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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 논단] 정부실패 자초하는 대선공약

■강인수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거대담론보다 특정 세대·집단 공략

'아니면 말고'식 포퓰리즘 공약 남발

국가 재정 고갈·시장 왜곡 부추겨

정부-시장관계 그릇된 인식 바꿔야

강인수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국민 대부분의 마음은 착잡한 것 같다. 대선 후보들에 대한 비호감도가 이번처럼 높은 대선이 없기 때문이다. 촛불 혁명으로 집권했다고 주장하는 현 집권층의 내로남불에 신물이 난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역대 최고다. 대선 후보들도 이를 알아서일까. 시대정신 같은 거대담론보다는 ‘소확행’ ‘심쿵 공약’ ‘59초 쇼츠’ 같은 생활밀착형 스몰 공약, 세대별·집단별 표심 맞춤형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스마트폰이 생활화된 시대에 가볍고 단순한 온라인 밈(meme)이 유권자들, 특히 젊은 세대에 쉽게 전달되기 때문에 후보들은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아니면 말고’ 식으로 던져 대는 이러한 공약들의 상당수가 ‘정부 실패’를 자초하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같은 공약이 천만 탈모인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고 하지만 구멍 난 건강보험 재정과 비만 등 다른 질병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하면 전형적인 포퓰리즘 공약이다. 아무리 표가 급해도 만능 해결사를 자처하면서 국민들을 우민화하고 정부 재정을 고갈시키는 것이 국가지도자가 할 일은 아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것이 아닌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비전과 한국의 미래상이 실종된 것이 정상일까.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내세웠던 747(연평균 7% 성장·국민소득 4만 달러·세계 7대 선진국 진입)과 같은 숫자 조합 공약(空約)을 대한민국의 비전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아직도 있을까. 실속 없는 화려한 미사여구, 나만 할 수 있다는 신뢰할 수 없는 자신감, 반시장적인 경제정책의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심금을 울리는 말을 하면서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5년 가까이 지난 지금 결과는 어떤가. 국민들은 정반대 결과를 체감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를 포함해 집권 4년간 드러난 각종 불공정 사례와 정권 핵심 인사들의 뻔뻔한 행태는 국민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선한 의도로 포장된 정책들은 편 가르기와 무능함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정부 재정으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대부분 단기 노인 일자리였고 청년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는커녕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구하기 힘들어졌다. 거듭된 부동산 정책 실패로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 때문에 청년들에게 내 집 마련은 이번 생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됐다. 아빠 찬스를 이용한 입시와 취업 비리는 청년들에게 엄청난 상실감을 안겨 줬다.

정치인들은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 ‘공정’을 화두로 내세워 인기몰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공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특권과 꼼수·반칙이 용납되지 않는 것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공정이지만 사람에 따라 ‘능력주의’를 강조할 수도 있고 ‘형평성’을 더 중시할 수도 있다.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없는 주관적 공정을 일반화하면서 공정에 매몰될 경우 국가와 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공정이 시대정신이고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더 큰 실망만 안겨 줄 수 있다. 공정과 관련된 법과 제도가 미비한 점은 확실하게 보완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비전이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공정을 넘어선 미래 비전이 필요하다.

거창한 말보다는 정부와 시장 관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여야 후보들 모두 지금 쏟아내고 있는 깨알 공약들이 집권 후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을 포함한 기본 시리즈, 임대차 시장 개입 등 시장 왜곡을 초래하고 나라를 빚더미에 올려놓을 게 분명해 보이는 정책들은 더 이상 거론돼서는 안 된다. 기대하기 어렵지만 내가 집권하면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무엇을 하지 않겠다’고 공약하는 것이 후보자의 신뢰를 더 높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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