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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 공정위 과징금에 해운업계가 이토록 반발하는 이유

“불합리하다” 해수부,이례적으로 공식 언급

한진해운 사태 반복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

특성 고려 않고 원칙 내세워 산업 위기 초래

공동행위 사라지면 운임 올라 오히려 화주 피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외 23개 선사에 운임 담합으로 이유로 과징금 962억원을 부과하기로 한 이후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초 예상했던 과징금 규모가 8000억원 수준이었던 만큼 큰 폭 감면됐다고 하지만 한국해운협회는 즉각 행정소송을 추진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도 이번 결정에 공식적으로 유감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가 이번 제재에 대해 ‘불합리하다’라며 공개적으로 지적했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담합을 견제해야 할 담당 부처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선사만 감싸고 있다고 하거나 정권 말기 레임덕 때문에 부처 간 조율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등 여러 지적이 나옵니다.

해수부가 이러한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아마도 이 땅에 두 번 다시 한진해운 사태와 같은 일이 반복되도록 둘 수 없다는 절실함 때문일 것입니다. 해수부는 지난 2016년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한진해운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결정하는 것을 막지 못해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업 경쟁력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습니다. 당시 한진해운 사태와 마찬가지로 이번 공정위 제재가 불러올 문제들이 빤히 보이는데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로 보입니다.



해운업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원칙만 내세우고, 해수부와 해운업계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이번 공정위 과징금 사태는 과거 한진해운 사태와 매우 닮았습니다. 2016년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 등 금융권이 해운업에 대해 다른 산업과 같은 구조조정 원칙을 내세우면서 금융적인 측면만 따지기 급급했습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화물을 실어 나르는 해운업에 대한 이해 없이 금융손실을 최소화하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당시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이미 수년간 자구노력으로 여력이 없던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개별 기업의 부족 자금은 기업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라는 원칙만 내세웠습니다. 당시 해수부를 포함한 해운업계에서는 해운업의 국가적인 중요성과 함께 정기 컨테이너선사라는 산업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수도 없이 경고했습니다. 장기계약 비중이 높은 벌크 등과 달리 컨테이너는 단기계약 비중이 커 법정관리를 시작하는 순간 회생이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당시 정책 결정자들은 이러한 전후 사정은 뒷전에 두고 구조조정 원칙이기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 결과 운임 수입만으로 3조원을 잃었을 뿐 아니라 과거 한진해운이 있었던 수준 정도로 되돌아가기 위해 수조원의 자금을 HMM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해운 역사에서 유례없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사의 갑작스러운 파산으로 수출입 물류 대란이 수개월 넘게 지속되면서 한국 해운이 가진 신뢰라는 자산도 깎아 먹었습니다.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보낸 산은은 최근에 와서야 한진해운을 잘못 처리했다며 슬쩍 발을 빼고 있습니다.





공정위도 이번 사건에서 과거 금융당국과 마찬가지로 담합을 했으면 제재가 필요하다며 원칙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사 간 운임 공동행위는 개별선사에 원가를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공동행위를 제한하고 시장에 가격을 맡기면 일부 대형선사의 과점화로 오히려 운임이 상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운법에서 공동행위를 허용할 뿐 아니라 공정거래법의 적용도 제외하는 것입니다. 해수부에 따르면 지난 1999년 해운법 개정할 때 공정위는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해수부의 감독권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해운법상 선사들은 공동행위를 30일 이내 해수부에 신고해야 합니다. 공정위는 선사들이 122건을 신고하지 않았다며 문제 삼은 것이고, 해수부는 해당 기간 19건의 기본적 공동행위가 신고됐는데 여기에는 공정위가 문제를 제기한 122건은 세부 사안이므로 신고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결국은 절차적 미비에 따른 제재이고, 해운법과 공정거래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문제는 제재 배경에 비해 이로 인한 후폭풍이 너무 크다는 겁니다. 전 세계로 서비스하는 해운업 특성상 한 국가에서 불공정행위로 제재하면 관련 국가에서 연쇄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제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외국 선사들은 국내 영업을 축소하겠다고 경고했고, 일본과 중국 등 일부 국가는 자국 내에서도 강력한 조사를 예고한 상태입니다. 영세한 국적 중소선사는 과징금 납부를 위해 선박 등 핵심 자산 매각이 불가피해 생존마저 위태로운 지경입니다.

그렇다면 거래 상대방인 화주는 어떨까요. 이번 공정위 제재로 이익이 늘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오히려 공동행위가 폐지되면 외국계 대형선사의 과점화가 심화되면서 운임이 올라 화주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큽니다. 일본과 유럽 등에서는 공동행위가 없어지면 일부 대형선사의 시장 과점화가 나타나면서 운임이 오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1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3개 국내·외 컨테이너 정기선사의 한-동남아 항로 해상운임 담합 제재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화주들은 오히려 공동행위로 피해를 본 것이 없으며 국적 선사와 국내 화주 간 원활한 협력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입니다. 국내 화주를 대표할 수 있는 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통합물류협회 등 거의 모든 화주 단체가 이러한 입장문을 제출했습니다. 운임 담합을 신고하면서 이번 사태 계기가 된 목재합판유통협회조차 지난 2019년 신고를 자진 취소했습니다.

해수부나 해운업계 입장에서는 한진해운 사태가 발생한 지 불과 몇 년도 되지 않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큽니다. 호재인 줄도 몰랐던 코로나19라는 우연한 변수로 업황이 크게 회복됐다고 해도 아직까지 한진해운 파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번 한·동남아 노선을 제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중, 한·일 노선에서도 운임 담합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중소선사 비중이 큰 두 노선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해수부는 이번 사태가 관계부처 간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만큼 제도 개선만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는 의견입니다. 국가 기간산업에 회복 불가능한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제재보다는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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