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부대에 있는 수통 있지 않습니까, 거기 뭐라고 적혀있는지 아십니까? 1953. 6·25때 쓰던 거라고.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에서 극중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탈영한 조석봉(조현철 분) 일병은 자신을 체포하러 온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좀체 바뀌지 않는 군대의 모습을 수통에 빗대어 비판한 대사다.
군대의 어두운 면을 전하는 드라마 ‘D.P’가 묵직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연출로 호평받고 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공개 3일 만인 지난 30일 국내 인기순위 1위에 올랐다.
드라마는 2014년을 배경으로 지금은 군사경찰대로 바뀐 헌병대의 군무 이탈 체포조 소속 안준호(정해인 분) 이병과 한호열(구교환 분) 상병, 상급자인 박범구(김성균 분) 중사가 탈영병을 잡고 놓치는 과정을 다룬다. 특히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극의 리얼리티다. 탈영으로 내몰리는 이들의 서사에 주목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겪은 각종 가혹 행위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성추행, 수면 방해, 선임병이 말 안 듣는 후임병을 관리하라며 중간 계급 병사에게 가하는 이른바 ‘내리갈굼’도 생생하게 묘사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군필자들을 중심으로 트라우마를 자극한다는 반응이 줄을 이을 정도다.
군대 내 ‘폭력의 대물림’으로 인해 인물이 변해가는 모습과 그 심리에 대한 묘사도 탁월하다. 후임병을 배려하던 인물이 선임의 가혹 행위로 인한 분노가 쌓이면서 과격함을 드러내고 잔혹한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는 가해자의 대사는 군대 내 폭력이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됐음을 시사한다.
영화 ‘차이나타운’, ‘뺑반’의 한준희 감독의 연출력과 주·조연들의 연기력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한 감독은 주인공들이 계단식으로 성장하다가 막판에 대폭발하는 전체적 전개 속에서 이른바 ‘한국형 신파’와 같은 군더더기 요소를 덜어내고 속도감 있는 연출을 보여준다. 각종 갈등을 어설프게 봉합하는 해피엔딩 대신 참담함을 극대화한 결말도 인상적이다.
주연 중 가장 돋보이는 배우는 구교환이다. 매사 진지하지 않고 너스레를 떨지만 일에는 착실한 호열 캐릭터를 특유의 아우라로 꼭 맞게 소화해내며 최근 ‘대세’ 배우로 자리 잡은 이유를 연기로 증명해 보인다. 정해인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등에서 보여준 소년 같은 이미지 이상의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조현철은 순수한 비폭력주의자가 가혹행위에 시달린 끝에 폭력에 물들어 폭발하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냈다.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뭐라도 해야지’라는 대사를 건네며 지난 시절의 가해자 혹은 방관자였던 이들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이 씁쓸함을 바탕으로 군대의 부조리함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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