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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재심’ 만든 건 '불쌍하다'는 보편 감정”

‘재심전문’ 박준영 변호사 서초문화원 특별강연

누명 쓴 아이 편지 받은 선생님들

진술 기록 정리한 게 재판에 큰 힘

'약천오거리 살인 사건' 재심도

사비로 재수사한 형사 덕에 가능

모두 다 내려놓으면 갈등도 풀려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 /유튜브 캡처




“영화 ‘재심’의 실제 사례인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 재심은 한 형사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불쌍하다’ ‘그냥 놓아두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며 재수사에 나선 그 형사가 없었다면 영화 ‘재심’은 없었습니다.”

‘재심 전문 변호사’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박준영(사진) 변호사는 11일 서초문화원이 온라인으로 공개한 ‘차이나는 아카데미’ 특별 강연에서 “투철한 사명감이나 정의감이 아닌 보편적 감정이 실천의 힘이 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영화 ‘재심’의 실제 모델인 박 변호사는 목포대 전자공학과를 1학기 만에 중퇴한 후 사법시험(제44회)에 응시해 합격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수원 노숙 소녀 살인 사건’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 ‘낙동강 변 살인 사건’ ‘삼례 나라슈퍼 사건’ 등의 재심을 맡아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이들의 누명을 벗겨주면서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법원행정처 국선변호정책 위원과 경찰인권위원,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을 역임했고 이러한 공로로 지난 2015년 대한변협 변호사 공익대상, 2017년 아산상 자원봉사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재심 사건 속 사람들 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강연에서 그는 가장 먼저 2007년 수원 노숙 소녀 살인 사건에 대한 재심을 진행하면서 ‘사람에 대한 희망’을 보았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당시 누명을 썼던 한 아이가 자신을 도와줬던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편지를 보냈고 그 선생님들이 사건 기록을 정리한 게 큰 도움이 됐다”며 “만약 선생님들이 편지를 무시했다면 아이들은 출소 후 사회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조력자들도 있었다. 500만 원에 달하는 속기 비용도 받지 않고 영상 녹화를 기록해준 속기사, 아무런 대가 없이 증언을 한 후 조용히 사라진 법의학자, 친구처럼 편안한 직권 심문으로 진술 번복을 이끌어낸 당시 재판장 등이 그들이었다. 박 변호사는 “보이지 않게 도움을 준 이들은 정의로운 해결에 아주 큰 힘이 됐다”며 “(표면적으로는) 내가 주연이고 이들이 조연이지만 활동을 보면 도움을 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주연”이라고 강조했다.

영화 ‘재심’의 모티브를 제공한 2000년 5월 익산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에 대한 재심도 조력자들의 힘이 없었으면 힘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변호사는 “당시 살인 누명을 쓴 15세 아이가 아닌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받은 군산경찰서 형사가 ‘불쌍하다. 내가 모른 척하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비를 들여 재수사에 들어갔다”며 “그분이 재수사를 안 했다면 재심이라는 결과물도 없었을 것이고 영화 ‘재심’도 없었을 것”이라고 털아놓았다. 이어 “투철한 사명감이나 정의감이 아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적 감정이 실천의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의미 있는 실천을 멀게 느끼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 1990년 낙동강 변 살인 사건도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유품으로 남긴 기록 덕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었다.

그는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부정적인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박 변호사는 자신을 흉기로 위협했던 범인에 대해 ‘다 내려놓고 살라’며 용서해준 1993년 삼례 나라슈퍼 사건 피해자를 언급하며 “요즘 우리는 너무 미워하고 갈등하고 대립하며 사는 것 같다”며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가득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사람들의 실천이 계속 이어질 때 함께 사는 삶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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