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 일대 미분양 아파트 2채를 사들여 임대하는 A(67·여) 씨는 지난해 8월 아파트 임대사업제도가 폐지되면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8년 의무 임대 기간이 연말에 만료되면 사업자 등록이 자동 말소돼 더 이상 임대 사업을 할 수 없는 탓이다.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는 세준 아파트를 팔아야 하지만 임차인을 끼고 매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월 100만 원 남짓한 남편의 국민연금에다 아파트 반전세로 받는 월세 150만 원 등을 합치면 자식에게 손벌리지 않고 생활할 정도가 됐지만 노후 계획은 완전히 헝클어졌다. 그는 “아파트 두 채를 팔아 봐야 서울의 한 채 값도 안 되는데 늘그막에 복부인·투기꾼 취급을 받는 게 너무 억울하다”며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오는 18일이면 주택임대사업제도가 사실상 폐지된 지 1년이 되는 가운데 임대인 단체의 상담 코너와 부동산 온라인 카페에는 임대 사업자들의 분노와 원성이 넘쳐난다. 임대업을 계속하고 싶어도 못해 밥줄이 끊기거나 세금 폭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청와대 국민청원 코너에도 하루아침에 부동산 적폐, 투기꾼 신세로 전락했다는 불만과 하소연이 여럿 올라와 있다. 새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과 맞물리면서 전·월세 시장의 혼란과 집주인·세입자 간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1994년 지하경제에 방치된 민간 전·월세 시장을 양지로 끌어내 임대인과 임차인의 ‘윈윈’을 도모한다는 주택임대사업자제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사정이 이쯤되자 등록 임대 사업자 2,000여 명은 지난해 말 현행 민간임대주택특별법이 직업 선택의 자유와 행복추구권, 소급입법에 따른 재산권 등을 침해한다며 위헌 심판을 청구했다. 헌법 소원을 대리하는 이석연 변호사는 “정부가 주거 안정을 위해 주택 임대 사업을 권장해놓고 일방적으로 강제 말소하는 것은 헌법상 신뢰 보호 원칙에 위배된다”며 “민특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말했다.
‘제도권’ 주택 임대 시장이 어쩌다 논란과 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된 걸까. 시계추를 되돌려보자. 문재인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인 2017년 8·2 대책에서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번 대책의 핵심은 집을 많이 가진 사람이 불편하게 된다는 것이다. 살지 않는 집은 팔거나 임대 사업에 등록하라”고 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정부는 임대 사업 활성화 대책에서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와 종부세 합산 배제, 건강보험료 감면 등 각종 세제 혜택을 강화하거나 추가로 신설했다.
하지만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당정은 임대 사업자를 부동산 과열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정책 기조를 180도 바꿨다. 한마디로 임대 사업 유인책이 다주택자에게 꽃길을 열어줬다는 것이다. 당정은 2018년 9월 9·13 대책을 통해 투기가 우려되는 ‘조정지역’ 내 임대 사업자에게도 종부세 합산 배제와 양도세 중과 배제를 철회한 데 이어 지난해 7·10 대책을 통해 4년 단기 임대와 아파트 임대를 폐지하고 의무 임대 기간이 만료되면 강제로 등록을 취소했다. 그 결과 지난해 하반기에만 46만 채의 등록 임대주택이 자동 말소되는 날벼락을 맞았다. 이는 활성화 대책 이후 2년 동안 늘어난 등록 임대주택(52만 채)과 맞먹는다.
임대사업제도를 집값 폭등의 주범으로 뒤집어씌우는 게 온당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무엇보다 집값 폭등을 이끈 아파트의 임대 등록이 전체 등록 임대주택의 10%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7·10 대책 발표 직전인 2020년 상반기 중 서울 소재 등록 임대주택 51만 채 가운데 아파트는 9만 채로 17%에 불과하다. 국토부도 지난해 2월 등록 임대주택 통계 자료에서 “2019년 1년 동안 신규로 등록한 임대주택의 대다수는 공시가격 6억 원(시세 9억 원) 이하이고, 6억 원 초과 주택도 (아파트가 아닌) 다가구주택이 대다수”라며 “ (임대사업제가) 고가 주택 가격 상승세와의 연관성은 높지 않다”고 적시하고 있다. 실제로 임대사업제도가 문제라면 7·10 대책 발표 이후에도 서울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르는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지난 1년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KB 기준)은 16% 올랐다. 이에 대해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임대주택 사업 폐지는 집값 안정을 겨냥하기보다는 정치적 선택”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임대 사업자에게 투기꾼 프레임을 씌워 부동산 정책 실패의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평가했다.
제도권 주택 임대 시장에 당장 떨어진 불똥은 이달 18일부터 시행되는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 의무 가입이다. 7·10 대책은 임대 사업자의 혜택을 줄이는 동시에 공적 의무를 강화했다. 이에 따라 임대 사업자는 임차인 보호를 위해 전세금 보증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형사처벌(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 대상이 된다. 문제는 전과자 딱지를 씌우는 게 과도할 뿐만 아니라 일정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가입 자체가 불가능해 보증 대란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SGI서울보증은 전세금과 대출금의 합산액이 시세 조정 가격(공시가격의 1.3배)보다 많으면 보증 사고 우려로 가입을 거부하고 있다. 주로 시세와 전세 가격의 격차가 작은 지방의 비(非)아파트가 해당된다. 평택 원룸 임대 사업자는 “국토부에 서면 질의를 해도 대출금을 갚거나 임차인과 협의를 잘하라는 원론적 답변만 돌아온다”며 “정부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비판했다. 보증 기관도 전세금을 내려 반전세로 돌리라고 권고하는 게 고작이다. 이 경우 세입자와의 갈등을 피할 길이 없다. 국토부도 뒤늦게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18일 이전까지 해법을 찾기는 어려워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후유증은 이뿐만이 아니다. 등록 말소된 임대 사업자의 퇴로 확보도 여의치 않다. 새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충돌해 세입자가 계약 갱신권을 청구하면 아파트 매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가 등록 강제 말소로 의도했던 매물 출회 효과를 반감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오히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다세대·연립주택의 전·월세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는 비아파트 10년 장기임대제도를 유지하기로 했지만 어디까지나 세제 혜택을 받는 기존 사업자에 국한된 얘기일 뿐이다. 임대 사업자에 대한 종부세 합산(9·13 대책)과 세율 인상(7·10 대책)은 주택을 새로 매입해 신규 사업자로 등록하는 길을 사실상 가로막고 있다. 이렇게 되면 다세대·연립주택 신축 수요를 위축시키는 것은 불문가지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정부가 오랫동안 장려했던 임대 사업을 규제하고 폐지함으로써 얻는 실익이 뭔지 모르겠다”며 “정책 효과는 없고 되레 서민 주거 안정에 역행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이런 측면을 우려하고 있다. 변세일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임대주택등록제의 취지는 공공 임대주택의 공급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며 “전·월세 시장 안정과 임차인 보호를 위해서는 폐지보다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제도 설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아파트라고 해서 제도권 밖으로 밀어낼 이유가 없다”며 “장기 임대일수록 세제 혜택을 더 주는 방향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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