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경남 합천 해인사를 방문한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친필로 제작된 ‘디지털 반야심경’을 해인사 방장 원각 대종사에게 전달했다. 당시 홍 전 관장은 ‘메타버스’를 언급하며 “네 것 내 것(의 구분)이 없는 세상이 되는 것 같다”고도 말해 화제가 됐다.
이 ‘디지털 반야심경’의 원본은 어떤 유물일까? 추사 김정희가 친필로 쓴 ‘반야심경’은 보물 제547호로 지정된 ‘김정희 종가 유물’에 속한 서첩인 ‘심경첩’이다. 파란색으로 표지에 원본과 같은 '심경첩'이라는 제목이 적혀있지만, 그 옆에 '보물 제547호'라는 설명도 비슷한 글씨체로 함께 적혀 있다. 김정희가 남긴 유물은 국보로 지정된 ‘세한도’를 비롯해 여러 건이 있다.
그 중에서도 ‘김정희 종가 유물’은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김정희 종가에 대대로 전해 내려온 것으로 국보·보물 지정 연도로는 가장 이른 시기인 1971년에 보물이 됐다. 이 유물 일괄에는 김정희의 도장 31과와 염주·벼루·붓을 비롯해 유묵과 서첩, 이한철이 그린 김정희 영정이 포함돼 있다. 홍라희·이재용 모자가 선물한 ‘디지털 반야심경’의 원본인 ‘심경첩’은 그 종가 유물의 서첩들 중 한 권이다.
‘심경첩’은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 전체를 반듯한 해서(楷書)체로 쓴 것이다. 글씨는 총 49자다. 서첩의 표지에 ‘심경’이라는 제목을 썼고, 펼친 면 두 쪽에 각각 3행, 각 행에 평균 8자씩 적었다. 서체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가늘고 옅은 선을 그은 것은 ‘세한도’ 발원문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정성을 들였다는 의미다.
이 ‘심경첩’이 포함된 유물은 김정희 종가가 소유주다. 이 유물과 삼성가와의 인연은 추사 탄생 150주년이던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0월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 2주년 기념을 겸해 첫 기획으로 선보인 고미술특별전 ‘조선말기 회화전-화원·전통·새로운 발견’에 이 ‘심경첩’이 출품됐다. 왕실과 귀족의 전유물이던 서화에 대한 애호가 19세기 중반 이후 중인계층을 중심으로 크게 확산되기까지 제자들을 키워낸 김정희의 영향이 상당했기에, 당시 전시는 추사 만을 위한 특별실을 조성해 해서 ‘심경첩’과 예서 ‘죽로지실’ 등 5점만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이번 ‘디지털 반야심경’에 대해서는 리움미술관 측 관계자도 사전에 전혀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선물에 대해 원각 대종사는 “불교가 연기로 존재하고,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며,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환경과 내가 둘이 아닌 그런 동체대비 정신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앞으로 과학이 모든 것을 현대식으로 공유하는 시대가 온다”는 말로 공유정신에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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