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암호화폐 거래소 검증에 대한 은행권의 면책 요구를 거부하면서 주요 시중은행들이 실명계좌 발급을 위한 신규 거래소 검증 작업에서 손을 뗄 것으로 보인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에 대한 정부의 현장 컨설팅이 이달 중 마무리될 예정이지만 9월 24일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신고를 마칠 수 있는 거래소는 현실적으로 현재 은행 실명계좌를 가지고 있는 4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가 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결국 은행 실명계좌 발급을 받지 못한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무더기 폐업’이 현실화할 것으로 점쳐진다.
4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15일 시작한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컨설팅을 7월 중 완료할 예정이다. 앞서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지난달 10일 가상화폐 거래소들과 간담회를 열어 현장 컨설팅 계획을 안내하고 원하는 업체의 신청을 받았다. 업비트·빗썸 등 은행 실명계좌를 보유한 대형 거래소와 함께 실명계좌가 없는 중소 거래소 중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를 확보한 거래소들이 주로 컨설팅을 신청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면책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면서 현재 은행 실명계좌가 있는 4대 거래소 위주로만 신고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개정된 특금법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소는 9월 24일까지 FIU에 신고해야 영업할 수 있으며, FIU에 신고하기 위해서는 실명 확인 입출금 계정과 ISMS 인증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앞서 일부 시중은행과 은행연합회 등은 금융위와 유관기관들이 꾸린 암호화폐 거래소(가상자산 사업자) 관련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면서 거래소에 대한 실명계좌 발급 후 은행의 책임 논란을 피하기 위한 면책기준 필요성을 당국에 전달했다. 실명계좌 발급을 위한 은행의 실사 및 검증 과정에서 은행의 과실이나 책임 사유가 없다면 향후 거래소 사고와 관련해 은행의 책임을 묻지 않는 면책기준을 만들어 달라고 당국에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1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은행권의 면책 요구에 “아예 생각도 안 했으면 좋겠다”며 사실상 거부를 드러냈다. 은행권은 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암호화폐 거래소 관련 금융사고 책임을 실명계좌를 내준 은행에 떠넘기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암호화폐 거래소 검증 작업에 의무가 없는 만큼 아예 검증 자체를 기피하고, 대다수의 거래소가 검증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특금법 신고를 마칠 수 있는 거래소는 현실적으로 최대 4곳(기존 실명계좌 제휴 거래소)이거나 더 줄어들 수도 있다는 관측이 굳어지고 있다.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7월임에도 불구하고 은행 실명계좌를 추가로 확보했다는 거래소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현실적으로 4대 거래소 이외에는 신고가 쉽지 않은 모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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