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만나면 어떤 모습이 될까. 낡은 시설이나 건물을 되살려 활용하는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더 나아가 옛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여행지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관광공사가 ‘다시 태어난 여행지’라는 주제로 12월 추천 여행지를 선정했다. 훼손된 자연과 환경에 더 나은 가치를 부여하거나 주변에 나쁜 영향을 끼치던 장소가 친환경 여행지로 거듭난 사례다.
제주 서귀포 ‘빛의벙커’는 국가 기간 시설이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공간이다. 지난 1990년에 해저 광케이블 관리 센터로 지어진 건물을 민간에 넘기면서 가능해진 변신이다. 보안 속에 관리되던 시설 벽면에는 거장들의 예술 작품들이 걸렸다. 현재 빛의벙커에서는 르누아르와 모네·샤갈·클레 등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전시하고 있다. 빔 프로젝터 90대가 벽과 바닥 등에 영상을 투사해 거장의 회화 이미지를 연출하는, 고전의 새로운 해석이다. 내부 공간의 겹치는 면과 선을 활용하면 색다른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빛의벙커 옆 제주커피박물관 바움은 창밖 숲을 바라보며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쉼터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강원도 정선군 삼탄아트마인은 한때 기계 소리 가득한 산업 현장이었다. 1964년 삼척탄좌 정암광업소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뒤 수십 년 동안 광부들의 피땀으로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공간이다. 그 삼척탄좌 정암광업소가 2013년 150여 개국에서 수집한 예술품 10만여 점을 갖춘 복합 문화 예술 단지로 다시 태어났다. 종전 산업 시설은 그대로 살리면서 예술적 요소를 가미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을 받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관광 100선’에도 선정됐다.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공원은 폐정수장을 친환경 생태 공원으로 바꿔놓은 경우다. 선유도공원은 역사적인 산업 유산을 재생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곳이다. 수조에 모래와 자갈 등을 담아 불순물을 걸러내던 여과지는 관리사무소로, 물속 불순물을 가라앉혀 제거하던 약품 침전지는 수질 정화원으로 부활했다.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고 기둥만 남긴 ‘녹색 기둥의 정원’과 옛 침전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의 정원’은 선유도공원의 인기 포토존이다. 야간에는 아치형 선유교가 조명으로 환하게 밝혀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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