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가상자산) 가격이 급등락을 거듭하면서 여야가 시장 규제와 투자자 보호를 위한 법안을 대거 쏟아낼 예정이다. 정부가 암호화폐를 금융 상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200개에 달하는 거래소가 생겨난 뒤 출금 불가와 다단계 사기 등이 속출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당 차원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가운데 여야 의원들의 법안이 우후죽숙처럼 발의될 경우 규제 법안도 난립하며 시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국회에 따르면 민주당 김병욱·양경숙 의원,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 등이 조만간 각각 암호화폐 시장 정비와 투자자 보호책을 담은 가상자산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이 지난 9일 관련 법안을 발의한 뒤 일주일 만에 세 건이 추가로 나오는 것이다. 여야가 암호화폐 관련 법안을 줄줄이 발의하면서 국회도 상임위를 열어 투기 규제와 투자자 보호를 위한 법안 마련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양 의원은 ‘가상자산 산업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가칭)’을 발의해 금융위원회가 구체적인 요건을 마련해 가상자산사업자를 인가하고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에 벌칙을 부과하는 내용을 포함할 계획이다. 김 의원이 발의할 법안은 내부자거래 등 불공정거래를 방지하면서도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내용이 담긴다. 강 의원이 발의할 법안에는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자본금 규제와 불공정행위 제재 등 규제 방안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게 된다. 강 의원은 “2030세대를 중심으로 투자자 사기 행위가 늘어나고 있다”며 “선진국처럼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암호화폐 규제법안 난립]
금융상품 명시돼야 규제 가능한데
금융위 "상품 아니다" 입장 고수
금융상품 명시돼야 규제 가능한데
금융위 "상품 아니다" 입장 고수
여야가 앞다퉈 암호화폐 투자자 보호와 시장 규제 법안을 내놓을 예정인 가운데 정작 금융위원회가 암호화폐가 금융 상품이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법안 심사 과정에서 정부와 여야 의원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암호화폐를 투자 대상이 아니어서 보호할 수 없다는 정부와 암호화폐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여야 의원 간의 팽팽한 줄다기가 이어질 경우 암호화폐 관련 법안이 자칫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가 다음 주부터 내놓는 암호화폐(가상자산) 관련 법안은 가상자산사업자인 거래소와 투자자를 보호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더 이상 손을 놓았다가는 거래소 폐쇄 등 대규모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반영됐다. 현재 암호화폐의 일간 거래액은 20조 원으로 국내 주식시장 거래액을 추월할 정도로 팽창된 상태다. 하지만 국내에는 주식을 매매하는 거래소가 한국거래소 한 곳인 반면 암호화폐는 약 200곳에 기준을 알 수도 없는 암호화폐들이 무더기로 상장돼 거래되는 상황이다. 전산 장애로 거래가 수시로 멈추고 매도 후 출금이 안 되는 사고가 연일 터지고 있고 심지어 암호화폐가 다단계 수단으로도 변질돼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까지 나섰다. 암호화폐 거래 투자자의 약 65.5%(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기준)가 상대적으로 자산이 낮은 2030세대로 투자 피해를 보면 경제적 회복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에 국회가 암호화폐 거래소와 매매에 대한 강한 규제법을 마련해 시장을 조성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양경숙 의원이 발의할 예정인 가상자산법 제정안은 △가상자산사업자의 인가 요건 △가상자산사업자 의무 규정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내부자거래·시세조종 등 불공정 거래 금지 및 가상자산업 감독 △가상자산업 관계 기관 △벌칙 규정 등을 골자로 한다. 또 양 의원은 가상자산과 관련된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 시세조종, 부정 거래, 시장 질서 교란 등 불공정 거래 행위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았다.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병욱 의원도 가상자산 관련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김 의원은 산업 육성에 방점을 찍는 동시에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강한 규제책을 내놓는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다음 주 발의할 법안은 금융위 산하에 ‘가상자산발행심사위원회’를 두는 방안을 담을 계획이다. 가상자산사업자가 가상자산을 발행하려면 금융위가 정하는 거래 안정성 등을 승인받아야 하는 규정을 신설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자본금 규제와 거래를 위한 예치금 의무화, 시세조종 행위 처벌 등도 명시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이용우 의원도 금융위 인가를 의무화하고 사업자에게 신의성실의원칙, 이해 상충 관리 의무 등을 부여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법안이 발의되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곧바로 법안 심사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 같은 법안으로 투자자 보호가 어렵다는 점이다. 현행 금융소비자보호법은 자본시장법에 따른 금융 상품에 대해서만 사업자의 설명 의무와 불공정 영업 행위 금지 등을 적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본시장법에 암호화폐가 금융 상품으로 명시돼야 투자자 보호를 위한 행정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는 암호화폐에 대해 ‘금융 상품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국회가 법안을 마련해도 정부가 뒷짐을 지면 투자자 보호는 요원해진다. 정무위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가 시장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손 놓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책임을 회피하며 뒷짐을 지고 있다”며 “더 큰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정부가 투자자 보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경우 기자 bluesquare@sedaily.com, 박진용 기자 yong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