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차기 총리로 지명된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8∼9일(현지시간) 이틀 일정으로 내각 구성을 위한 2라운드 정당별 협의에 돌입했다.
4∼6일 사흘간 진행된 1라운드 협의가 각 정당의 지지 가능성을 탐색하는 차원이었다면 이번에는 정책 목표를 포함한 국정 운영 방향을 공개하고 최종적인 지지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드라기 전 총재는 8일 오후 소수 정당 및 무소속 의원 그룹을 만난 데 이어 9일에는 의석 수가 많은 주요 정당 대표자들을 잇따라 접촉한다.
2라운드 협의 첫날에는 차기 내각의 성격과 정책 우선순위의 얼개가 공개됐다.
그는 차기 내각이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범대서양주의'와 친(親)유럽연합(EU)에 기반한 정부가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자신이 ECB 총재로 있을 당시 지지한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 공동 예산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독일과 프랑스가 2018년 제안한 유로존 공동예산제는 EU 예산과 분리된 별도의 유로존 공동 예산을 만들어 금융·재정 위기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자는 것으로, 유로존 통합을 강화하는 조치로 여겨진다. 이탈리아는 그동안 재정 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이를 반대해왔다.
그는 또 차기 내각의 5대 주요 국정 과제로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보건 위기 대응과 백신 접종 완료 ▲ 일자리 창출 ▲ 지속가능한 친환경 경제시스템 구축 ▲ 기업 지원 ▲ 코로나19로 뒤처진 학사일정 정상화 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관료주의에 찌든 공공 행정과 불공정하고 복잡한 세제, 고비용 저효율 사법제도 등을 3대 개혁 과제로 언급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2라운드 정당 협의까지 마무리한 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을 다시 찾아 면담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그간의 협의 결과를 토대로 의회 과반 지지를 받는 내각 구성이 가능할지 여부를 보고하게 된다.
그 시점은 이르면 10∼11일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라운드 협의 결과 원내 1당인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M5S)과 중도 좌파 성향의 민주당(PD), 중도 정당인 생동하는 이탈리아(IV) 등 이전 연립정부 3당은 물론 동맹(Lega)·전진이탈리아(FI) 등 야권 우파연합 정당들도 '드라기 내각'에 우호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드라기 전 총재가 내각을 어떻게 구성할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애초에는 위기 극복에 초점을 맞춘 '전문 관료 내각'이 될 것으로 점쳐졌으나 지금은 폭넓은 의회 지지에 기반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관료와 정치인이 조화를 이룬 '하이브리드 내각'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오성운동은 10∼11일 24시간 동안 드라기 내각을 지지할지에 대한 당원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부패한 기성 엘리트 정치 타파를 기치로 내건 오성운동은 당원이 중심이 된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2009년 창당 이래 정책·당 운영 방향 등 핵심 사안에 대해 전체 당원의 의견을 묻는 온라인 투표 시스템을 운영해왔다.
오성운동은 상·하원 전체 의석의 30%가량을 점하는 원내 최대 정당으로, 드라기 내각이 안정적인 의회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당은 마타렐라 대통령이 지난 3일 드라기 전 총재를 차기 총리로 지명하자 지지 불가 입장을 천명했으나 지난 6일 1라운드 협의를 마친 뒤 태도를 바꿔 지지 가능성을 열어놨다.
오성운동은 2018년 6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극우 정당 동맹과, 그 이후에는 민주당·생동하는 이탈리아와 각각 연정을 꾸려왔다. 두번째 연정은 생동하는 이탈리아가 지난달 13일 정책적 이견을 이유로 이탈하면서 붕괴했다.
/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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