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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 대북 제재 허물고 주한미군 주둔 명분만 약화시킬 것” [청론직설]

◆박원곤 이화여대 대학원 북한학과 교수

적대청산 메시지, 美관련 법 해제·미군 감축 구실로 작용

文정부 2018년 이벤트 환상에 갇혀 병적으로 北 매달려

북한 비핵화 불이행이 문제, 정상회담은 사진 찍기 불과

北전술핵 ‘게임체인저’인데 우리 군 위기 의식·대비 없어

박원곤 이화여대 대학원 북한학과 교수가 1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종전 선언은 미국 내에서 북미가 더 이상 적대 관계가 아니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낳는다”며 “북한 제재와 관련된 10여 개 법이 잘못됐다는 명분 싸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내년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과 3월 대선을 앞두고 남북한이 대화 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 선언을 다시 제안하자 북한이 이에 호응해 군 통신선을 복원했다. 일부에서는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를 불과 6개월 남긴 상황에서 서둘러 남북 이벤트를 추진하는 데 대해 ‘대선용’이라고 의심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박원곤 이화여대 대학원 북한학과 교수는 “종전 선언은 대북 제재를 허물고 주한 미군의 주둔 명분만 약화시킬 것”이라며 “차기 정부가 이 선언을 업보처럼 안고 가게 하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남북이 지난 2018년에 판문점선언 등 이미 많은 합의를 했다”며 “지금은 남북정상회담을 다시 추진할 게 아니라 이 합의들을 실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정세 분석의 전문가인 박 교수를 11일 만나 문재인 정부 임기 말의 남북 관계를 점검하고 바람직한 외교 안보 정책에 대해 들어봤다.



-문재인 정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종전 선언에 불을 지피고 있다.

△임기 말에 종전 선언을 하자고 나서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미사일 발사 도발을 계속하는 북한에 선물을 주면 잘못된 행동을 보상해주는 꼴이 된다. 종전 선언은 무엇보다 대북 제재를 허무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종전 선언은 북한과 미국이 더 이상 적대 관계가 아니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낳게 된다. 이는 대북 제재의 근거인 미국 내 10여 개 법들이 잘못됐다는 명분 싸움을 초래해 관련 법들의 해제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은 이 동력을 살려 중국·러시아와 함께 유엔의 대북 제재 해제까지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는 종전 선언이 정치적·상징적 의미만 갖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종전 선언은 주한 미군과 한미 동맹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2016년 7월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의 5대 조건 중 다섯 번째로 주한 미군 철수를 꼽았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도 최근 담화에서 주한 미군 철수를 사실상 요구했다. 북한은 종전 선언 다음으로 당연히 주한 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해체를 요구할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왜 한국에 군을 주둔시키는가라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3년 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트럼프 2.0세력이 등장한다면 훨씬 더 큰 명분을 갖고 주한 미군을 조정할 수 있게 된다. 왜 이 시점에 위험한 선택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문 대통령 재임 중 종전 선언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은가.

△성사 가능성이 매우 낮다. 정부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종전을 선언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핵심 동맹국들은 베이징 올림픽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북한 정권이 확실한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실무 협상을 통해 비핵화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한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지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기본 입장을 명확히 해왔다. 북한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종전을 선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북미만 대화해도 문제가 복잡한데 북한 입장을 100% 대변하는 중국까지 참여시키면 북한 비핵화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결국 종전 선언은 이뤄지지 않고 남북중이 ‘평화 세력’으로 포장해 한 편이 되고 미국이 ‘반(反)평화 세력’으로 비치면서 반대편에 서게 되는 이상한 광경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다.

-현 정부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종전 선언을 추진하는 것인가.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상당히 진전됐던 2018년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든 임기 만료 전에 남북 관계를 최소한의 소통 수준으로 돌리려는 듯하다. 더 나아가 남북정상회담으로 화룡점정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회담이 결렬된 뒤 북한은 12월에 정면 돌파 노선을 선포하면서 정책 방향을 완전히 바꿨다. 하지만 북한이 아무리 심한 말을 하고 도발을 해도 우리 정부는 한마디도 못하고 북한이 손을 내밀기만을 기다리는 매우 병리적인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현 시점에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한가.

△그렇지 않다. 남북은 2018년 판문점선언부터 9·19 군사합의까지 이미 많은 합의를 했다. 문제는 북한이 비핵화를 비롯한 합의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실질적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시기다. 지금 남북정상회담을 해봤자 사진 찍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내년 대선에서 여당 후보가 당선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야당 후보가 되면 셈법이 복잡해지고 자신들에게 불리해지게 된다. 남북정상회담을 하더라도 2018년과 같은 긍정적 분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우리 정부가 북한·중국의 눈치만 보면서 한미 동맹 균열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

△한미 동맹의 불협화음이 벌써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미국·유엔 방문 때나 국정감사에서 여러 차례 대북 제재 해제를 강도 높게 주장했다. 이 와중에 미 국무부는 정 장관의 발언을 즉각 반박했다. 미 국무부가 이렇게까지 명확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현 정부가 외교 안보 정책에서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대내외 정책 가운데 남북 관계를 최우선 순위에 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정부는 심지어 한미 관계와 대중 정책도 대북 정책의 하위에 뒀다. 그러다 보니 대북 정책은 물론 대내외 정책도 모두 꼬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강대국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주변을 살피고 세계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대전략을 만들고 그에 따라 대북 정책을 정교하게 운용해야 한다.

-북핵 폐기와 남북통일 문제를 둘러싸고 주변 강국들은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가.

△통일에 대해 그래도 가장 우호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한미 동맹을 유지하는 한 통일 과정에서 실질적 역할을 해야 한다. 중국은 현 상황 유지를 선호한다. 일본은 한국과의 신뢰가 높아지지 않으면 통일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다. 결국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통일 후 미군이 계속 한반도에 주둔하면 일본이 우려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발을 빼기 전에는 일본이 한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미국에서 트럼피즘을 이어받은 정치인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그런 변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대비책도 필요하다.

-차기 정부는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굉장히 불편한 진실은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완전한 불법 핵 보유국을 완전한 비핵 국가로 만드는 것을 해본 경험도, 이론도 없다. 결국 북핵 대응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한다. 약해진 미국의 확장 억제를 제도화하고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북핵에 대한 한미 동맹의 대응력이 강해질수록 핵의 효용성은 떨어지게 되고 그러면 핵을 가질 이유도 줄어든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노력에 방점을 찍고 이를 기반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끌어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서둘러 핵연료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방사능 폐기장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재처리는 절실하다.

-우리 정부의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과 북한 인권 정책을 평가한다면.

△국제사회의 원칙이 지켜진다면 인도주의적 지원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진보·보수 정부 모두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현 정부도 인도적 지원을 남북 관계의 마중물로 활용하려 했다. 국제사회의 규범에 맞는 수준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는데 이 정부는 완전히 손을 놓았다.

-북한은 경제가 어려워도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고도화를 시도하고 있다. 북한의 안보 위협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매우 높다. 김 위원장이 올해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전술핵무기 개발을 지시했다. 전술핵은 한반도에서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북한이 개발한 KN-23·24·30미사일, 순항미사일에도 전술핵을 탑재할 수 있다. 재래식 탄도탄에 실전 배치할 경우 북한의 주력 미사일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재래식·핵 미사일 구분이 안 돼 핵전쟁으로 쉽게 비화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뀐다. 게다가 우리 미사일 방어 체계로는 이를 막지 못한다. 핵 대응은 100% 미국에만 의존하고 있다. 북한의 전술핵이 매우 시급한 문제인데도 국방부나 군은 전혀 위기의식이 없다.

-북핵 폐기 문제는 미중 관계의 하위 변수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는데.

△미중은 현재 전략적 경쟁 관계이지만 신냉전 관계로 변할 가능성도 있다. 냉전 체제에서는 양쪽과 다 친해질 수 없다. 미중 갈등은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에게는 대전략이 없다. 한국이 안보를 지키고 이만큼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1945년 이후 구축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 덕분이다.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항행의 자유, 다자주의 등이 그런 것들이다. 우리도 이 가치를 지키는 데 같이 움직여야 한다. 미국이 주춤거린다면 우리가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과 힘을 합쳐 같이 가야 하는 게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He is···

1968년 춘천에서 태어나 서울 여의도고를 졸업했다. 연세대 사회사업학과 재학 중 미국 사우스웨스트뱁티스트대로 옮겨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보스턴칼리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 서울대에서 외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과 대외협력실장을 지낸 뒤 한동대 교수를 거쳐 현재 이화여대 대학원 북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방부·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등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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