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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스포츠문화
"인생의 진짜 모습은 앞보다 뒤"

■안규철 회고전 '사물의 뒷모습'

옷·구두·의자 등 일상의 소재에

'나는 과연 누굴까' 정체성 담아내

30년전엔 개념미술 싸늘한 반응

시간 흘러 RM 등 젊은세대 공감

국제갤러리 부산점 내달 4일까지

안규철의 1992년작 '단결,권력,자유' /사진제공=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리고 있는 안규철의 개인전 '사물의 뒷모습' 전경. /사진제공=국제갤러리


검은 코트 세 벌이 나란히 어깨를 붙인 채 걸렸다. 코트의 온기만큼 연대(連帶)의 든든함이 느껴지기도 하나, 서로 소매 하나씩을 공유한 옷이라 입을 수는 없다. 코트 라벨에 ‘단결’ ‘권력’ ‘자유’가 독일어로 적혔다. ‘단결은 자유를 만든다’는 폴란드 자유노조의 슬로건인 동시에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걸프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외침이기도 하다. 안규철의 1991년작 ‘단결,권력,자유’가 30년이 지난 2021년 버전에서 아홉 벌로 확장됐다. 개인전 ‘사물의 뒷모습’이 한창인 부산시 수영구 F1963 내 국제갤러리 부산점. 과거 작품을 재해석한 ‘단결,권력,자유Ⅱ’는 어깨를 맞댄 코트들이 둥근 원을 이루며 타인의 진입을 막는 꽉 닫힌 장벽,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경계로 다가온다.

안규철의 '2/3사회Ⅱ' /사진제공=국제갤러리


구두 세 켤레를 이어붙였던 ‘2/3사회’(1991)는 구두 일곱 짝이 원형을 그리는 형태로 새로이 태어났다. 뒤꿈치로 누군가를 밟고 나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 앞 코를 밟히는 것, 그게 인생이다. 지난 2015년 MMCA현대차시리즈 작가로 선정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여는 등 국내외 굵직한 비엔날레와 전시에서 존재감을 빛내고 있는 안규철 작가에게 이번 전시는 일종의 회고전 성격을 띤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안 작가는 “코로나19로 전시가 1년 가량 미뤄지면서 새로운 작업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과거 내가 했던 작업 중에서 객관적 평가를 받을만한 작품들을 추려봤다”고 말했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안규철은 미술전문지 기자가 됐고 7년간 글쓰기를 업(業)으로 삼았다. “출장갔던 1984년 도쿄에서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의 전시를 보고 시대적 비판·사회적 책임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기억을 더듬은 그는 “취재차 예술가의 삶을 접하면서 ‘예술가라면 이래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이 생겼고 ‘내가 왜 못한단 말인가’라는 자각이 들어” 유학길에 올랐다. 1987년 6월항쟁의 여파가 뜨겁던, 그해 8월의 일이다.

대표작 '무명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 앞에 선 안규철 작가. /사진제공=국제갤러리




시차(時差)가 있었다. “1980년대 군부정권의 정치적 모순을 경험하며 살았던” 안규철은 1985년 민중미술 그룹인 ‘현실과 발언’에 참여하는 등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청년이었다. 반면 그가 머무르기로 작정한 독일은 ‘68혁명’으로 탈권위주의를 실현하고도 20년이 지났기에 혁명의 주도 세력이 이미 기성세대가 된 터였다. “한국은 여전히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때였건만 나는 20년의 시차를 훌쩍 뛰어넘어 ‘마치 민주화가 다 된 나라의 사람처럼 포스트모던하고 쿨하게 세상을 봐야하는 것인가’ 하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한국과 유럽의 역사적 시차 속에 안규철은 자신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누구를 관객으로 설정할지 파고들었고 1991년 독일의 한 대안공간에서 첫선을 보인 ‘무명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으로 펼쳐놓았다. 예술(Kunst)이라 적힌 문(門)에는 손잡이가 5개나 달려 제대로 열기 어렵고 삶(Leben)이라 쓰인 문은 손잡이가 없어 잡을 수조차 없다. 막막한 두 개의 문 사이에 어정쩡 놓인 화분에 한쪽 다리만 기다란 나무의자가 꽂혀 있다. 아무리 물을 줘도 죽은 나무로 만든 의자는 잎을 틔우지 않는다. 작가는 “삶에서 떨어져 나와 예술에서도 뭘 잡아야 할지 알지 못하는 어중간한 위치의 무명작가인 나를 함축한 자화상 같은 작품”이라 소개했다.

안규철의 '무명 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 /부산=조상인기자


30년이 훌쩍 흘렀다. 이제는 작업도, 역사도 시차를 극복하고 있음을 관람객들이 말해준다. 안규철식 ‘개념미술’에 대한 반응이 싸늘했던 발표 당시와 달리 이번 전시는 작품을 즐기는 젊은 관객이 부쩍 늘었다. 지난달 28일에는 미술애호가로 유명한 방탄소년단(BTS)의 RM이 자신의 SNS에 안규철이 지난 3월 출간한 책 ‘사물의 뒷모습’ 중 ‘식물의 시간’이라는 글을 공유하며 공감을 확산시켰다.

지난 2012년 광주비엔날레 때 200점으로 나눠 그린 바다그림을 광주 시내 곳곳에 갖다 ‘버란’ 후 지역 신문의 분실 공고를 통해 회수했던 작업 ‘그들이 떠난 곳에서-바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선거의 포스터에서 얼굴과 구호를 지운 후 색의 평균값으로 화면을 채운 ‘포스터 속 색깔들의 평균값으로 전체를 칠한 ‘약속의 색’ 등 다양한 작업을 이번 전시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전시와 책 이름인 ‘사물의 뒷모습’에 대해 작가는 “30년 동안 앞만 보며 달리다보니 뒷모습이 보였다”며 “진실은 사물의 표면보다 보이지 않는 이면에 숨어있다”고 말했다. ‘사람의 뒷모습에서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낯선 본연’을 통해 그가 추구하는 것은 감각적 흡족함이 아니라 불편한 문제의식이다. 7월4일까지.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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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부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친절한 금자씨는 예쁜 게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대미술은 날 세운 풍자와 노골적인 패러디가 난무합니다. 위작 논란도 있습니다. 블랙리스트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착한미술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으로 쏘다니며 팔자 좋은 기자. 미술, 문화재 전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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