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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나랏빚 제동만 걸어도 성공한 정부… 재정 숙취 빨리 깨라”[청론직설]

◆염명배 충남대 명예 교수

1000조 빚 떠안은 尹정부, 재정 개혁 성패가 미래 좌우

50조 추경은 첫 시험대…국채 발행 없이 지출 삭감으로

국가채무비율 50%…고령화 등 감안 70%로 인식해야

‘부자증세’ 한계…37% 근소세면세자 줄여 ‘개세주의’로

염명배 충남대 명예교수가 “차기 정부의 재정 개혁 성과에 따라 우리나라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라면서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재정 숙취에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재 기자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신조어를 만든 영국의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위대한 퇴보(2013)’에서 서구 민주주의에 생긴 병폐 중 가장 뚜렷한 증상을 어마어마한 공공 부채로 꼽았다. 그러면서 ‘공공 부채 문제의 핵심은 어린 세대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를 희생시켜 현재의 유권자 세대를 부양한다는 사실이고, 후손에게 빚을 떠넘기는 민주주의 때문에 서구 문명이 몰락할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를 했다. 재정학자인 염명배 충남대 명예교수는 16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퍼거슨의 저서를 소개하면서 “어떤 이유에서든 국가 부채가 급증하는 사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차기 정부가 고삐 풀린 듯 급증한 나랏빚에 브레이크만 걸어도 성공한 정부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대 대선 결과에 대해 경제학자 입장에서 의미를 부여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에 대해 국민이 심판을 내린 것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세 가지 측면에서 치명적 오류를 범했다. 정부·규제·재정 만능주의가 그것이다. 경제학은 흔히 ‘유인에 대한 반응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정책을 어떻게 바꾸더라도 국민이 곧이곧대로 따를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국민이 어떤 방향으로 반응할지 면밀하게 검토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정책 실패를 막을 수 있다. 국민 반응을 무시한 채 강행한 정책 실패의 대표적 사례가 소득 주도 성장과 부동산 정책이다. 이 같은 정책 실패가 정권 교체의 핵심 동인이 됐다.

-이른바 ‘큰 정부’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정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는 전체주의적인 ‘보모 국가(nanny state)’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의 무한 책임’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통치 철학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정부·재정 만능주의 함정에 빠지게 됐다. 차기 정부는 정부가 개인의 삶에 일일이 개입하는 대신 정부와 민간의 분업을 통한 협력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민간과 시장 중심의 성장 전략은 나랏빚 급증을 막는 데도 일조할 것이다.

-차기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텐데.

△문재인 정부가 전통적 경제 논리와 시장 원리를 무시한 채 편 가르기식 진영 논리를 앞세운 결과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켰다. 경제문제는 칼로 무 자르듯 두 쪽으로 나눠 생각할 수 없다. 경제주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복잡다단한 유기체적 생태계로 봐야 한다. 갑과 을, 선과 악, 부자와 빈자 등으로 편 가르는 이분법적 시각을 버리고 경제 전체를 복합 생명체로 보는 통합적 시각이 요구된다. 우리나라에는 자영업자처럼 노동자도, 기업주도 아닌 ‘회색 지대’가 유난히 많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분법적 시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착한 빚’은 정치적 구호…보모 국가경계를




-지난달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착한 빚 논리는 허구’라고 주장했는데.

△현 정부 확장 재정의 핵심적 명분은 ‘선투자’와 ‘착한 빚’ 논리였다. 나랏빚을 져서라도 지출을 늘려 경제성장률을 높이면 나중에 그 빚을 충분히 갚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정치 슬로건’에 불과하다. 재정지출만큼 경제를 성장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빚을 내서 지출을 확대해도 늘어난 소득으로 빚도 다 갚지 못한다는 게 연구 요지였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지속된 이른바 ‘저성장 뉴노멀’ 경제 상황에서 케인스식의 재정지출 효과에 대한 회의론이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정 국가 채무 비율(D1 기준)은 어느 정도인가.

△나라마다 경제 여건이 달라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동안 우리는 암묵적으로 국가 채무 비율 40%를 마지노선으로 삼아 재정을 보수적으로 운용해왔다. 40% 마지노선은 유럽 재정 준칙 60%를 기준으로 해서 한국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으로 고령화·저출산 비용 10%포인트와 통일 비용 10%포인트를 차감한 수치다. 올해 국가 채무 비율은 5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준은 실질적으로는 70%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현 정부가 마련한 재정 준칙은 느슨하다는 비판이 있다.

△재정 준칙으로 보기 어렵다. 3년 뒤 국가 채무 비율을 60% 이내로 제한하는 준칙은 나랏빚을 더 늘리자는 말이 아닌가. 지난 2016년 정부안인 국가 채무 비율 45% 이내로 되돌아가는 게 최선이지만 그게 어렵다면 지금 수준인 50% 이내로 명문화해야 한다. 아울러 국회와 행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독립적 ‘재정위원회’를 신설해 재정 준칙 이행 여부를 감독하도록 해야 한다. 금융통화위원회 수준의 독립성을 부여해야 준칙의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266조 대선 공약, 빚까지 내서 이행해야 하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 이행 재원은 지역 공약을 제외하더라도 일단 266조 원으로 추산된다. 과연 재정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여야 유력 정당 후보의 공약에서 발견되는 공통적 문제는 적절한 재원 조달 방안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약 이행에 대해서는 좀 더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빚을 져가며 공약을 다 지킬 것을 전제로 대통령을 선출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공약을 다시 한번 점검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선별하고 지키기 어려운 공약은 솔직하게 국민에게 사과하고 보다 효율적인 곳에 재원을 투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의힘은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50조 원을 지원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자고 하는데.

△소상공인 피해 지원은 1호 공약이다. 상징성이 큰 만큼 지켜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윤 당선인이 ‘재정 혁신’을 약속했다는 측면을 주목해야 한다. 50조 원 추경은 당선인의 건전재정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리트머스가 된다. 1000조 원의 나랏빚을 떠안고 출발하는 차기 정부로서는 억울한 심정을 갖겠지만 그에 연연하지 않기를 바란다. 두 가지 사안을 모두 만족시키려면 국채 발행 없는 추경 편성 외 다른 해법이 없다. 그러자면 올해 편성된 예산 일부를 삭감하는 ‘세출 경정(지출 구조 조정)’은 필수적이다. 국회 차원의 지출 조정으로도 부족하다면 전체 예산 집행 과정에서 절감해야 한다. 다른 예산을 줄여 지원하는 만큼 손실보상금이 많으니 적으니 하는 논란을 줄이는 장점도 있다.

-윤 당선인은 재정 혁신을 하겠다고 했다.

△재정 개혁 성과에 따라 한국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재정이 파탄 난 그리스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고 반대로 통일 이후 재정 개혁에 성공한 독일의 길로 갈 수도 있다. 국가 채무 비율 50%인 지금이 고빗길이다. 나랏빚 급증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못 잡을 공산이 크다. 차기 정부 5년이 그래서 중요하다. 이미 국제 신용 평가 기관은 빠른 국가 채무 증가 속도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독일 등 선진국들은 코로나19 이후 추진한 확대 재정의 출구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재정 숙취에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

‘혜택은 내가, 부담은 네가’ 지속 불가능


-고복지·고부담, 중복지·중부담 논쟁이 있는데.

△복지 논쟁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혜택을 받는 사람과 부담하는 사람이 서로 다를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받는 측은 더 달라고 요구하고 반대 쪽은 부담이 크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복지와 부담 수준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수혜자와 부담자를 가급적 일치하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우선이다. 스웨덴의 복지 체계가 그렇다. ‘혜택은 내가, 부담은 네가’인 제도부터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다.

-급속한 고령화·저출산 속도를 고려하면 증세 불가피론도 있는데.

△동의한다. 증세를 한다면 전제 조건이 있다. 세금에 대한 불신, 다시 말해 재정이 공돈인 양 함부로 쓰는 낭비적 요인을 걸러내야 한다. 최대한 지출 구조 조정을 하고 재정 누수도 줄여야 증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다만 지출 구조 조정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나랏빚을 늘리느냐, 아니면 증세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후대에 빚을 떠넘기기보다는 현 세대가 책임지고 해결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다. 국채 발행은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미래 세대 투자에만 국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업 구조 조정과 노동 개혁 추진에 따라 재원이 필요한 경우가 해당된다.

-구체적인 증세 방안을 말한다면.

△증세 수단으로 흔히 부가가치세 인상을 거론하기도 한다. 1977년 도입 이후 10% 세율이 그대로여서 소폭 인상할 때도 됐다는 것이다. 세수 확보 수단으로는 그만한 세목이 없지만 부가가치세 세율 인상은 통일 이후 쓸 최후의 카드로 남겨두는 게 좋겠다. 소득세는 보편적 증세 수단으로 최선이다. 현재 36.8%에 달하는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중을 줄이고 상위 10%의 근로자가 72%의 소득세를 부담하는 기형적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소득이 있는 사람은 모두 단돈 얼마라도 세금을 부담하는 개세주의(皆稅主義) 도입이 바람직하다.

-국민 개세주의는 서민·중산층 증세라는 논란을 초래할 수 있는데.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그래서 역대 정부마다 보편적 증세를 피하는 대신 쉬운 증세 방식인 ‘부자 증세’ 카드를 동원해왔다. 하지만 특정 계층을 겨냥한 선별적 증세, 부자 증세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본다. 소득세 최고 세율은 이미 선진국 수준으로 매우 높다. 짜내봐야 얼마 못 짜낸다. 정부가 불편한 현실을 인정하고 정공법으로 대처해야 한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He is…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지난 1991년부터 충남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쳤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청와대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과 기획재정부 공공기관경영평가위원, 한국재정학회장, 한국재정정책학회장, 건전재정포럼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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