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 금지 의혹’ 수사 과정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한때 ‘차기 검찰총장 1순위’에서 헌정 사상 첫 ‘피고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전락한 것이다. 여권에서조차 ‘결단’을 요구하는 등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있으나 이 지검장은 ‘명예 회복을 하겠다’며 이른바 ‘버티기’ 모드에 돌입했다.
수원지검 수사팀(팀장 이정섭 부장검사)은 12일 직권남용 권리 행사 방해 혐의로 이 지검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기소를 권고한 지 이틀 만이다. 이 지검장에 대한 기소는 수사팀이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직무대리 발령을 받아 서울중앙지법에서 이뤄졌다. 이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규원 검사 사건과 병합하기 위한 조치다. 수사팀은 이날 이 지검장과 이 검사,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과 함께 재판을 받도록 법원에 사건 병합 신청을 냈다.
이 지검장은 직권남용 권리 행사 방해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에는 이 지검장이 지난 2019년 6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있을 당시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을 수사 중이던 수원지검 안양지청 지휘부에 전화를 걸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1번지’ 서울중앙지검의 수장이 재판에 넘겨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여권조차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등 선을 긋는 모습이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본인이 요청한 수사 심의 결과 기소 권고가 나왔기 때문에 결단이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밝혔다. 사실상 자진 사퇴를 종용한 셈이다. 하지만 이 지검장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서 당시 수사 외압 등 불법행위를 한 사실이 결코 없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 그는 오히려 “재판 절차에 성실히 임해 진실을 밝히고 대검 반부패강력부의 명예 회복이 반드시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사실상 ‘사퇴’를 거부했다.
그동안 검사장 이상의 고위 인사가 수사를 받을 경우 후배 검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옷을 벗고 ‘야인 신분’으로 대응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 지검장이 ‘명예 회복’을 강조한 만큼 스스로 물러나지는 않을 것으로 법조계는 내다봤다. 이 지검장이 지하 주차장으로 출근하던 평소와 달리 전일 서울중앙지검 정문으로 출근한 것은 청와대·여권에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다만 이날은 기소 등을 의식한 듯 하루 연차를 내고 서초동을 비웠다.
차기 검찰총장 인선 직후 대대적 인사를 앞두고 이 지검장이 재판에 넘겨지면서 법무부·대검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대표적 친(親)정부 검사로 꼽히는 이 지검장을 유임시키거나 대검 차장, 서울고검장 등으로 승진시키면 ‘여론마저 무시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찰 내부에서도 ‘문제가 있는 인사가 고위직을 유지하면 안 된다’는 거센 반발도 일 수 있다. 법무부가 선제적으로 이 지검장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징계를 청구하는 이른바 ‘토사구팽’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 법조계 안팎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전날 이 지검장의 거취에 대해 “기소돼 재판을 받는 것과 직무 배제 또는 징계 이런 것은 별도 절차다. 기소된다고 해서 모두 징계를 내리는 것도 아니고 별개로 감사도 가능하다”고 선을 그은 만큼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이진석 기자 lj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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