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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검사장 모겐소 일생 담은 책 ...윤석열이 발간사 쓴 이유는

대검, 모겐소 전기 전국청 배포

책 주요내용 및 시사점 정리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사퇴하기 약 일주일 전 대검찰청 참모들에게 전국 검찰청에 책 한 권을 배포하라고 지시했다. 책은 뉴욕검찰청 검사장이었던 고 로버트 모겐소의 일생을 정리한 전기(傳記)다. 182페이지 제본으로 말끔하게 만들어진 이 책의 제목은 ‘미국의 영원한 검사 로버트 모겐소’다. 대검 국제협력담당관실에서 2020년 7월 처음 발간됐지만 배포되지는 않았다. 원래 발간 직후 전국 검찰청에 배포될 예정이었으나 저작권과 예산 확보 등을 추가 검토하느라 시간이 걸렸고 이후 윤 전 총장 징계 청구 국면 등 굵직한 현안들로 배포 계획은 잠정 중단됐다. 그러다 윤 전 총장 지시로 책은 재인쇄에 들어갔고, 그가 사퇴한 후 책은 지난 12일부터 전국 검찰청 일선 검사들에게 배포되고 있다. 발간사를 통해 윤 전 총장은 사퇴 후에도 후배들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긴 것이다.(▶관련기사:[단독] "거악 척결이 검사의 존재 이유" 남긴 윤석열)

윤 전 총장은 발간사에서 “근래 한국에서는 각종 법령 제·개정 등을 통해 검사의 책무에 대해 수많은 문제 제기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검사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성찰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모겐소는 국경과 시간을 초월해 검사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시사와 통찰을 제시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모겐소는 ‘거악에 침묵하는 검사는 동네 소매치기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외치면서 거악 척결을 강조했다. 그는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판사, 정치인, 대기업 등 거대 사회경제 권력 부패에 대해 우직하게 수사를 이어나갔다. 무모하다고 비춰질 수도 있는 그의 법 집행 의지가 결과적으로 미국의 지역사회와 시장경제에서 법치주의가 온전히 작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책이 나올 무렵인 지난해 7월은 검찰의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달을 때였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고 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채널A 사건’ 관련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윤 전 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면서 추윤(秋尹) 갈등이 고조됐다.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윤 전 총장 발간사에는 후배들에게 ‘중심을 잡자’는 메시지를 던진 게 읽히기도 한다.

약 반 년 후 윤 전 총장이 책 배포를 다시 지시한 것도 검찰을 둘러싼 현안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여당의 중대범죄수사청 설립 추진 이슈였다. 여당이 중수청 논의에서 자주 비교했던 해외 사례로는 미국의 연방경찰(FBI)이었다. 미국은 FBI만 수사하지 검사들은 그렇지 않다는 식의 잘못된 주장에 대해 이 책은 철저하게 ‘팩트체크’를 하기도 한다. 윤 전 총장이 책을 내자고 한 것은 모겐소의 일생을 통해 미국 검사들이 중대범죄를 직접 수사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 제도의 과도기 속 윤 전 총장은 자신을 비롯한 모든 검사들이 공부를 해야 할 시점이라 봤고, 공부 자료 중 하나로 모겐소의 일생을 알아보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책을 발간한 것이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여지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윤 전 총장이 말한 사퇴의 주요 사유가 여당의 중수청 추진이었는데, 이를 사실상 반박하기 위해 책을 낸 것은 윤 전 총장이 여당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시각에서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윤 전 총장 사퇴 후 책을 내도록 하면서 정치적 오해가 없도록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모겐소는 1961년 뉴욕 남부 연방검사장으로 취임했고 1975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맨해튼) 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지냈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검사로 잘 알려져 있다. 1919년 7월 31일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났고 2019년 7월 21일 생을 마감했다.

책 ‘미국의 영원한 검사 로버트 모겐소’는 모겐소의 뉴욕남부 연방검찰청 검사장 재직 시절과 뉴욕 지방검찰청 검사장 재직 시절을 주로 담았다. 또 모겐소의 가족 및 유년기, 결혼과 군 복무, 로스쿨 진학 및 사회 초년생 시절, 그리고 은퇴 후 삶도 정리했다. 아울러 모겐소에 대한 미국 일각의 비판도 언급돼 있다. 끝으로 그의 삶을 통해 우리나라 검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사점은 무엇이 있는지를 적었다.

2009년 모겐소 전 뉴욕지검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1961년 뉴욕남부 연방검사장 취임…'넘사벽'이었던 마피아들 소탕


모겐소는 1961년 뉴욕남부 연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취임해 17개월 재직했다. 이 책은 모겐소의 당시 주요 성과로 뉴욕 마피아들을 소탕한 것을 꼽는다. 그는 100명 이상의 마피아를 기소했다고 한다. 1960년대 뉴욕은 마피아가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겐소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피아 두목들을 전격 기소했다. 모겐소가 기소한 마피아 중에는 앤소니 코랄로라는 인물이 있었다. 코랄로의 혐의는 자신이 연루된 사건을 묻기 위해 담당 연방 부장검사였던 자에게 3만5,000달러 뇌물을 준 것이었다. 코랄로는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이같은 수법으로 법망을 피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모겐소가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모겐소는 코랄로를 전격 기소했고 코랄로는 교도소에서 2년 실형을 살았다.

모겐소가 뉴욕남부 연방검사장으로서 기업 부패 범죄 대응을 위해 증권 범죄 전담 부서를 설립한 것도 업적으로 평가된다. 이는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다. 모겐소는 전담부를 만들어 1960년대부터 월스트리트 금융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를 처음 시작한 것이다. 그의 취임 전까지만 해도 미국 검찰은 복잡한 기업 범죄 사건보다는 소규모 다단계 범죄를 위주로 수사했다고 한다. 뉴욕남부 연방검찰청은 오늘날까지도 월스트리트의 ‘저승사자’라고 불린다.

케네디→닉슨 정권 바뀌고 사퇴 압박에도 버틴 모겐소


모겐소가 뉴욕남부 연방검사장에서 1969년 사임한 것은 정권이 당시 존 케네디 대통령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으로 바뀌면서다. 닉슨 대통령은 케네디 대통령의 임명으로 임기를 시작했던 모겐소를 반길 리가 없었다.

책에 따르면 당시 모겐소는 사퇴 압박이 들어오자 “후임자를 검사들이 납득할 수 있는 유능한 인물로 교체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하면서 끝내 사퇴했다. 모겐소가 보기에는 닉슨 대통령이 지명한 후임자는 그저 정권과 정치적 성향이 맞을 뿐 실력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고 모겐소는 짧은 기간 동안 정계에 진출했다. 뉴욕남부 연방검사장 사임 후 1년 뒤인 1970년 그는 케네디 대통령 동생 로버트 케니티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뉴욕 주지사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그 전에도 모겐소는 1961년 뉴욕 주지사에 출마했던 적 있지만 떨어졌고 1962년 다시 뉴욕남부 연방 검사장으로 복귀했다. 두 차례 선거 모두 실패였다.



1988년 모겐소 전 뉴욕지검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AP=연합뉴스


특수 수사 전담부 신설·전문화…임기 끝까지 거대은행 사건 수사


이후 모겐소는 1975년 1월 1일 뉴욕지검장이 됐다. 미국은 지방검사장은 4년에 한 번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데, 모겐소는 1975년부터 2009년까지 장장 35년을 뉴욕지검장으로 재직했다. 주지사 선거는 떨어져도 지검장으로서는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2009년 임기도 그가 “더 이상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종료됐다. 책은 “이와 같이 장기간 지검장으로 재직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로스앤젤레스 지방검사장의 경우 재임기간은 1850년부터 현재까지 3.5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모겐소는 뉴욕지검장 재임기간 동안 약 350만 건의 수사를 지휘했다고 한다. 매년 10만 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한 것이다. 특히 1990년대 후반에는 뉴욕지검이 수사한 사건 4건 중 3건 꼴로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 미국에서는 상당히 높은 유죄율도 기록했다고 한다.

모겐소는 뉴욕지검장으로서 검사들의 수사 능력을 키우고자 했다. 그는 뉴욕지검장 임기 초기 한 명의 검사가 작은 사건이어도 시작부터 끝까지를 담당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통상 대부분 사건을 지역경찰이나 연방경찰(FBI)이 수사하지만, 모겐소는 1970년대 당시의 뉴욕지검의 열악한 상황을 고려해 효율적 사건 처리를 위해 이같은 방침을 잡았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뉴욕지검은 검사들이 200명이 안 됐고 예산도 많이 부족해 사건 처리에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후 모겐소는 뉴욕지검 규모를 키워나가면서 특수 수사를 담당하는 수사부를 꾸리기도 했다. 수사부는 자금세탁 및 조세범죄, 금융범죄, 부패범죄 등을 맡아 검사들이 직접수사를 하는 곳이다.

이외에도 모겐소는 검찰 내 혁신을 시도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는 금융범죄 수사를 위해 회계사를 수사관으로 처음 채용했고, 오늘날 포렌식 수사의 기초가 된 DNA 감식 등도 처음 시도했다. 다국적 은행 및 기업들에 대한 수사를 위해 해외 당국과 협력하는 국제공조수사도 선도했다.

일례로 모겐소의 임기 마지막 해였던 2009년 로이드 은행과 크레딧 스위스 은행의 이란 경제 재재 위반 사건이 있었다. 영국계 로이드 은행과 스위스계 크레딧 스위스 은행은 미국의 이란 경제 재재를 어기고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대량살상무기 제작과 관련된 이란 기업들에 수백만 달러의 자금 거래를 해왔다. 뉴욕지검은 각국 수사당국과 공조수사를 하는 등 해당 은행들이 숨기려고 한 자금 거래 흔적들을 찾아내 기소했다고 한다. 로이드 은행은 합의금으로 3억5,000만 달러를, 크레딧 스위스 은행은 5억 3,600만 달러를 내야 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이 불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검찰의 직접수사·수사지휘는 당연하지만…한국은 거꾸로


책의 핵심 시사점은 현재 우리나라는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려 하지만 모겐소를 통해서 본 미국 검찰의 역사는 반대로 검사의 수사 역량을 강화해왔다는 것이다. 특히 모겐소가 검사 한 명이 수사에서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사건을 전담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 수사·기소 분리 방침과 반대로 수사·기소의 유기적 협력을 강조한 조치기 때문이다.

이어 여권에서는 미국의 검찰은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자주 했지만 이 책은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도 지적한다. 뉴욕지검은 크게 재판부, 항소부, 수사부 및 여러 국과 부서로 나뉘어 있다. 여기서 수사부는 우리나라 특수 수사 및 인지수사 등 직접 수사를 담당한다. 우리나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와 같다. 모겐소가 뉴욕지검장으로 있으면서 직접 만든 부서다. 수사부는 검사들을 필두로 검찰수사관, 파견경찰관, 회계분석팀, 디지털 포렌식팀 등과 함께 금융범죄, 공직부패 범죄, 조직범죄 등 여러 분야의 수사를 도맡는다. 우리나라 검찰의 특수 수사 부서들은 작아지는 추세인 반면, 뉴욕지검의 경우 꾸준히 전문화를 도모했다고 한다.

특히 수사부는 각 범죄별로 수사국을 설치했는데, 예를 들어 ‘금융수사국’은 금융범죄를 전담한다. 이처럼 모겐소는 주요 경제 사건에 대해서는 검사의 직접 수사를 필수로 여겼다.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합수단을 폐지하면서 ‘거꾸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현재 뉴욕지검 수사부는 우리 합수단이 해왔던 것과 사실상 동일하게 수사를 한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관계기관들로부터 범죄 정보를 받고 수사를 개시한다. 합수단도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등과 협업 수사를 했었다.

또 뉴욕지검 재판부는 우리나라 검찰 조직으로 치면 형사부와 공판부를 합친 부서다. 뉴욕지검 재판부는 뉴욕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받으면 수사를 지휘하고 공소제기 및 유지를 한다. 이 역시 국내 제도가 형사부 검사들의 경찰 수사지휘를 막는 것으로 바뀐 것과 정반대다.

한편, 책 ‘미국의 영원한 검사 로버트 모겐소’는 우리나라 형사사법시스템 변화와 관련한 시사 외에도 ‘공익의 대변자’로서의 검사상을 말하며 통찰을 제시하기도 한다. 모겐소는 자신의 잘못도 수긍하고 바로잡으려 했다는 사례를 책 말미에 설명하면서다.

1989년 이른바 ‘센트럴파크 5인 사건'은 5명의 흑인과 라틴계 남성이 맨해튼 센트럴파크를 조깅하던 여성을 폭행하고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경찰 조사에서 5명은 모두 범행을 자백했고 피해자는 상황을 기억하지 못했다. 중형을 받은 5명이 복역 중이던 2002년, 갑자기 다른 교도소에 있던 연쇄 강간·살인범이 ‘센트럴파크 5인 사건’의 진범이라고 자백했다.

모겐소는 이 연쇄 강간·살인범의 자백이 사실인지 DNA 조사를 했고, 자백의 내용과 사건 관계가 일치하다고 판단했다. 직후 모겐소는 기존 5명의 피혐의자들에 대해 직접 재심을 신청했다. 2002년 5명은 모두 무죄를 받고 13년만에 석방됐다. 이 책은 “검사는 법치주의라는 원칙에 대한 투철한 헌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헌신이 검찰은 잘못을 범할 수 없다는 ‘무오류의 확신’으로 변질돼서는 안 되며, 검사는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독단에 빠지지 않고 과거의 오류를 바로잡을 줄 아는 겸허함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관련기사: 윤석열이 말한 '화이트칼라 수사 아버지' 모겐소는? '미국의 영원한 검사')

/손구민 기자 kmso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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