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원에 달하는 정부의 정책 자금을 지원받은 한 중소기업이 중고부품 기계를 설치해도 현장 실사에 통과하는가 하면 이중 절반 정도인 15억여 원을 기계업자에게 다시 되돌려 받아 횡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1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남 나주경찰서는 지난달 중소기업 대표와 기계설비 제작업체가 짜고 중고설비를 신제품으로 둔갑시켜 정부 정책자금 지원금 중 15억여 원을 일명 ‘페이백(되돌려 받기)’ 수법으로 가로챘다는 취지의 고발장을 투자자들로부터 접수받아 수사를 착수했다.
해당 설비자금은 나주의 한 중소기업이 기술보증기금에서 ‘폐자원을 재활용해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30억8,000만 원의 보증서를 발급받은 뒤 대출은 기업은행에서 실행했다.
하지만 2018년 12월 당시 공장 준공과 동시에 설치한 이 설비기계는 첫 시험가동에서 5분여 만에 과부하 등을 이유로 결함이 발생해 기계가 멈춰 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지자 투자자들은 기계 제작사에 추궁한 끝에 2019년 2월 ‘중고부품 사용’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증명 사실 확인서를 작성해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투자자는 수차례 기성금이 지급된 뒤 이러한 중고부품 기계 설치 사실을 대출 은행에 알렸으나 은행은 ‘감정평가 법인’에 의뢰해 기계 설비를 보증하는 ‘감정서’만 믿고 대출을 실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고발인 A씨는 “중고부품이 사용돼 작동도 안 되는 설비에 정책자금으로 28억 원이 지원된데 대해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제대로 실사를 했다면 확인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감정평가서가 발급됐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A씨는 또 기계업자가 2018년 6월부터 5차례에 걸쳐 기성금으로 받은 15억 원을 다시 이 중소기업에 송금한 내역을 근거로 ‘중고 설비를 이용한 제작비 차액 페이백 공모’를 주장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기성금이 입금되면 하청업체 등에 대금을 지급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기성금이 입금되자마자 바로 업체에 다시 송금했다는 점은 누가 봐도 대여금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기계설비 제작업체 대표는 “당시 송금한 15억원은 업체 대표가 투자금 반환 때문에 자금이 필요해 빌려달라는 돈으로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지원금이 나오면 갚기로 하고 대여금으로 송금해 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횡령과 사기 의혹 등으로 수사 선상에 오른 이 업체는 공장 준공 6개월여 만에 회사가 부도가 나 5번의 유찰 끝에 지난해 7월 경매로 매각돼 공장 명의가 이전된 상태다.
나주경찰서 관계자는 “정부 정책자금이 투입된 기계 설비제작비 횡령 의혹 고발 건에 대한 수사를 본격 개시했다”며 “사실관계를 규명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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