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선계곡을 오르는 동안 우거진 숲에 가려 물소리만 들렸다. 당시는 7월 염천이라 땀이 비오듯 쏟아졌는데 계곡을 뒤덮은 풍광에 빠져 더운 줄도 모르고 올랐다. 그때는 함양의 자연을 즐겼으니 이번에는 다른 모습을 볼 차례다. 함양으로 진입해 먼저 향한 곳은 개평한옥마을. 선비의 고장 함양 중에서도 유림의 본산이라 할 만한 곳이다.
개평한옥마을은 경남 함양군 지곡면에 있는 마을로 100년을 넘긴 한옥 6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 가운데에는 일두(一?) 정여창의 생가 ‘정여창 고택’이 자리잡고 있다. 정여창은 사림파의 대표적인 학자로 훈구파가 일으킨 사화(士禍)에 희생된 인물이다. 김굉필·김일손 등과 함께 김종직에게서 배워 1490년(성종 21) 과거에 급제했고 안응현감 등을 지냈으나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에 연루돼 유배된 후 1504년 사망했다.
마을 입구 초등학교를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오담고택’ ‘하동정씨고가’ ‘노참판댁고가’ 등 고택들이 늘어서 있다. 마을을 찾은 시간이 저녁 때라 오가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골목길에는 강아지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아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 중 명당으로 소문난 일두고택은 전형적인 영남 반가(班家) 구조로 드라마 ‘토지’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탓인지 솟을대문 밖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스산함을 더했다.
함양군은 남부 지방이지만 덕유산 자락이라 해발 1,000m를 넘는 봉우리가 즐비하다. 대봉산도 그중 하나로 정상 높이는 해발 1,228m에 달한다. 함양군은 이 봉우리에 모노레일을 깔고 집라인을 설치했다. 올라갈 때는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 집라인을 타고 내려오는 방식이다. 집라인 출발점까지 3.93㎞를 오르는 데 65분이 걸리지만 정상 부근에서 집라인을 타면 5개 구간을 순식간에 내려온다. 집라인이 설치된 서쪽 골짜기에는 체험, 숙박 시설과 산림욕장이 구비돼 있는데 1인당 2만 원꼴로 가격이 저렴하고 시설도 깔끔해 인기가 높다. 매달 15일 숲나들이e 홈페이지에서 인터넷 예약을 받는데 1~2분 만에 마감이 된다고 한다. 함양을 방문한다면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옛날 내륙에 사는 사람들이 남도 사람들과 물물교환을 하려면 지리산 장터목으로 가야 했는데 이때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개가 있으니 바로 오도재다. 함양 쪽에서는 ‘오도재’라 부르고 다른 지역에서는 ‘지안재’라 부르기도 하지만 지역에서는 오도재 아래의 구불구불한 구간을 따로 구분해 지안재로, 고개 전 구간을 오도재라고 부른다.
지안재로 불리는 구불구불한 구간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꼽힐 정도로 수려한 풍광을 자랑해 각종 광고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보는’ 관광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특산물을 음미하거나 체험해보고 싶다면 산머루 테마 농원 ‘하미앙와인밸리(대표 이상인)’를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유럽풍으로 꾸며진 산머루 테마 농원은 지리산 부존자원인 산머루를 토종 와인으로 빚어내 유명해진 곳이다. 지난 2000년부터 지역에 산재한 50여 곳의 산머루 재배 농가와 계약 재배 체계를 구축, 산머루 와인과 즙을 생산해 브랜드화하고 체험 관광 휴양 농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농촌 체험 관광의 명소로 알려지면서 연간 방문객이 10만 명에 달하며 2020년에는 경상남도민간정원으로도 등록된 바 있다.
하지만 함양군에서 꼭 가볼 만한 명소를 꼽으라면 단연 화림동계곡이다. 해발 1,508m의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남강의 상류)이 내를 이뤄 담(潭)과 소(沼)를 만들고 물이 굽이치는 곳마다 정자들이 들어서 절경을 이룬다.
계곡을 따라 닦인 26번 국도를 타고 안의면에서 육십령으로 4㎞가량을 향하다 보면 왼쪽에 보이는 정자가 농월정(弄月亭)이다. 농월정은 넓직한 바위들이 누워 있고 그 사이 계곡을 따라 물이 흘러 절경을 이룬다. 이 고장 출신으로 예조참판을 지낸 지족당 박명부 선생이 머물면서 시회(詩會)를 열던 곳이다.
이준철 문화관광해설사는 “농월정은 달을 희롱한다는 뜻으로 우리 조상들이 즐기던 풍류의 단면을 알아 볼 수 있다”며 “농월정은 그 경관이 좋아 군에서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함양)=우현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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