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경계 심리가 작동하면서 서학개미들의 포트폴리오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테슬라, 애플, 메타(전 페이스북) 등 기술주를 편식해왔지만 시중금리가 뛰고 시장 스타일이 변화하면서 관심 밖이었던 미국 금융 섹터 상장지수펀드(ETF)에도 적극 손을 뻗고 있다.
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0월 한 달간 국내 투자자는 미국의 대표적 금융 섹터 ETF인 ‘파이낸셜 셀렉트 섹터 SPDR(티커명 XLF)’를 3,321만 달러(약 391억 원)어치 순매수했다. 지난달 해외 주식 순매수 상위 12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XLF의 운용자산(AUM)은 447억 달러(약 52조 원) 수준이며 업종별 구성 비중은 은행 42.7%, 보험 29.7%, 투자은행(IB) 22.4%다.
올해 초만 해도 XLF는 순매수 상위권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는 비인기 종목이었다. 하지만 5월부터 매수세가 유입되더니 그 규모가 6월 984만 달러(약 116억 원), 8월 839만 달러(약 99억 원)에서 10월에는 3,321만 달러로 눈에 띄게 확대됐다. 지난달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금융주에 투자하는 또 다른 ETF ‘뱅가드 파이낸셜스(티커명 VFH)’도 1,578만 달러(약 185억 원)어치 사들였다.
글로벌 각국이 금리 인상에 들어갈 채비에 나서면서 국내 안팎 증시에서 금융주의 주가가 달궈지고 있다. 이달 2~3일(현지 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발표가 유력하며 커진 물가 상승 압력으로 예상보다 빨리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에 돌입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글로벌 IB 골드만삭스는 연준의 금리 인상 시기를 오는 2023년으로 예상했지만 최근 내년 7월과 11월 두 번 인상할 것으로 시나리오를 바꿨다. 지난달 초 0.27% 수준이던 2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는 이달 1일 0.50%를 넘기며 상승세가 가파르고 10년물은 1.56%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캐나다를 비롯한 주요국들도 긴축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은행은 이달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금리 상승은 예대 마진을 개선시키기 때문에 은행 수익성은 금리의 방향과 동행하는 특성이 있다. 실제 XLF는 올해 들어 36.6% 올랐고 국내 KODEX 은행 ETF도 같은 기간 23.2% 뛰면서 투자자들의 매수 심리를 자극했다.
전문가들은 금리 상승 바람과 이익 체력 개선에 힘입어 금융주의 주가 우상향 추세가 더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지방은행 업종도 관심 목록에 올려둘 만하다고 권고했다. 미국 ‘SPDR S&P 리저널 뱅킹(티커명 KRE)’은 미국 지방은행으로 구성된 ETF로 주가가 금리 변동에 더 민감하다는 특성이 있다. 금리 상승기 대형 은행에 투자하는 것보다 강한 상승 탄력을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미국 은행 96곳을 동일 가중 방식으로 구성한 ‘SPDR S&P 뱅크(티커명 KBE)’도 금리 인상의 수혜를 누릴 만한 종목이다. 박승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정책 효과와 인플레이션 경계 심리에 영향을 받아 내년 상반기까지 시장 금리 상승 압력이 이어질 것”이라며 “유동성 환경 변화와 금리 상승 국면에 진입하는 내년에도 금융 업종의 상대적 우위 흐름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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