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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 칼럼] 중국, 공동부유로 가는 멀고 험난한 길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학

3연임 체제 명분 필요한 시진핑

부자증세 통한 소득재분배 꺼내

'구호뿐인 정치' 마법 끝나자마자

고단한 삶의 현장 다시 드러날 것





1992년 1월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불리던 덩샤오핑은 산둥성 취푸에서 겨울 휴가를 마친 후 보수파가 장악한 베이징 대신 남부 지역을 찾아 1989년 톈안먼 사건으로 위축된 개혁개방의 불씨를 살리고자 했다. 그는 이곳에서 안후이성의 상인이 ‘바보표 호박씨’ 상품을 팔아 돈을 번 사람에게 손을 봐줘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득보다 실이 많다고 하면서 먼저 부자가 되게 해줘야 다른 사람들도 뒤따라 올 것이라는 이른바 ‘선부론’을 설파했다. 더 나아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구분하는 기준도 생산력 발전에 유리한지, 종합 국력 증강에 유리한지, 국민의 생활 개선에 유리한지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사상 해방이 필요하며, 우편향도 문제지만 좌편향이 더욱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사회주의 이념의 높은 경계를 허물었다. 그 결과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속에서 폭발적인 고도성장을 구가하면서 중국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그러나 불균형 성장에 기초한 개혁개방의 그림자도 그만큼 넓게 드리워졌다. 중복 투자가 만연했고 지역 간, 소득 간, 도농 간 격차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 이후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2020년 말 불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468에 달할 정도였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소외 집단은 도시 변두리로 몰려들어 슬럼가를 형성했고, 여성과 인권 그리고 노동환경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시진핑 주석이 ‘집은 투기가 아닌 주거의 수단’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할수록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국내총생산(GDP)의 2.4%에 달하는 사교육 시장은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 했다. 뒤늦게 ‘한 가구 자녀 정책’을 풀고 도시와 농촌의 이동을 막았던 호구제도를 폐지했지만 복지의 위기 속에서 저출산·고령화 추세를 막기는 역부족이다. 이렇게 되자 중국의 대중은 문화혁명이 ‘동란’이었다면 개혁개방은 ‘난동’이라며 ‘도대체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왜 사회주의를 해야 하는가, 사회주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진핑 체제는 시장에 책임을 물으면서 새로운 칼을 꺼내 들었다. 공동부유 슬로건을 걸고 사회적 가치를 넘는 기형적 고소득자를 걸러내고 탈상품화한 복지를 제공하는 한편 사회적 기풍을 전면적으로 바꾸고자 했다. 우선 시장의 낙수(spill-over) 효과를 통한 1차 분배, 재정을 통한 2차 분배만으로는 공동부유를 실현하기 어렵다고 보고 고소득자에게 습관과 도덕을 통한 제3차 분배, 즉 일종의 준조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제조 없는 플랫폼 자본을 정면으로 겨냥했고 데이터 스타, 팬덤 문화로 형성된 거대 자본 사슬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이와 함께 과외 등 사교육을 금지하고 인터넷 게임 시간을 규제했으며, 카지노산업법을 개정해 도박 테이블을 줄이고, ‘여성스러운’ 남자 연예인 및 저속한 인터넷 스타를 규제하고, 아이돌 육성 오디션과 스타 2세 예능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검열과 규제의 시대를 열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캠페인 속에서 위축된 기업은 공동부유를 위한 ‘공동부유 기부 행렬’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물론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대중의 수요와 불균형적이고 불충분한 발전’의 차이를 주요 모순으로 간주한 상황에서 기존 발전 모델을 바꾸지 않으면 체제 정당성의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공동부유론이 정치적 기획 속에서 설계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가을에 열릴 중국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성과를 상대화하고 시진핑 시대의 개막을 열기 위한 이데올로기 장치다. 8일부터 시작된 중국공산당 19기 6중전회에서 그 길을 닦고 있다. 이미 시진핑은 ‘의심할 여지없이 역사적 조류를 다스리는 핵심 인물’로 추앙되고, 공동부유는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화두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호의 정치는 마법이 풀리자마자 곧 고단한 삶의 현장을 다시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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