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10만 명 이상의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키고 군사훈련을 진행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연이어 개최된 미러 화상 정상회담, 러시아와 미국·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간 고위급 회담에서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설을 부인하면서 우크라이나·나토발 안보 위협에 대응한 군사훈련의 일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30일 ‘쿠바 미사일 위기(1962년)’를 거론하며 나토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서 설정한 ‘레드라인(한계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후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15일 레드라인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조약안 2개를 미국과 나토 측에 제시한 뒤 이를 통한 법적 안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은 불가피하게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와 러시아 간 군사적 충돌은 물론 러시아와 서방 국가 간 대립 심화로 비화되면서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위기는 지난 30여 년간의 복합적인 요인, 즉 우크라이나의 탈러 정책과 나토·유럽연합(EU) 가입 정책, 러시아의 유라시아 통합 및 세력권 유지 정책, 미국·EU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정학적·지경학적 경쟁 첨예화 등으로 축적, 촉발됐다.
전쟁 위기로까지 비화된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갈등의 첨예화 요인과 과정은 3단계를 거쳐 진행됐다. 1단계는 독립 후 추진된 우크라이나의 탈러 정책과 나토·EU 가입 정책이다. 전쟁 위기의 핵심 요인인 나토 가입 추진의 경우 우크라이나는 1994년 소연방 구성국 중 첫 번째로 나토협력국(NATO-PFP)에 참여했으며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지원에 힘입어 성공한 오렌지 혁명 이후 출범한 친서방 정부는 대미·대나토 협력 관계를 강화했다.
이 기간에 러시아는 NATO-PFP에 참여하면서도 미국의 나토 동진, 특히 옛 소련 구성국의 나토 가입을 강력히 반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러시아는 1997년 나토와 파리에서 신회원국에 나토의 병력과 무기를 배치하지 않기로 합의했고 2002년에는 대통령과 외교·국방장관이 회담에 참여해 안보 문제를 긴밀히 협의하는 나토·러시아 상설합동위원회(NATO-Russia Council)를 확립하는 조건으로 발트 3국의 나토 가입을 수용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시민혁명으로 출범한 친서방 정부가 나토 가입을 적극 추진하자 이들 국가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해 전쟁 불사의 강력한 반대 정책을 추진했다. 또 러시아는 2010년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당선을 후원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 중단 정책을 채택하게 했다.
2단계는 유로마이단 혁명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물론 러시아와 미국·나토·EU 간 관계도 극도로 악화됐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 분리주의자 지원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정책과 EU와의 ‘제휴 협정’ 추진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EU가 우크라이나와 제휴 협정을 체결하려 하자 러시아는 자국에서 추진하는 유라시아 경제 통합 정책을 약화시키고 결국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토대를 구축할 것으로 인식해 경제 제재, 외교적 압박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다.
미국 등 서방 세계의 지원에 힘입은 유로마이단 혁명 세력은 2014년 2월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중재 합의안을 무시하면서 일방적으로 의회를 장악해 정권·정책 변동을 주도했다. 특히 이들의 친서방 정책 천명과 러시아어 공용어 폐지 정책 선언은 독립 이후 러시아 복귀 정책이 발생했던 크림반도 내 러시아인들의 우려와 반발을 자아냈고 러시아는 이를 활용해 2014년 3월 전격적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한 뒤 크림반도 합병 조치를 취했다.
미국은 이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나토, EU, 주요 7개국(G7) 차원에서 대러 외교·경제 제재를 주도했다. 군사적 대응도 강화했다. 2016년 7월 폴란드에서 개최된 나토 정상회담에서 과거의 약속을 파기하고 발트 3국과 폴란드에 4개 대대, 4,500명가량을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또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약 25억 달러(2021년 4억 달러)를 지원했으며 무기 가운데는 훈련용 장비와 소형 무기, 자벨린대전차미사일, 경비정, 레이더 등이 포함됐다.
3단계는 반러·친우 성향의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관계가 소원했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부에 친우·반러 정책을 표방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은 나토와의 협력 강화, 군사력 증강 정책, 대러 압박 정책의 호기로 작용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9월 유럽 지도자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이어 두 번째로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했으며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향후 미국과 나토는 협상을 지속할 것이나 러시아가 레드라인으로 제시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불허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나토가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인정하면서도 1949년 창설 이후 유지해온 문호 개방 정책을 수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정을 추진할 경우 회원국 간 이견과 분열을 촉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는 돈바스 동부 지역의 분쟁지역화 등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저지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나토도 우크라이나의 조기 회원 가입을 추진하지 않으면서 군사 협력 및 지원을 확대, 심화해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사실상 준회원국 지위에 부합하는 대우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대러 대항력 신장은 물론 러시아의 유라시아 통합 정책, 세력권 확장 정책을 억제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와 미국·나토는 러시아가 조약안을 통해 제안한 우크라이나 및 인접 나토 회원국 내 지상 발사 단·중거리 미사일 배치 금지에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 또 접경 지역에서의 군사훈련 및 병력 주둔 축소 등에 합의할 가능성도 높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미국·나토·EU가 공언하듯이 러시아에 대한 전례 없는 강력한 제재가 부과될 것이고 이는 러시아의 외교·경제·안보 환경을 크게 악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또 미국 등이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분리주의 점령 지역을 침공할 경우 ‘돈바스+지역 점령’ 등 최소한의 군사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쿠바와 베네수엘라에 군 기지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러시아의 대미 협박과 이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반발이 역설적으로 증명하듯이 미러 양국 간 상대국의 안보 이익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강대국 정치가 작동해 외교적 해법 찾기, 즉 앞서 이야기한 레드라인과 관련한 부분적 합의 및 ‘민스크 협정 2’를 통한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정치외교적 노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위기는 약소 중간국의 실용주의 외교에 대한 필요성을 증명한다.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지경학적 중요성으로 소연방 붕괴와 더불어 강대국, 특히 미러 세력 경쟁의 장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치 엘리트들은 지난 340여 년간 축적된 여러 분야에서의 상호 의존성과 공생 네트워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독립 후 서구편향적 정책을 우선시했고 그 결과 미러 간 세력 다툼의 희생물이 됐다. 따라서 미중 간 전략 경쟁의 접점에 위치한 한국은 우크라이나의 외교적 실패를 교훈 삼아 한미 동맹을 우선시하면서도 여타 주변 강대국들과 높은 수준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실용주의 외교를 추진해야 한다.
고재남 원장은
미국 미주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외교부 국립외교원에서 1991~2019년 러시아·중앙아시아·우크라이나 등 옛 소련 지역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담당했다.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회장(2004~2005), 국무총리실 평가위원,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등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립외교원 정년퇴직 후 재능 기부와 지식 공유, 정책 제언 등을 위한 유라시아정책연구원을 창립해 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