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책꽂이] 찰나의 기록, 영원한 기억…한국인의 숨결까지 담다

■한국사진사

박주석 지음, 문학동네 펴냄


조선 철종 때인 1862년, 중국의 수도 연경 사절단인 ‘연행단’이 서울을 출발했다. 6개월 간의 연행을 기록한 이항억의 ‘연행일기’에는 음력 1863년 1월 28일 방문한 북경의 러시아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혔다.

“내부에는 사람들의 형상을 잘 본뜬 인물상이 있는데, 머리카락 하나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세밀하게 그린 것이었다.…가까이 나아가 본즉 화상(畵像)을 벽에 걸어놓은 것이었다.”

여기서 ‘화상’은 사진이다. 다음날 이항억과 연행단 일행은 또다시 러시아관을 찾아갔다.

“날씨 맑다. 사진 찍는 사람이 탁자를 하나 설치했는데, 탁자 뒤쪽에 나를 앉힌 다음 움직이면 안 된다고 지시하고 중얼거렸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박명홍과 오상준도 차례로 사진을 했는데, 그 절차는 앞서와 같았다.”

1863년 조선의 사절단으로 중국을 방문해 처음으로 사진을 촬영한 연행단의 한 사람. 사진은 영국 런던대 SOAS가 소장하고 있다. /사진제공=문학동네




조선 사람이 자의에 의해 사진의 피사체로 등장한 첫 사건이었다. 그는 ‘포토그라피’를 “베낀다는 뜻을 가진 사(寫)와 참된 모습이라는 뜻인 진(眞)의 결합어”인 ‘사진’으로 칭했다. 그날의 사진은 영국의 의료선교사 손에 들어갔고 지금은 영국 런던대학 SOAS가 관리하는 아카이브에 소장돼 있다.



사진기록 연구자이자 큐레이터인 박주석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역작 ‘한국사진사’는 사진을 접한 최초의 한국인 이항억과 연행사절단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책은 우리나라의 사진 도입부터 기록의 수단을 넘어 현대미술의 중심에 선 현재의 사진까지 한국사진의 역사를 총망라했다. 약 600쪽 분량으로 수록 도판만 300여 점에 달한다. 사료 조사와 집필을 넘나들며 약 3,000매의 원고지를 채우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앞서 20여 년 전 출간된 고(故) 최인진의 ‘한국사진사 1631~1945’가 해방 직전까지를 다룬 것을 확장, 심화한 이 책은 구본창·이상현·김장섭·고명근에 이르는 미술작품으로서의 한국사진까지 아우르며 우리나라 사진 영상 문화의 정체성을 파헤쳤다.

사진술을 중국과 일본에서 배워 한국으로 들여온 이는 시서화에 능했던 지운영과 김용원, 황철 등이다. 20세기 교과서에는 한국사진사의 출발을 해강 김규진이 창경원 내 촬영장을 조성한 것으로 봤지만, 그보다 10여 년 앞선 1883~84년이 사료로 확인된 사진술의 한반도 상륙 시기다. 저자는 “한국인이 한국 땅에서 한국 사람을 사진으로 찍었던 시기”이며 “주체적인 입장에서 외국의 문물인 사진을 받아들였고 널리 퍼지게 한" 선각자들의 역할을 의미있게 조명했다.



1885~87년에 촬영된 거문도 서도 대장간 주변의 조선 사람들. 사진은 영국국립해양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제공=문학동네


19세기 말 서양의 제국주의는 사진을 통해 세상을 통제하고 ‘이미지의 정치’를 벌였는데, 이는 조선에도 적용됐다. 1885~87년 영국 해군의 동양함대가 남해의 작은 섬 거문도를 점령했을 당시 찍은 사진들이 대표적이다. 영국은 거문도를 ‘포트 해밀턴’이라 부르며 서양 사회에 소개했다. 영국국립해양박물관이 소장한, 같은 시기에 찍힌 거문도 서도의 대장간 사진과 영국 해군의 거문도 주둔 기념사진은 조선을 바라보는 제국의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장간 주변에 쭈그리고 앉은 사내들은 곰방대를 문 중년부터 댕기머리의 청년, 바지도 입지 않은 어린아이까지 하나같이 미개한 듯 보인다. 조선 남성들을 ‘싸잡아’ 무력하게 포착한 이 사진과 달리 거문도 주둔 기념사진 속 영국 해군은 건강하고 당당하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눈빛에서부터 차이가 드러나는 데 이는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선’의 결과물이다.

1885~87년 거문도 주둔을 기념해 사진을 촬영한 영국 해군들. 사진은 영국국립해양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제공=문학동네


김규진이 설립한 ‘천연당사진관’, 한국인 최초로 대학에서 사진학을 전공한 신낙균의 활동, 임응식·박필호·이형록 등이 보여주는 해방 이전 예술사진의 유행과 특유의 미학은 흥미롭다. 광복 후 분단의 시기에는 기록사진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이후 등장한 ‘생활주의리얼리즘 사진’은 한국사진의 새로운 주류가 됐지만 “사진의 미학을 획일화시킨 문제점”을 낳기도 했다. 기록사진을 이끈 잡지의 시대,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현대사진까지 사진의 역사가 파도처럼 넘실댄다.

한국 예술사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구본창의 1995년작 ‘태초에 10-1’.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이다. /사진제공=문학동네


저자는 “한국사진은 서양의 사진과는 달리 일제의 강압 통치와 해방 후의 정치적 혼란과 전쟁, 그리고 유신시대와 같이 표현의 규제를 철저히 받았다는 사실을 감안하고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양에서는 인간 중심 이데올로기를 실현하는 매체의 하나로 사진이 활약했지만, 우리는 달랐다는 것이다. 일제 말 태평양전쟁 때는 물자 통제로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 행위세’라는 세금을 내야 했고, 사진 재료가 수입 다변화 품목에 걸려 질 낮은 국산 인화지만 써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저자는 이 같은 역사를 감안해 “한국사진의 역사를 과연 작품성과 예술성만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면서도 “현대사회에서 사진이 갖는 문화사적 의미, 대중 매체나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사진의 문화적 지배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졌지만 한국사진의 미학적 원리와 독자성을 밝혀낼 한국사진의 역사연구가 필요했다”면서 출간 의도를 밝혔다. SNS가 소통의 중요한 한 축으로 대두되면서 사진이 취미를 넘어 ‘삶의 인증’으로까지 자리잡은 오늘날이라 더욱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5만5,000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