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자국 기업의 미국 등 해외 증시 상장을 강력히 규제한다고 밝혔다. 최근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이 데이터 관리에 소홀해 국가 안보를 위협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데이터를 다루는 정보기술(IT) 기업에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중국이 미래 산업의 ‘쌀’로 불리는 데이터를 놓고 미국과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최고 행정기관인 국무원은 자국 회사의 외국 증시 상장에 대비해 비밀 유지에 관한 규정과 데이터 관리 및 유통·보안 규정을 만들어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증권 시장과 관련된 불법 행위는 무관용 원칙에 따라 강력히 처벌하겠다면서 공안과 검찰 등 조사 인력을 늘리겠다고 덧붙였다.
금융 당국이 아닌 공산당이 산업의 여러 분야 가운데서도 데이터를 콕 집어 경고한 것은 ‘데이터 보안은 곧 국가 안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특히 중국 기업의 해외 상장이 대부분 미국에서 이뤄지는 점을 고려하면 데이터를 다루는 중국 IT 기업의 미국 상장이 한층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중 전쟁의 다음 전장을 ‘데이터’로 보고 데이터 보안에 대한 경각심을 계속 높이고 있다. 데이터는 미래의 핵심 산업으로 분류되는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등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연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지난달 중국에서 생산된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막기 위해 데이터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중국이 데이터 보안 관련 법률을 제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의 디디추싱 규제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디디추싱은 시장 점유율 90%라는 영향력을 바탕으로 막대한 데이터를 수집해왔다. 디디추싱이 모으는 주행 경로 정보만도 하루 100TB가 넘는다. 또 공공 기관과 협력해 얻은 교통 정보는 물론 자율주행 실험으로 자체 수집한 교통 정보, 지난해 기준 5억 명에 달하는 이용자의 개인 정보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이런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자국 기업에 미국 자본이 유입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디디추싱 사건을 두고 해외에서 ‘중국의 기업 길들이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는 여러 방식이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중국 공산당이 개최한 행사에서 “자신에게 맞는 게 가장 좋은 것”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압한다는 이유로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과 유럽 등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데이터 보안에 신경을 쓰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중국과 연계된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이 미국의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라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내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데이터를 두고 미중 양국이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데이터 보안과 관련해 동맹국들과 협력하며 중국을 견제할 방침이다. 7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는 오는 13일 과학기술 담당 각료급 회의를 열어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과 데이터 유출 방지, 첨단 기술 관련 윤리 규범 마련 등을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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