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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대·칭화대, 창업 요람 탈바꿈…韓 대학은 규제 갇혀 논문만 양산

[2022 성장엔진을 다시 켜라-과학기술 대혁신]

<2> 갈길 먼 대학 '파괴적 혁신'

등록금 사실상 14년째 묶여 기자재 구비·실험 등 쉽지않아

美, 대학 인근 밸리 구축…中 대학기업 매출은 서울대 1,000배

韓, 논문 위주 풍토 벗어나 산학협력·기술사업화 적극 확대를





“총장들 10여 명이 모였을 때 ‘대학에 대한 각종 규제를 좀 풀어달라’고 교육부에 건의하자는 얘기가 나왔죠. 그런데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다들 총대 메고 나서기를 꺼려 해 유야무야됐습니다.” (익명을 원한 서울의 한 주요 대학교 총장)

교육부는 올해 대학 등록금 인상률 법정 상한선을 1.65%로 공고하며 14년째 사실상 동결 기조를 이어갔다.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오랫동안 등록금이 동결돼 실험 기자재 구비가 어려워 실험 수업을 수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인턴십이나 기업과의 협력 프로그램도 제대로 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정진택 고려대 총장은 “차기 정부는 대학에 대해 중국처럼 재정 지원을 크고 튼튼하게 하거나 미국처럼 규제를 없애 혁신적인 대학을 꿈꿀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립대의 재정이 무척 어려운데 교육부 등은 안 되는 것 위주로 접근해 대학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병헌 청와대 중소벤처비서관은 “문재인 정부에서 창업 인프라를 확대하기 위한 투자를 많이 했으나 대학의 혁신을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한 점은 굉장히 아쉽다”며 “차기 정부에서는 청와대나 정부 부처가 합심해 대학의 파괴적 혁신을 끌어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대학이 미국·중국·이스라엘처럼 기술 사업화를 통해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파급효과가 큰 논문과 특허를 만들어 기업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고 창업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기업가형 대학’으로 탈바꿈하자는 얘기다. 차별화된 수소 용기 스타트업을 창업한 하성규 한양대 산학협력단장은 “대학가에는 ‘논문을 위한 논문’을 쓰는 연구자를 빗대 ‘김 작가, 이 작가, 박 작가’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며 “이는 교원 임용·승진·재임용 과정에서 논문 위주 평가 방식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푸드테크 벤처를 창업한 이기원 서울대 교수는 “박사나 박사후연구원·조교수 단계에서 이미 논문 위주의 풍토에 젖어 기술 사업화에 대한 마인드가 부족하다”며 “대학 인재 분포 측면에서도 다양성과 혁신성이 제한된다”고 거들었다.

현실에 안주하는 대학 문화는 테뉴어(65세 정년 보장 정교수)만 되면 사실상 철밥통이 되는 구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KAIST-삼성전자 산학협력센터장)는 “산학 협력, 기술이전, 창업이 잘 되기 위해서는 파격적으로 얘기하면 테뉴어 제도를 없애야 한다”며 “저부터 테뉴어를 반납하고 계약직으로 전환할 용의가 있다”고 고백했다.



이런 문화에서는 코로나19 모더나 백신처럼 대학 연구실에서 혁신 연구가 꽃피우기 쉽지 않다. 10여 년 전 하버드대 의대 연구실에서 씨앗이 뿌려진 모더나 백신은 대학의 뛰어난 연구력, 혁신 스타트업과 함께하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스타트업과 함께 크는 투자 문화가 맞물려 가능했다. 항암제 개발사를 창업한 윤채옥 한양대 교수는 “보스턴밸리처럼 미국 대학가는 기술 사업화 문화·생태계가 확실히 자리 잡고 있다”며 “산학 융합이나 기업가 정신도 활성화돼 있다”고 말했다.

실제 프린스턴대·컬럼비아대 등 미국의 한 대학이 국내 대학 전체의 연간 기술이전료(로열티 수입)를 능가하는 곳이 적지 않다. 실리콘밸리·보스턴밸리·리서치트라이앵글처럼 대학 주변에 밸리를 조성해 미래 성장 동력을 창출한다. 이는 베이징대나 칭화대 등 중국 대학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에 참여하는 김무환 포스텍 총장은 “미국이나 중국 대학들이 엄청난 연구비를 바탕으로 의대와 공대·자연대, 인문계까지 어우러져 바이오헬스 등 융합 연구를 하는 것을 보면 등골이 서늘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박한수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 겸 지놈앤컴퍼니 대표는 “미국에서는 의대를 나와도 의사과학자가 되거나 글로벌 제약사나 바이오 벤처·스타트업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창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은 “스타트업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의 경우 베이징대와 칭화대가 창업의 요람으로 변모했다”며 “베이징대와 칭화대의 대학 기업 매출이 각각 연 14조 원, 8조 4,000억 원으로 서울대의 1,000배 수준에 달한다”고 밝혔다.

미국·중국뿐 아니라 이스라엘·싱가포르 등 글로벌 흐름은 기업가형 대학이다. 국내 대학이 논문 등을 위주로 평가하는 ‘QS’나 ‘THE’ 등 세계 대학 평가 기관의 순위에 목을 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국 대학의 기술이전 수입은 총 1,019억 원에 그쳤고 그나마 절반가량은 연구자에게 성과급으로 지불됐다. 여기에 668억 원은 국내외 특허출원·유지비로 썼다. 연구자 성과급과 특허출원·유지비를 감안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는 “미국·중국·이스라엘 등의 유수 대학은 대체로 교육과 연구를 창업 등 기술 사업화와 동전의 양면처럼 본다”고 전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의 심화로 글로벌 밸류체인(모방 경제)이 무너지면서 기술 혁신이 성장 동력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다”며 “정부가 올해 대학·출연연·기업에 지원하는 약 30조 원의 연구개발(R&D) 투자비가 영향력이 큰 연구와 기술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게 차기 정권이 새 판을 짜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울대·KAIST를 비롯해 아직 한국 대학 교수 창업가 중 나스닥에 상장된 사례가 하나도 나오지 않은 것도 이른바 ‘SCI 망국병’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린다. 대학 실험실 창업 1호인 박희재 서울대 AI밸리 단장은 “대학이 ‘SCI 망국병’의 틀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며 “절박하게 혁신하고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천세창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융합촉진 옴부즈만(차관급)은 “대학과 공공 연구기관에 투입한 막대한 R&D 예산은 파괴력이 있는 원천·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토대가 돼야 한다”며 “연구가 특허·사업화로까지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차기 정부의 주요 과제”라고 힘줘 말했다. 박상욱 과학기술과미래연구센터장(서울대 교수)는 “대학이 학과 간 장벽을 허물고 미국 MIT 미디어랩처럼 학과 소속 없이도 창의적 융복합 연구를 할 수 있는 부설 연구소를 활성화해야 한다”며 대학 연구비에 블록펀딩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대학의 기술 사업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업가형 대학’에 인센티브를 많이 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우승 한양대 총장은 “파급력이 강한 교원 창업이 많지 않은 현실은 영향력이 큰 논문과 특허를 내지 않고 양적 위주의 성장에 의존했기 때문”이라며 “다행히 요즘은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 과정에 있는데, 차기 정권은 기업가형 대학을 적극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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