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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혹독한 추위 지나 봄은 온다…호크니로부터의 편지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데이비드 호크니, 마틴 게이퍼드 지음, 시공아트 펴냄


책을 펼치면 맨 앞에 사진 한 장이 나온다. 푸른색 스웨터에 빵모자 눌러쓴 할아버지가 무릎에 아이패드를 올려놓고 햇살 비치는 창가 옆에 앉아 탁자 위 화분을 그리고 있다. 창밖으론 초록빛 한껏 머금은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여전히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평생의 업(業)’이라 생각하며 60년 넘게 그리고 또 그려 온 사람, 작업에 대한 열정만큼은 언제나 푸른 봄(靑春)인 이 남자는 ‘21세기의 피카소’라 불리는 영국 출신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남자와 수영장 밖에서 그를 응시하는 또 다른 남자가 나오는 그림, ‘예술가의 초상화’(1962)를 그린 사람이자 작품에 등장하는 ‘응시하는 남자’다.

호크니가 노르망디 전원에 지은 작업실 전경을 그린 아크릴화 ‘입구’(2019)/시공아트




신간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는 호크니가 2019년부터 프랑스 노르망디에 머물며 관찰한 자연과 삶과 예술에 대한 생각, 그리고 이 사유가 녹아 들어간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다. 호크니는 지난 2018년 프랑스 여행을 하던 중 서북부 노르망디의 자연과 햇빛에 매료됐고, ‘충동적으로’ 작업실로 쓸 집을 구해 2019년 이곳에서 봄을 맞이한다. 그런데 노르망디에 머물던 중 코로나 19가 확산했고, 호크니는 오로지 자연에 둘러싸여 시시각각 변화하는 흐름을 관찰하고, 이를 담아내는 ‘흥미로운 고립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그의 벗이자 미술평론가인 저자는 호크니와 주고받은 이메일과 영상 통화 등을 바탕으로 노(老) 화가의 노르망디 생활을 펼쳐낸다. 둘의 대화와 부연 설명 속엔 호크니의 예술과 주요 작품에 얽힌 이야기, 다른 위대한 예술가들에 대한 생각 등이 녹아 있다.

2019년 5월 노르망디 작업실에서 ‘입구’ 작품을 애완견 루비와 함께 바라보는 데이비드 호크니/시공아트


한 인간이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그려 나간 그림과 소박한 감상, 그 속에 담긴 일상의 소중함을 맛보는 재미가 크다. ‘이곳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사과나무, 배나무, 자두나무 등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있고 사방 어디서든 하늘이 보입니다. 하늘은 놀랍습니다. 어떤 때는 아주 큰 흰 구름이 떠 있는데 하늘의 파란색을 배경으로 흰색이 잔물결 칩니다.’ 전 세계에 불어닥친 팬데믹에 호크니는 더 작은 세상 안에 머물며 더 많은 것을 발견했다. 나무껍질에 비치는 빛의 잔물결, 봉오리 움틀 준비를 마친 사과나무 꽃, 황홀하게 아름다운 벚꽃 나무…. 책에 실린 이 시기 호크니의 주요 작품들은 대부분 생(生)의 기운을 머금은 자연이다. ‘전염병 사태는 봄이 전개되는 과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저자의 표현처럼 80세 넘은 고령의 예술가는 전 세계가 바이러스와 봉쇄로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을 날 때 ‘봄’을 담아내고 있었다. 호크니의 봄은 단순한 계절의 기록이 아닌, 혹독한 추위 지나 잎 돋고 꽃 피는 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다.

호크니가 노르망디에 머물며 아이패드로 그린 벚꽃나무 그림 ‘No.180’/시공아트




책에는 지난해 영국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열린 신작 전시 때 선보인 작품이 다수 실려 있다. 그가 2010년부터 작업에 사용하고 있는 아이패드에 대한 내용, 지난해 국내에서도 옥외 스크린에 상영된 그의 애니메이션 ‘태양 혹은 죽음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음을 기억하라’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피카소, 고흐, 모네 등 거장들의 작품까지 자유롭게 오가는 대화를 통해 호크니의 예술, 삶에 대한 태도도 자연스레 마주하게 된다. 2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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