한듯 발언을 이어갔다.
지난해 노조의 파업과 이에 따른 생산 차질로 흑자 전환에 실패한 카젬 사장은 “수요처에 제때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 여부는 투자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인데 한국에서는 파업이 공급의 안정성을 저해한다”며 “투자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미국은 임단협 협상 주기가 4년인 데 비해 한국은 1년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파업과 쟁의행위의 장벽이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협력 업체 소속 근로자 불법 파견 혐의로 출국 금지 상태인 카젬 사장은 경직된 노동 유연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인력을 유연하게 전환 배치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파견 근로의 제한 때문에 비용이 증가한다”며 “잦은 정책 변화도 투자 결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세계경제포럼 조사를 보면 한국의 종합 경쟁력은 13위지만 노동시장은 경쟁력은 51위, 노동유연성은 97위라는 것이다. 이날 함께 발표한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도 “한국은 정부 규제로 인한 행정 비용이 크고 세금도 경쟁국인 싱가포르와 홍콩 대비 훨씬 높다”고 했다.
부떼 르노삼성 CFO는 한층 더 강한 어조로 한국의 사업 환경을 비판했다. 그는 “한국의 규제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에 최악이고 모든 국가 중에서 최고 수준”이라며 “법인세 등은 글로벌 동향과 반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르노의 스페인 공장과 한국 공장을 구체적으로 비교하기도 했다. 부떼 CFO는 “스페인의 인건비는 부산 공장의 62% 수준으로 스페인 공장에서 차량을 생산하면 부산 공장보다 1,100달러(123만 원) 정도 더 싸다”며 “부산 공장이 생산 볼륨을 가져가려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르노삼성은 지난해 최악의 생산량을 경험했고 수익 하락은 엄청났다”며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르노삼성의 생산량은 11만 6,166대에 그쳐 2019년(17만 7,450대)보다 34.5% 급감했다. 10.5% 늘어난 내수를 제외하면 수출 물량은 같은 기간 9만 591대에서 2만 227대로 77.7% 쪼그라들었다.
부떼 CFO는 “정부 자금 지원의 범위가 지금보다 늘어나고 세금이 줄어야 한다”며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한국에서 기업을 하려면 모두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한국의 법인세율(27.5%)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3.5%에 비해 높은 수준이고 재산세율은 3% 수준으로 스페인(2%), 터키(1%)보다 훨씬 높다.
/박한신 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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