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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법 강행하면...이런 정부 비판 기사는 영영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경제부처 출입기자의 절박한 위기감

본지의 택시 지원금 역차별 지적

4대강 수질 원자료 검토·재해석 등

언론자유 있기에 가능한 기사들

법 통과땐 정권에 '불편한 진실'

꼬투리 잡아 삭제 요구·손배소 청구

권력감시·견제 기사 설자리 잃어

박주민(오른쪽)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직무대행이 24일 국회 입법조사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언론중재법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대다수 국민은 폭주하는 입법 권력을 이번에도 그저 바라봐야 하는 처지다. 야당은 필리버스터를 앞세워 적당히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다 “이만하면 됐지 않느냐”고 도망치듯 국회의사당을 나설 것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의 말마따나 “국민의힘도 평생 야당만 할 것이 아니니” 길게 보면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언론징벌법의 진짜 폐해는 언론인이 아니라 국민들이 뒤집어 쓴다. 최순실·조국 같은 거악(巨惡) 권력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전 국민이 공분하는 초대형 사건은 아니더라도 한 사안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권력을 감시해온 대다수 언론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 이것이 이번 언론법의 무서운 핵심이다. 많은 기자들이 이번 언론법 개정에 절박한 위기감을 느끼는 이유다.

① 억지 ‘오보’로 밀어붙여 기사 삭제

본지는 지난 7월 29일자 1면에 “택시 역차별 논란에 정부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이 펑크 났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법인택시 기사에게는 80만 원을 지급하면서도 개인택시 기사에게는 50만 원만 지급하기로 추경안을 짰다가 항의가 빗발치자 부랴부랴 정부가 예비비를 꺼내 개인택시에 30만 원을 더 주게 됐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이 기사에 ‘오보’라는 딱지를 붙였다. 당시로서는 개인택시 기사에게 50만 원을 주기로 아직 확정되지 않아 숫자가 다르므로 틀린 기사라는 것이다. 실제 기재부는 이날 오전 이런 내용의 해명 자료를 배포했다. 기재부의 한 국장은 “펑크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으니 제목을 고쳐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다. 추경 예산안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예비비를 꺼내 쓴다는 게 기재부로서는 굴욕일 뿐더러 국민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아야 ‘불필요한’ 논란을 피해갈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정부는 본지 보도 20여 일 만인 이달 17일 국무회의를 열어 개인택시 기사들에게 40만 원을 지급하는 예비비 지출 건을 의결했다. 통상 예비비는 백신 구입이나 재해·재난에 대비해 정부가 남겨놓는 쌈짓돈인데 660억 원에 이르는 돈이 엉뚱한 용도로 쓰인 셈이다.

만약 언론중재법이 시행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담당 부처가 10만 원 차이를 꼬투리 잡아 오보로 밀어붙이고 ‘열람차단청구권’을 발동하면 언론사는 포털이나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모두 내려야 한다. 정책 생산 당사자인 정부가 “사실과 다르다”고 잡아떼면 언론사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언론법은 “언론보도 등의 내용이나 표현이 공적 관심사에 관한 것일 때는 청구권에서 제외한다(제17조의2)”고 예외 조항을 두기는 했지만 공적 관심사라는 정의 자체가 애매해 “주요한 내용이 진실하지 않다”며 몰아붙일 여지가 있다.

또 민주당은 1급 이상 고위 공무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제기할 수 없도록 법안을 개정했다고 하지만 필요하다면 국장이나 과장으로 직급을 낮춰 소송하면 그만이다. 설령 소송 과정에서 정당한 보도라는 점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소송에 묶여 있는 사이 언론은 어떤 추가 보도도 할 수 없다.



②입맛에 맞지 않는 해석은 ‘악의적’ 보도

악의적 보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세상 모든 사안을 두부 자르듯 ‘선과 악’으로 나눠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본지 2021년 4월 14일자 2면에 실린 4대강 수질 관련 기사가 이런 사례다. 환경부는 2017년 6월부터 3년 6개월 동안 금강·영산강·낙동강의 11개 보(洑) 개방 이후 수질 관측 결과를 발표했다. 보 개방 결과 녹조류가 줄고 각종 철새들이 돌아와 수질이 나아졌다는 점을 환경부는 집중 홍보했다. 하지만 관측 원자료를 직접 살펴본 결과 녹조류는 감소했지만 일반적 수질 지표인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과 인 함량(T-P) 등은 오히려 나빠진 곳이 많았다. 보 해체가 수질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결론 내리기 어려운 셈이다. 당시 본지를 비롯해 일부 언론이 이런 점을 조명해 기사를 쓰자 환경부는 즉각 설명 자료를 내고 “보 개방 일수와 BOD는 상관관계가 높지 않다”고 반박했다.

4대강 보 개방 이후 수질 개선 측면을 강조한 환경부 보도자료


만약 이때 환경부가 본지 보도를 ‘악의적’ 보도로 규정하고 손해배상 청구에 나섰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현장에 나와 있는 기자는 나름의 자존심 때문에 의지를 굽히지 않을지 모르지만 당장 수천만 원, 수억 원의 배상을 걱정해야 하는 경영진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면 보도자료의 숨어 있는 사실을 찾거나 재해석하는 일이 기자 사회에서 ‘금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③취재원 공개 위협으로 손발 묶어

언론중재법은 또 보도 내용이 팩트라는 사실을 언론사 및 기자가 직접 입증하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이는 소송 당사자에게 입증 책임을 묻는 우리나라 민사법 대원칙에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취재를 원천 불가능하게 만드는 매우 강한 독소 조항이다.

가령 정부나 기업이 보도 내용을 부정할 경우 기자는 취재원을 공개하지 않고서는 보도가 사실이거나 또는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었다고 주장할 근거가 없다. 지금까지 기자가 만난 많은 취재원들은 △기자가 나의 발언을 왜곡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때 △나의 존재를 철저히 보호해준다고 믿을 때만 비로소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할 때가 많았다. 기자와 나눈 대화 때문에 법정에 끌려 나와 증언을 해야 한다면 누가 기자와 만나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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