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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친일-항일·좌-우로 갈라진 형제들

■특별한 형제들

정종현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강제규 감독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4)에는 특별한 형제가 등장한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형과 그런 형이 목숨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생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우애 깊은 형제는 그러나 한 명은 인민군, 또 한 명은 국군이 돼 전쟁터에서 마주한다. 마치 둘로 갈라진 한반도의 운명처럼 말이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설정일까. 여기 ‘실제로 특별한’ 13쌍의 형제들이 있다. 냉전 시대 포화의 현장이 된 20세기 한반도에서 이들 형제의 삶은 극적이고 얄궂고, 또 어쩌면 기구했다. 한 어미의 같은 배에서 인민군 부역자와 애국자가 나왔고, 우익과 좌익이 태어났다. 신간 ‘특별한 형제들’은 13쌍의 형제들을 통해 이분법적 가르기와 낙인이 낳은 비극, 폭력적 배제를 들여다 보고 한반도라는 공간과 혈연·지연이라는 연고에 갇힌 빈약한 상상력,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진정한 의미의 형제애를 고찰한다.



책에선 전쟁이든 이념이든 대척점에 선 역사 속 형제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정두현·광현 형제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현실 판이다. 평양 개화파 유지의 아들로 태어난 두 사람은 일제 식민지 시기 일본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다. 해방과 분단은 두현과 광현을 ‘형제를 지워야 살 수 있는 운명’으로 몰아넣었다. 평양에서 나고 자란 유지의 장남이자 3·1 운동 때 옥고를 치른, 정두현은 숭덕·숭인·숭실학교 전문 교수를 거쳐 북한 평양의학전문학교 교장으로 초빙 됐고, 이후 김일성종합대학 학부장, 노동당 중앙위원 등을 맡으며 북한에서 탄탄대로를 걷는다. 반면 손꼽히는 자본가이자 친일파였던 윤치호의 사위가 된 동생 광현은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명예 촉탁으로 있다 해방을 맞았고, 이후 미 군정 남한에서 법무관과 관재처 차장을 거친 뒤 서울대 법대 교수를 지냈다. 북과 남, 상대 진영에서 성공한 형제는 서로에게 감추고 지워야 하는 ‘위협적 존재’였다.

책은 이 밖에도 해방 후 공산당 부역 군인으로 생을 마감한 안익조와 그의 동생이자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의 엇갈린 운명을 소개하며 친일·친북, 애국·부역, 진보·보수라는 대립과 낙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일본 통치 시대의 대표적인 매국노와 밀정인 선우순·우갑을 통해서는 이데올로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염치에 대해 묻는다.

책은 비단 특정 시기 한반도의 상황을 돌아보는 ‘과거형 이야기’가 아니다. 극심한 진영 논리와 혐오의 시대는 지금 여기 엄연히 존재하는 진행형의 현실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는 불평등과 차별, 혐오가 심화하고 있다”며 “진정한 의미의 형제·자매애와 연대를 통해 개방적 관용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만이 우리 사회가 살 길이라는 생각을 나누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한다.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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