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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이 '일 나가라'한 덕분"…일흔넷 위트·겸손에 오스카 매료

■윤여정, 오스카 여우조연상

"내가 대배우들과 어떻게 경쟁을…

운이 더 좋아 이 자리 서있을 뿐

정말 먹고 살려 연기했더니 영광"

품격·센스 있는 수상 소감 돋보여

일약 스타·타향살이·생계형…

55년 연기, 굴곡의 삶서 톱배우로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후 트로피를 들고 기념 촬영에 응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5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트로피의 주인이자 한국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수상자가 된 윤여정(74)의 배우 인생은 결코 꽃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르막 내리막이 뚜렷한 굴곡 가득한 길에 가까웠다.

올해로 연기 데뷔 55년 차인 충무로 노배우 윤여정은 대학 시절 방송국 아르바이트 중 지난 1966년 TBC 탤런트 공채에 합격하면서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신인이었지만 연기력이 또래 중 단연 돋보였다. 1971년 MBC 드라마 ‘장희빈’의 타이틀 롤을 맡아 톱스타 반열에 올랐고 같은 해 김기영 감독의 ‘화녀’로 영화계에 데뷔하자마자 대종상 신인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배우 윤여정의 1971년 스크린 데뷔작 화녀. /사진 제공=디자인소프트


충무로 데뷔하자마자 여우주연상 받았지만…


놀라운 신예의 등장에 충무로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배우 인생에 빛이 들자마자 결혼을 택한 그는 영화계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미국으로 떠났다. ‘충무로 기대주’ 타이틀을 버리면서 선택한 삶이었으나 타향살이는 쉽지 않았다. 결국 힘든 삶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배우가 됐다. 이혼 후 홀로 키우게 된 자식들을 위해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생계형’ 배우였다. ‘여우주연상’ 경력자의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작은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행히 ‘천재 감독’ 김기영이 한눈에 알아봤던 연기력은 녹슬지 않았다. 오히려 독한 마음 자세까지 더해지니 연기는 더 깊어졌고 폭이 넓어졌다.

‘바람난 가족(2003년)’ ‘여배우들(2009년)’ ‘하녀(2010년)’ ‘다른나라에서(2011년)’ ‘돈의 맛(2012년)’ ‘장수상회(2015년)’ ‘계춘할망(2016년)’ ‘죽여주는 여자(2016년)’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짐승들(2020년)’ 등 전통적 어머니부터 폭력 집단 대모, 성매매 노인까지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여 후배들의 귀감이 됐고 감각적인 유머 센스와 삶에 대한 성찰로 젊은이들에게는 노년의 ‘워너비’가 됐다. 그렇게 오르막 내리막 가리지 않고 열심히 걸어온 연기 인생 55년. 그 기나긴 여정 끝에 눈부시게 황홀한 아카데미 트로피가 기다리고 있을 줄을 윤여정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영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과 출연 배우들. /사진 제공=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출연 후 트로피 쇄도…반응은 늘 “얼떨떨해”


윤여정은 한국계 미국인 감독 정이삭의 영화 ‘미나리’ 속 할머니 순자 역으로 지난해부터 세계 각지 영화제에서 연기상 트로피를 넘치도록 받았다. 무려 35관왕이다. 하지만 윤여정의 소감은 항상 “놀랍다” “믿기지 않는다” “얼떨떨하다”였다. 수상 세례의 마지막 화룡점정이 된 아카데미 무대에서도 그의 소감은 겸손했고 특유의 유머로 가득했다.

‘미나리’ 제작사인 A24의 설립자이기도 한 브래드 피트의 호명에 무대로 올라간 윤여정은 “드디어 브래드 피트를 만났다. 우리가 영화를 찍을 때 어디 있었냐”는 농담을 건넸다. 이어 그는 “아시다시피 나는 한국에서 왔고, 윤여정이다. 유럽 분들은 제 이름을 ‘여영’이나 ‘유정’이라고 부르고는 하는데 오늘만은 여러분 모두 용서해드리겠다”며 좌중에 웃음을 선사했다.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수상자인 대니얼 컬루야와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배우이자 싱글맘·워킹맘 “두 아들 고맙다”


두 아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항상 내게 일하러 나가라고 했다. 이 모든 게 아이들의 잔소리 때문이다. 열심히 일했더니 이런 상을 받게 됐다”고 말해 배우이기 이전에 싱글맘이자 워킹맘으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의 결과물을 자식들과 함께 공유했다.

주변에 대한 진지한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윤여정은 ‘미나리’에 함께 출연한 배우 한예리, 스티븐 연, 앨런 김, 노엘 조 등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는 모두 가족이 됐다. 특히 정이삭 감독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설 수 없었다. 우리의 선장이자 나의 감독이었다.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늘날 배우 윤여정을 있게 한 김기영 감독도 언급했다. 윤여정은 “나의 첫 번째 영화를 연출한 첫 감독”이라면서 “그는 천재 감독이었다. 살아 계신다면 수상을 기뻐해 주셨을 것”이라며 영광의 무대에서 김기영 감독의 이름을 불렀다.

무엇보다 윤여정의 수상 소감에서는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들에 대한 겸손한 인사가 돋보였다. 그는 “후보 다섯 명은 각자 영화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했기에 경쟁으로 볼 수 없다. 내가 운이 더 좋아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는 윤여정과 함께 마리야 바칼로바(보랏2 서브시퀀트 무비필름), 글렌 클로스(힐빌리의 노래), 어맨다 사이프리드(맹크), 올리비아 콜먼(더 파더) 등이 올랐다. 특히 1947년생 동갑내기 배우인 클로스를 향해 “내가 어떻게 글렌 클로스 같은 대배우와 경쟁을 하겠나”라며 남다른 경의를 표했다.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 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외신 “새 역사 쓴 배우”


시상식 후 진행된 간담회에서도 윤여정은 겸손했다. 그는 “친구들은 제가 상을 받는다고 했지만 믿지 않았다. 인생을 오래 살아서, 배반을 많이 당해서 그런지 수상을 바라지 않았다”며 “배우는 편안하게 좋아서 한 게 아니었다. 절실해서 연기를 했고 정말 먹고 살려고 연기를 했다. 그냥 많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윤여정의 수상 소식에 외신들도 호평을 더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익살스러운 할머니를 연기한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전했고, 로이터 통신은 “수십 년간 한국 영화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배우”라며 “재치 있으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큰 캐릭터를 연기해왔다”고 전했다.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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