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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의료 민영화는 금지되었나

이경권 엘케이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이경권 엘케이파트너스 대표변호사/사진 제공=엘케이파트너스




우리 사회에서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주제가 몇 가지 있다. 학벌, 지역감정, 세대 갈등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술자리의 안줏거리로 얘기할 수는 있으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잘못 말하면 엄청난 후폭풍을 각오해야 한다. 유사한 것 중 하나가 의료 민영화다. 일반인들, 심지어 관련 시민 단체 활동가 중에서도 의료 민영화가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의료 민영화가 되면 의료비가 몇 배나 상승하고, 진료를 거부당할 병원이 생기며, 건강보험료도 엄청나게 오르게 될 것이라는 추측성 전망만 내놓는다. 사회문제를 진단하고 올바른 해답을 마련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문제에 대한 참가자들의 인식 차이다. 의료 민영화도 그렇다. 의료 민영화의 내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고 인식의 정도도 다르다 보니 제대로 된 원인 분석과 이를 바탕으로 한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다.

의료 민영화는 대체적으로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개설 허용 △건강보험 시장에의 민간 자본 참여 보장 △의료 서비스의 종류 및 가격에 대한 자율 책정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의 폐지 등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의료 민영화가 진행됐나. 먼저 영리법인은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 그러나 대표적 재벌들은 비영리법인을 설립해 대형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비영리법인에 대표이사라는 직위를 두고 운영을 함에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중혼(重婚)이 법률상 금지돼 있음에도 기사에서 ‘몇 번째 부인’이라는 용어를 버젓이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민간 보험회사가 국민건강보험과 동일한 수준의 건강보험 상품을 판매할 수는 없어도 실손보험과 같은 보완적인 보험 상품은 팔도록 허용하고 있고, 그 시장 규모도 커지는 추세다.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는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가격을 책정할 수 있으며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위헌이라는 헌법 소송은 주기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간통죄처럼 위헌 결정이 내려지기를 바라며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 의료 민영화가 진행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대형 병원을 개설·운영하려면 개인이나 비영리법인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 대규모 자본 동원이 가능한 다른 경제주체인 정부는 공공 병상을 늘리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17년 전체 병상 중 공공 병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10.2%였으나 2020년에는 9.7%로 오히려 줄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의료기관 이용률 저하로 보장성을 확대했음에도 약 18조 원의 건강보험 적립금이 남아 있다고 한다. 매년 1조 원만 공공 병상 확보에 사용하면 좋겠으나 포화된 민간 병원들의 반발로 사실상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면 새로운 장비 도입, 설비 보강이나 병상 확충은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의료 민영화를 백안시하지만 말고 허용할 부분과 반드시 금지해야 할 부분을 가려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반대는 쉽지만 대안 제시는 어렵다. 정확한 현실 인식과 치열한 고민, 연구를 통해서만 대안이라는 생명이 탄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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