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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만필]그럼에도 부작용 없는 명약을 꿈꾼다

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





한 번만 먹으면 병이 싹 낫는 약이 있을까. 그런 마법 같은 기적의 묘약이 있다면 아마 많은 환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할 것이다. 의학이 계속 발전하면 언젠가는 그런 약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요원한 바람일 뿐이다. 그래도 현존하는 약 중 가장 근접하는 약을 꼽으라면 ‘스테로이드’가 아닐까 싶다. 스테로이드는 가장 빨리, 효과적으로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으로 유명하다. 필자 또한 몇 년 전에 스테로이드 덕분에 필자를 괴롭혔던 포도막염이라는 눈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포도막염은 안구의 가장 바깥막인 각막과 공막(흰자위) 사이에 있는 중간막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주로 눈이 아프고 시력이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필자의 경우 이런 증상은 미미했다. 대신 땅바닥이 울퉁불퉁하게 보여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걸으면 어지럽고 쓰러질 것 같아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포도막염인 줄 몰랐다. 안과에서는 여러 검사 끝에 약을 처방해줬지만 호전은커녕 증상이 악화되기만 했다. 약을 먹어도 낫지를 않으니 이대로 영영 눈이 낫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밤잠을 설치며 괴로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불안함에 마음이 사정없이 흔들릴 즈음 안과에서 포도막염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새로 약을 처방했다. 먹는 약과 함께 눈에 넣는 안약을 처방했는데 안약 성분이 바로 스테로이드였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3주가량 꾸준히 안약을 넣으니 염증도 많이 가라앉고 바닥이 울퉁불퉁해 보이는 증상도 사라졌다.

스테로이드는 원래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로 개발됐다. 류머티즘 관절염은 관절이 붓고 열감이 나고 심하면 손가락이 휘는 등 관절이 변형되는 병인데 스테로이드를 쓰면 극적으로 좋아진다. 이후 류머티즘 관절염 외 여러 병에서 스테로이드가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지금은 많은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흔히 뼈 주사라고 부르는 것도 스테로이드 성분이고 피부병과 천식에도 스테로이드를 많이 쓴다.



스테로이드의 효과는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효과도 빨리 나타나고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도 탁월하다. 심지어는 밥맛도 좋아져 소화가 잘되지 않아 잘 먹지 않던 사람도 밥을 잘 먹고 피부가 좋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단기간에 한해서다. 짧게 쓰면 명약이 따로 없지만 오래 쓰면 부작용이 심각하다. 골다공증, 피부 반점, 탈모, 당뇨 등 크고 작은 부작용이 수도 없이 많다. 부종으로 얼굴이 보름달처럼 부풀어 오르는 일명 ‘문 페이스’도 스테로이드의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다. 어쩔 수 없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사람들 중 문 페이스로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해하는 분들이 많다.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의사들이 꼭 필요한 환자에게만 스테로이드를 단기간 처방하려고 노력하는 추세다. 필자의 경우만 해도 30여 년 전 새내기 의사였을 때는 스테로이드를 많이 썼다. 스테로이드를 쓰면 드라마틱하게 통증이 줄어드니 안 쓸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스테로이드 처방이 대폭 줄었다.

해외 몇몇 나라에서는 여전히 스테로이드를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 필자가 언젠가 해외 학회에 갔을 때 의료 후진국 의사들이 선진국보다 스테로이드를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의료 후진국에는 대퇴골의 머리 부분이 피가 통하지 않아 서서히 썩는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가 많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스테로이드 남용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추정한다.

아무리 효과가 좋은 약이라도 부작용이 심각하면 명약이라고 할 수 없다. 세상사 모든 것은 좋은 점이 있는가 하면 나쁜 점도 있는 법이니 부작용 걱정 없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명약을 기대하는 것이 헛된 꿈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오늘도 부작용 없는 명약을 꿈꾼다. 오랜 시간 연골이 다 닳아 고생하는 환자들이 약을 먹고 연골이 재생돼 뛰어다닐 수 있다면 그것만큼 짜릿한 일도 없을 것이다.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꿈은 아니지만 하루라도 빨리 그런 명약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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