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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해피 뉴 이어' 한지민의 눈에는 서사가 있다

'해피 뉴 이어' 한지민 /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지민은 순간 변하는 감정선을 눈동자에 담을 줄 아는, 눈으로 말하는 배우다. 슬픔은 더욱 진하게, 기쁨은 더욱 환하게, 사랑은 더욱 애절하게 표현하는 그의 눈에는 서사가 담겨 있다. 이는 평범한 캐릭터도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며 그 진가는 커다란 스크린을 통할 때 빛을 발한다.

한지민이 출연한 '해피 뉴 이어'(감독 곽재용)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호텔 엠로스를 찾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인연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옴니버스 식으로 14명의 등장인물들이 나와 6가지 에피소드를 만든다. 그중 한지민은 15년째 친구인 승효(김영광)를 짝사랑하면서 고백을 망설이는 소진 역을 맡아 전체적인 작품을 끌고 나간다. 승효는 소진의 속도 모른 채 여자친구 영주(고성희)와의 결혼을 깜짝 발표하고, 소진은 이들을 막기 위해 귀여운 계략을 꾸민다.

곽 감독은 영화 '비 오는 날 수채화',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연출해 대한민국 로맨스 영화의 거장으로 불린다. 한지민이 출연을 결심한 이유도 곽 감독과의 작업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감독님의 작품을 봐왔었고, 좋아했던 팬으로서 감독님 작품에 출연하는 건 큰 영광이었죠. '클래식'을 보면 아직도 그때의 설렘이 떠올라요. 작품이 한 사람의 가슴 안에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죠. 처음 미팅을 갔는데, 감독님이 정말 반갑게 저를 맞이해 주면서 환한 웃음을 지으시더라고요. 감독님은 순수하고 맑은 분이에요. 어떻게 보면 오랫동안 멜로나 로맨스 장르를 연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감독님이 순수한 모습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인가 싶어요. 이번에는 다양한 캐릭터 중 하나였는데, 다음에는 감독님과 정통 멜로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작품이 옴니버스 구성이라는 점도 출연을 결심한 큰 이유 중 하나였다. 한 작품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다채로움이 매력이었다. 촬영하면서 다른 배우들의 로맨스 부분이 궁금해 촬영분을 먼저 보면서 설렘을 느끼기도 했다. 무엇보다 체력적으로 힘이 덜 들고, 개봉할 때 압박감이 N 분의 1이 되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에피소드들의 감정이 다 전달됐어요. 고등학생 커플은 순수함이 좋았어요. 처음이라는 감정은 더 많이 긴장되고 떨리고 설레잖아요. 제가 연기를 일찍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풋풋한 이야기를 안 해봤더라고요. 다시는 내가 할 수 없는 역할이라 부러웠어요. 시나리오를 봤을 때 가장 마음의 와닿은 건 재용(강하늘), 수연(윤아) 커플이었어요.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있는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한 사람만 있으면 극한의 상황에 닿진 않겠구나'를 느꼈죠. 큰 위로로 다가오더라고요. 용진(이동욱), 이영(원진아) 커플은 백마 탄 왕자 같은 로맨스라 설렜어요. 상규(정진영), 캐서린(이혜영) 커플을 보고는 '내가 중년에 누군가를 만나도 부끄럽지 않고, 멋진 사랑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좋았죠. 이광수를 보고도 놀랐어요. 현장에서도 짓궂은 느낌보다는 매니저로서의 캐릭터에 빠져 있더라고요. 감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멋지고 대단해 보였어요. 감정 연기가 섬세해서 귀엽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했어요."

'해피 뉴 이어' 한지민 스틸 / 사진=CJ ENM 제공


그러나 옴니버스 특성상 여러 커플이 나오다 보니 한 커플의 서사를 전부 보여줄 수 없었다. 결국 시간의 한계에 부딪혀 편집된 장면이 생기게 됐고, 이는 한지민에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소진과 승효의 과거가 담긴 장면이 들어갔으면 소진의 감정선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었을 거라고 토로했다.

"과거부터 소진과 승효가 서로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장면을 촬영했어요. 마냥 소진이가 승효를 혼자 좋아하고 기다린 게 아니라 승효도 마음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죠. 둘이 입맞춤 전까지 갔는데, 소진이가 나름 입맞춤을 준비하기 위해 화장실로 뛰어가는 장면이에요. 그런데 나와 보니 다른 친구들이 와 있고, 분위기는 바뀐 거죠. 인연이 안됐던 이유들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찰나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 장면이라서 아쉽더라고요."

짝사랑을 해본 적은 있으나 짝사랑 연기는 처음이라는 한지민. 상대 배우와 애정을 주고받은 연기를 해봤을 뿐, 자신을 바라보지 않은 상대를 향한 감정만 키우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짝사랑하던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 주던 장면을 촬영할 때는 쓸쓸하고 묘한 감정을 느끼기까지 했다.

"그동안 캐릭터들은 어떻게 보면 한 감정들로 연기하기 편했나 싶어요. 남녀가 만나서 서로 티격태격하고, 사랑이 이어지는 주인공적인 감정만 해봤는데, 소진을 통해서 사랑이 안 이뤄지는 감정도 표현하고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바라봤을 때의 감정도 연기할 수 있어서 새로웠죠. 소진을 연기하면서 사랑 앞에서 소극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표현해야 된다는 걸 배웠어요."

"실제론 짝사랑이 더 편한 것 같아요. 혼자 좋아하는 마음도 나쁘지 않잖아요. 저도 친구를 좋아해 본 적이 있어서 소진의 마음에 공감이 되더라고요. 좋아하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자리하고 있지만, 모든 신경은 그 친구에게 가 있는 기억이 있어서 더 몰입할 수 있었죠. 소진과 다른 점은, 전 친구들을 짓궂게 방해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릴 때는 제가 좋아하는 친구를 제 친구가 좋아하면, 둘을 연결해 주려고도 했죠. 내 친구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면 더욱 표현을 못 하는 편이에요. 내 가슴이 아프고 슬프더라도."





승효와 소진의 마지막 엘리베이터 신은 소진이 마음을 처음으로 고백한 장면이었다. 심지어 결혼을 한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덤덤하게 털어놓고, 다시 친구로 돌아오는 세심한 감정선이다. 중요한 장면인 만큼 한지민은 감정적으로 촉촉해지기 위해 애써야 했다.

"상황이 너무 안타깝지 않나요. 너무 감정을 주면 상대에게 부담이 되지만, 처음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거라 촉촉한 느낌도 있어야 됐어요. 그리고 바로 전환돼 원래 친구처럼 환하게 웃어야 했죠. 감독님이 무전기에 대고 우리를 웃기려고 노력하셨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하셨는데, 귀여워서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승효와의 감정을 정리한 소진은 새로운 남자인 진호(이진욱)를 만나면서 결말을 맞는다. 소진과 진호가 맺어질지는 열린 결말로 남은 상황. 한지민은 누군가를 한없이 혼자서만 같은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소진의 마음은 감동스럽지만, 이제는 소진이 진호와 이뤄져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마지막 쿠키 영상에서 소진이 진호에게 '왜 거절당했는지 알 것 같다'고 하잖아요. 이게 진호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희망찬 대답이었던 것 같아요. 소진도 진호가 싫었으면 거절하고 나왔을 텐데, 솔직하게 얘기한 것 자체가 나름 귀엽고 예쁘게 봐줘서 그런 거죠."

한지민은 눈이 깊은 배우다. 이번 작품에서도 사랑에 빠졌다가 실연당한 소진의 감정은 한지민의 눈을 통해 전달됐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 한지민이 느낀 소진은 무난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해야 소진의 다른 매력 포인트를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다양한 표정과 눈빛을 표현하는 방법을 택했다. 신 하나에서도 한 가지 감정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감정을 녹이려고 노력했다고. 승효의 여자친구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서운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등 디테일한 표정과 눈빛을 담으려고 했다.

"최근 짧은 영상들이 돌아다니면서 '울고 있는 눈'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어요. 저는 제 눈을 빤히 볼 수 없으니까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감독님들이나 시청자분들이 눈 얘기를 많이 해줘서 기뻐요. 배우에게 눈은 참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그동안 제 얼굴 중에 어디가 마음에 드냐고 물어보면 부끄러워서 '귀'라고 대답하곤 했거든요. 사실은 눈동자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한지민 /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지민은 어느덧 데뷔 20년 차를 바라보고 있다. 한 길을 오랫동안 걷고 있는 게 신기하다고.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어려운 마음이 커서 막연하게 30대가 되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많이 부족한 걸 알지만, 이렇게 기회가 꾸준히 와주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고 있어요. 가끔 해이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 생각을 하면서 절 붙잡고 있죠. 매 작품이 그때의 나를 만났기 때문에 조금씩 성장할 수 있게 해줬어요. 눈에 띄는 성장은 아니었을지라도 분명히 어느 정도 기반을 갖추게 만들어준 거죠."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해피 뉴 이어'라는 단어를 들으면 약간의 심장 떨림과 설렘이 생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올해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게 되는 느낌이다. 새해가 다가오면 새롭고 반가운 일이 생기길 희망하는 만큼, 이뤄지지 않더라도 새로운 시작 앞에 서 있는 느낌이 좋다.

"2021년은 참 여러 가지로 높낮이가 많았던 해예요. 전 무난한 걸 좋아하는데, 2021년의 시작은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감사하게도 '해피 뉴 이어'를 만나게 됐고, 그나마 빛이 있는 곳으로 나올 수 있었죠. 현장의 분위기를 통해 에너지를 많이 얻었어요. 여름이 지나면서부터는 배우로 바쁜 생활을 한 것 같아요. 2021년은 어렵게 시작했지만, 다양한 작품을 연기하게 돼서 감사해요."

"2022년 계획은 세우지 않았아요. 뭔가 계획표를 세웠는데 해내지 못하면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어떤 일을 이뤄내야지'라는 것 자체가 저한테 무겁게 다가와요. 한 치 앞도 못 보는 게 인생인데, 계획한다는 것 자체가 광범위한 것 같아요. 올해는 그냥 건강하고 싶어요. 작품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건강을 챙기는 게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걸 느꼈어요.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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