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대출이 아예 나오지 않는 15억 원 이상 초고가 아파트의 가격 상승세가 오히려 가팔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대출 가능 가격대의 중저가 아파트는 상승 폭이 둔화하는 분위기다. 대출 규제가 집값 안정을 불러오기는커녕 중저가와 초고가 아파트 간의 가격 격차를 더 벌리며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를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KB 리브부동산의 지난 10월 5분위 평균 아파트 가격 통계를 보면 서울 내 아파트 중상위 20%에 해당하는 5분위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2억 4,912만 원에서 23억 673만 원으로 2.56% 올랐다. 올 9월 상승률(0.53%)의 5배에 가까운 수치다. 주목할 점은 5분위 아파트 상승률이 1~5분위 가운데 가장 높다는 것이다. 하위 20%인 1분위 아파트의 가격 상승률은 1.04%로 전달 상승률(3.2%)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하위 20~40%에 속하는 2분위 아파트 또한 가격 상승률이 1.77%에서 1.3%로 축소됐다.
1·2분위와 5분위의 상승률 차이는 ‘가격대’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상위 20%인 5분위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대출불가선’인 15억 원을 훌쩍 넘기 때문에 대출 규제와 무관하다. 반면 1분위 평균 가격은 5억 6,336만 원으로 보금자리론 가격 상한선인 6억 원을 넘지 않는다. 2분위 평균 가격은 9억 원 이하인 8억 7,909만 원이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40%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1·2분위에 속하는 중저가 아파트의 경우 대출로 자금을 충당하는 ‘영끌족’이 주 수요층이라 최근 강화된 대출 규제의 타격을 받았지만 대출이 한 푼도 안 되는 초고가 아파트는 대출 규제 강화와 무관하게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2019년 12·16 대책에서 15억 원 이상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했다.
초고가 아파트의 상승세 확대는 실거래가로도 확인된다. 강남3구에서 연일 신고가 거래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송파구에서도 ‘평당 1억 원’에 육박하는 첫 거래가 나왔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전용 82.61㎡(35평형)는 지난달 26일 31억 3,100만 원에 신고가 거래됐다. 전고가는 8월 말 29억 7,800만 원이다. 이미 강남·서초·성동구 등에서는 30평형대 아파트가 30억 원 이상에 매매된 사례가 나온 바 있다. 반면 중저가가 많은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일대에서는 호가를 낮춘 매물들이 출현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가 대출과 무관한 현금 부자보다 서민 주거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원갑 KB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서민들이 주 수요층인 중저가 아파트의 경우 대출 규제의 영향을 크게 받아 상승세가 주춤하는 상황”이라며 “이미 초고가 아파트는 ‘15억 원 이상 대출 금지’라는 규제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양도세 중과 등의 영향으로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수석전문위원은 다만 “초고가 주택 상승세가 계속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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