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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손실 2,200억’…지방 사업이면 조건 없이 OK?[뒷북경제]‘

정부, 500억~1,000억 사업 예타 면제 추진

국가 재정건전성 악화 가능성도 커

선거 앞두고 '선심성' 쏟아질 수도





지난 2016년 광주시의 ‘비엔날레 상징 국제타운 조성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 심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축구장 절반 크기의 자료관을 새로 만들고 주변에 공방촌·음악관 등을 둔 문화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게 사업의 골자입니다. 국비 385억 원을 포함해 총 사업비만 1,175억 원에 달하는 거대 프로젝트였습니다.

하지만 경제성 분석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편익 대비 비용은 0.14로 기준치인 1에 한참 못 미쳤습니다. 사업에 수반될 모든 비용과 편익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결과인 NPV는 -2,236억 원으로 추산됐습니다. 조사를 주관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해당 사업에 ‘부적격’ 판정을 내렸습니다.

한데 정부는 비엔날레 국제타운 조성 사업처럼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한 사업에 ‘심사 패스권’을 쥐여주는 안을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균형 발전 성과와 초광역 협력 지원 전략 보고’ 행사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초광역 협력 지원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국가재정법에 규정된 예타 비대상 사업 기준을 완화하는 안을 검토할 계획입니다. 현재는 총사업비 500억 원, 국비 300억 원 이하 사업에 대해 예타를 생략하는데 이를 각 1,000억 원, 500억 원으로 상향하는 식입니다. 법이 개정되면 사업비 500억~1,000억 원, 국비 300억~500억 원이 소요되는 사업은 이전과 달리 예타를 받지 않게 됩니다.





문제는 법이 개정되면 사업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지역 민원성 사업 등을 제어할 방도가 없다는 점입니다. 25일 서울경제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예타를 신청한 사업을 전수 조사한 결과, 사업비로 500억~1,000억 원(국비 300억~500억 원)이 책정된 사업 63건 중 18건은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비용을 기준으로 보면 총사업비 3조 8,629억 원 중 1조 976억 원 규모의 사업이 심사 기준을 넘지 못했고요. 셋 중 하나는 세금 낭비가 불 보듯 한 사업이라는 얘기입니다. 예타 업무를 담당했던 전직 관료는 “지자체가 예타에서 탈락된 사업을 제목만 바꿔 달아 다시 밀어붙일 수 있다”면서도 “법이 바뀌면 심사 대상 자체에서 빠지기 때문에 정부에서 만류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우려했습니다.

정부가 ‘혈세 낭비’ 우려에도 예타 허들을 낮추려는 이유는 뭘까요. 정부는 수도권과 지역 간 불균형 문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현행 예타 비대상 사업 기준이 20년 전에 만들어져서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예타제도는 1999년 도입된 이래로 선정 기준이 줄곧 500억 원(국비)였다”면서 “그간 경제 규모와 물가가 올랐던 점을 고려하면 현실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비대상 사업 기준 이외 예타제도의 근간을 이루던 기준은 그간 조금씩 허물어져왔습니다. 도입 초기 경제성 분석만 하던 예타는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경제성 가중치가 낮아지고 정책성, 지역 균형 발전 평가도 함께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비수도권은 경제성 분석 비중을 기존 35~50%에서 30~45%로 낮추고 25~35%였던 지역 균형 발전 분석 비중은 30~40%까지 높였습니다. “예타의 기본 골격이 너무 오래된 버전”이라는 정부 설명은 절반만 맞는 셈입니다.

지역 사업에 대한 빗장을 풀수록 지역 경제가 활성화할 것이란 논리도 한계가 있습니다. 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박형수 연세대 객원교수는 “제대로 된 도로가 안 닦여 있어서 지방이 위기에 처한 게 아니다”라면서 “지역 살리기와 예타 기준 완화를 연동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심사에만 1년이 넘게 걸려 사업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예타 자체를 면제하는 것은 과하다는 반론이 많습니다. 예타 업무를 담당했던 한 전직 관료는 “심사 과정 자체만 놓고 보면 몇 년씩 걸리는 일은 거의 없다”면서 “지방자치단체에서 애초에 성긴 사업계획서를 가져오는데 가능한 통과시켜보려고 수정을 몇 차례 요구하다 보니 심사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정부 안팎에서는 심사 기준을 점점 낮출수록 국가 재정 운용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특히 어려운 의무 지출 비중이 총 지출 대비 50%에 이를 정도로 높아 재량 지출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예타 기준마저 허물어진다면 긴급히 필요한 수요나 미래를 대비한 재정 투입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예산 쓰임이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일을 막아보겠다고 만든 게 예타”라면서 “기준 상향이 불가피하다면 점진적으로 높이는 게 적절할 텐데 (정부 안은) 다소 과한 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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