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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병 수술할 지도자 절실...퍼주기 '유모 국가'·노조 횡포 벗어나야" [청론직설]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명예교수

고복지·저효율과 도덕적 해이 '영국병', 대처식 개혁 필요

유럽식 복지 모델은 한계...과도한 국가 개입 부패 초래해

청년 일자리 빼앗는 기득권 척결할 개혁 지도자 뽑아야

'도덕 운동' 펼칠때...보수, 새피 수혈로 수권능력 보여주길


대한민국 경제가 반(反)시장적 규제와 포퓰리즘이라는 덫에 갇혀 저성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0년대 초반 5%가량이었던 잠재성장률은 이미 2%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전략 산업마저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지 못하고 경쟁국에 바짝 쫓기고 있다. 방만한 세금 퍼주기 복지와 과도한 친노조 정책은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고 성장 동력마저 갉아먹고 있다. 이대로 가면 과거 ‘영국병(病)’처럼 경제의 조로(早老) 현상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영국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명예교수는 2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선심성 퍼주기 복지와 강성 노조의 횡포가 도를 넘고 있다”면서 “영국을 반면교사로 삼아 ‘한국병(病)’을 수술할 수 있는 결단력을 지닌 지도자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재정 능력을 벗어난 무상 복지 남발의 후유증을 거론하면서 “국가가 모든 사람을 먹여주고 일일이 보살펴주는 ‘유모 국가(Nanny State)’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박 교수는 “국가의 과도한 개입은 항상 부패를 낳기 마련”이라면서 “개인과 시장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해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명예교수가 2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퍼주기 복지와 강성 노조의 횡포가 도를 넘고 있다”면서 “영국을 반면교사로 삼아 ‘한국병(病)’을 수술할 수 있는 결단력을 지닌 지도자가 절실하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한국이 처한 현실이 1970년대 영국과 닮았다는 지적이 많다. 무분별한 복지 확대와 강성 노조에 시달리던 ‘영국병’을 빗대 ‘한국병’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영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내세워 현대적인 복지 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했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복지를 유지하느라 고비용·저효율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막대한 예산 부담이다. 영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한때 83%에 달했다. 도덕적 해이도 심각한 문제였다. 1970년대 말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실업수당을 부정하게 받아간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90%에 달했다. 이런 체제에서 근로 의욕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국은 뒤늦게 구직 사실을 입증하고 직업 훈련 참가를 의무화하는 등 복지 체계를 바꿨다. 반면 우리는 무조건 퍼주면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빠듯한 재원으로 복지 제도를 운영하는 우리로서는 다른 나라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최상의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낡은 유럽식 복지 모델을 따라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당시 영국도 강성 노조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는가.

△1970년대만 해도 영국에서는 노조가 마음 먹으면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마거릿 대처 총리는 1984년 광부 노조의 파업에 굴복하지 않고 단호히 맞섰다. 노조의 폐해를 절감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이로 인해 노조를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생각하는 비율이 73%(1979년)에서 1%(1987년)로 떨어졌다. 노동계를 주요 지지 기반으로 삼았던 노동당마저 노조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내 투표 방식을 바꿔버렸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 개혁을 하지 못하고 되레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 정권 출범 초부터 친노동 정부가 오히려 노동 개혁을 앞장서 단행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여권 인사들도 이를 잘 알고 있지만 핵심 지지층의 표를 의식해 노조의 힘만 키워주고 말았다. 귀족 노조가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된 셈이다. 이들은 생산성을 웃도는 높은 임금을 받아내고 청년 일자리마저 빼앗았다. 이번 대선에는 이런 기득권 세력을 척결하고 개혁할 수 있는 인물이 나와야 한다.

-우리 국가와 사회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의 정체성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로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 정권은 개인의 선택권을 줄이고 국가에 권력을 집중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헌법상 기본권인 사유재산권과 시장경제 질서를 대놓고 침해하고 있다. 경제도 정부 간섭과 통제에 시달리고 있으니 10년 후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다수의 횡포’도 민주주의 가치를 정면으로 흔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정체성과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는 정당과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현 정권의 ‘정치 만능주의’가 숱한 부작용을 낳고 있는데.

△정치가 경제에 개입하는 순간부터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차라리 시장이라고 하는 비(非)인격체가 경제를 관리하는 게 낫다. 시장 논리로 풀어야 할 문제를 정치로 접근하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생각이다. 자유주의 사조가 200년 이상 자리잡은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유가 필요하다는 신념을 지켜왔다. 그게 영국의 사상가 존 로크가 주장한 자유주의다. 규제를 줄이고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정치권의 진정한 사명이고 역할이다.

-현 정부 들어 공공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는데.

△국가 권력은 구조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기 마련이다. 영국의 사학자이자 사상가인 액튼 경이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갈파하지 않았나. 가능하면 국가 권력을 줄이는 게 국민 개개인의 행복에 훨씬 이롭다. 국가 권력을 억제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 자유주의이고 여기에 민주주의를 결합한 게 자유민주주의다. 반면 현 정부는 자신들이 공공선을 실행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짓밟는 억지 주장일 뿐이다.

?-그래도 대선 주자들마다 국가가 모두 책임지겠다는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이제는 우리 국민들도 국가가 항상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000만 명이 넘는 주식 투자자들은 일단 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국가의 개입을 원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우파는 개인의 자유 의지와 창의성을 토대로 삶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 해결하기에 버거운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하는 문제에만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국가가 일일이 모든 사람을 보살펴주겠다는 ‘유모 국가’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 세상 어디에도 국민의 삶 전체를 책임지는 나라는 없다.

-집권 세력의 도덕적 타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양심을 지키면서 법치와 진실의 최후 보루가 돼야 하는 법관마저 대장동 개발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이번 기회에 대처 전 총리가 추진했던 것처럼 ‘도덕적 십자군 운동’을 제안하고 싶다. 차기 정권에서는 흠결이 없는 정치 지도자가 나와 이런 운동을 이끌어가기를 바란다. 과거 천주교도 ‘내 탓이오 운동’을 벌이지 않았는가. 매사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남 탓만 하는 지도층부터 철저한 반성이 필요한 때다.

-586세대 정치인들이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와 경제를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많은데.

△한마디로 운동권 출신 586 시대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이들은 사회와 국민에 대한 책임을 망각한 채 단물만 빨아왔다. 좌파 혹은 진보가 우파나 보수에 비해 깨끗하고 도덕적으로 우월할 것이라는 환상이 깨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보수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은 기회다. 어차피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보수도 이런 기회를 살려 공정하고 깨끗한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제1 야당이 정권 폭주 견제와 대안 정당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직후 당시 자유한국당에 강연하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내 생각과 달리 침체된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직 지역구 지키기에만 관심이 있을 뿐 당의 운명이나 보수 미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구심점도 없는 한심한 ‘웰빙 정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보수 정당이라면 자유와 창의성을 말하고 국민 통합을 역설해야 한다. 국민들이 공통된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해주는 게 보수 정당이다. 애국심에 호소하고 자신들의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유연성을 보여주고 외연을 확대해 국가 경영 능력이 훨씬 낫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돌파구를 찾야야 한다.

-보수 야당의 세대교체는 어떤 식으로 진행돼야 하는가.

△보수 정당이 살 길은 젊은 지도자를 육성하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이다. 보수 청년 단체를 육성하고 대학가의 다양한 프로그램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영국 보수당은 일찍이 ‘청년 보수 운동’을 펼쳐 젊은 피를 수혈해왔다. 옥스퍼드대나 캠브리지대의 보수 조직에 소속된 청년들은 매주 만나 토론하고 강의도 들으면서 풀뿌리 정치를 경험한다. 영국 보수당의 에드워드 히스, 대처 전 총리 등이 이런 과정을 거쳐 정치 지도자로 성장했다.

?-우리 현대사를 새롭게 해석한 책도 펴낸 것으로 알고 있다. 문재인 정부 주도 세력 중 상당수가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행태를 보여왔는데.

△한마디로 역사적 무지에서 나오는 행태다. 역사는 당위로 해석하지 말고 사실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좋은 일이면 따라가고 잘못된 일이면 반성할 점을 찾는 게 올바른 자세다. 이런 점에서 우리 현대사를 모두 잘못된 것인 양 치부하는 행태는 큰 문제다. 숱한 위기를 딛고 성공 신화를 일궈낸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She is…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여고와 서울대 문리과대학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1992년부터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사편찬위원회 위원과 한국영국사학회 회장, 서울대 중앙도서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로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해 역사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 ‘정당의 생명력-영국 보수당’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제국주의-신화와 현실’ ‘평등을 넘어 공정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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