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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원폭 추모하는 日…피해자는 누구인가 [책꽂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임지현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2007년 1월, 국내 일간지의 문화면은 일본계 미국인 작가의 소설 ‘요코 이야기’로 뜨거웠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본국으로 귀환하는 일본인 피난민 요코의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한국인을 사악한 가해자로, 일본인을 무고한 희생자로 그려 국내에서 열띤 역사 왜곡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서강대 사학과의 임지현 교수는 비판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한국인) 자신의 기억은 ‘정확한 역사’이고 요코의 기억은 ‘역사의 왜곡’이라는 단정은 위험하다”고 경계하며 ‘희생자의식 민족주의(Victimhood Nationalism)’ 개념을 처음 꺼내 놓았다. 희생자라는 의식을 동원해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행태를 일컫는 이 개념은 임 교수가 독일과 폴란드, 이스라엘이 펼친 ‘기억전쟁’에서 착안한 것이다. ‘기억전쟁’이란 피해자들이 가해자에게 빼앗긴 희생자의 지위를 재탈환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당시 호된 항의에 직면했다. 하지만 심지 굳은 역사학자로서 그는 이후 이 개념을 정교하게 다듬어 동명의 책으로 집대성했다.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은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이어받아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한다. 반면 독일과 폴란드 우익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은커녕 자신들의 고통만 주장한다. 일본은 해마다 8월15일에 즈음해 미군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폭탄 희생자를 추모하고 당시의 참상을 재조명한다. 저자는 책에서 이처럼 각각의 나라가 스스로 피해자 혹은 희생자임을 자처하는 이유에 주목한다. 부제인 ‘고통을 경쟁하는 지구적 기억 전쟁’은 각국이 누가 더 큰 희생을 겪었는지 경쟁하듯 다투는 상황을 의미한다.

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의 기준은 상대적일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폴란드의 한 역사학자는 1941년 7월 유대인 학살 사건의 주체가 폴란드인이라는 내용을 담은 책을 출간해 스스로 나치 희생자이자 유대인을 구출한 민족이라 생각했던 폴란드인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의 동남아 침략전에 참전했다가 전범으로 처형 당한 한국인은 우리에게 ‘끌려가서 부역한 피해자’이지만 동남아인들에게는 가해자였다.

저자는 “집단으로서 어느 민족이 더 큰 희생자인가를 놓고 경합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지구적 기억 공간의 일상적 모습이 됐다”며 이러한 현상이 과연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되는가를 냉철하게 묻는다. 저자의 주장이 여전히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저자의 주장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3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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