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뒤흔든 대선을 지켜보며 정치인이야말로 말의 힘을 가장 잘 아는 직업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판에서 살아남으려면 선거라는 치열한 전투에서 상대방을 무찌르고 돌아와야 하는데 그때의 주 무기가 바로 ‘말’이니 말이다. 그래선지 내가 본 정치인들은 대부분 놀라우리만치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지녀서 그들의 말을 듣다 보면 나라의 미래가, 내 삶이 온통 무지갯빛으로 느껴질 정도다. 물론 가끔은 말의 힘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정치인들도 있기는 한데 그런 사람들은 여지없이 구설에 오르거나 사소한 말실수로 큰 곤욕을 치르곤 한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정치인뿐 아니라 교육자·기자·종교인의 삶에서도 말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교육자는 자신이 먼저 공부해 익힌 것을 학생들에게 말로 풀어 전달함으로써 더 큰 사람으로 성장시키므로 스승이라 불린다. 기자는 그들이 작성한 기사나 보도로 여론을 주도할 수 있어 ‘무관의 제왕’이라고도 하고,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거나 알아야 하는 진실을 전달함으로써 깨우침을 줄 수 있기에 ‘사회의 목탁’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종교인은 예식을 인도하고 경전을 통해 신자들의 영적인 생활을 지도하므로 거룩한 직군이라는 의미인 성직자라 불린다. 우리는 정치인·교사·기자·종교인의 언어를 통해 정치 이념을 형성하고, 지식을 쌓고, 세상을 보는 눈을 뜨고, 이승에서의 자신을 자각하고 영생까지도 꿈꾼다. 그러므로 정치인·교육자·기자·종교인의 말은 참되고 무거워야 한다. 이들이 직업적 소명 의식을 잃어버린 채 거짓을 말하거나 말을 가볍게 부려 쓸 때 왜곡된 정치 이념을 주장하는 정치꾼이 되고, 편협하거나 잘못된 지식의 전달자가 된다. 칼보다 날카롭다는 펜 끝으로 사람을 해치는 ‘기레기’가 되고, 교리에 어긋난 이단 신앙으로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교주가 된다.
물론 위에서 든 직업군의 말만 중요한 건 아니다. 말은 그 사람의 품성과 인격, 즉 품격을 드러내기에 누구의 입에서 나오든 중요하다.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는데 잘 다듬어진 나무처럼 높은 품격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얕고 상스러움이 묻어나는 사람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오십만 개가 넘는 단어들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는 ‘○○을 속되게 이르는 말’ ‘○○을 낮잡아 이르는 말’ ‘○○을 욕하여 이르는 말’로 풀이된 단어들이 있다. 각각 속어·비어·욕설들이다. 이들도 우리말이긴 하지만 이런 말을 입에 올리는 이에게 훌륭한 품성과 높은 인격을 기대할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받고 싶어 한다. 남의 존중을 받기 위한 첫 단계는 바른 생각을 하는 것이고, 다음은 그 생각을 품격 있는 말에 담는 것이다. 품격을 갖춰 말하는 사람의 행동은 결코 천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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