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지옥철 피하려고 새벽같이 나와…9 to 6는 꿈같은 이야기" [장애인의날 '구글러' 일문일답①]

집에서 1시간반 거리 장애인콜택시 이용

10시 도착해도 되지만 8시에 미리 도착

시간 맞춰 출발해서는 절대 이동 불가능해

미국선 차라리 돈 내고 우버 타면 편해

韓 일반 택시는 길바닥에 버려질 각오해야

사진 제공=연합뉴스




‘구글러(구글 직원)’ 이석현(29)씨는 오전 10시에 잡힌 회사 미팅에 참석하려면 새벽같이 일어나야 한다. 집에서 회사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도어투 도어(집 문에 나서 회사 도착까지)’ 1시간 반. 집에서 8시 반에 출발해도 충분한데 그는 8시 반에 도착을 한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 것일까.

이유는 장애인 콜택시를 타기 위해서다. 이씨는 근육이 경직돼 하반신 움직임에 어려움을 겪는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다. 일단 휠체어를 타고 출근길 ‘지옥철’을 타는 건 휠체어 장애인으로서 모험이나 다름 없다. 강북 집에서 역삼 구글 코리아 사무실까지 2~3차례 환승해야 하는데 바퀴가 홈에 빠지기 십상이고 호선을 옮길 때마다 리프트를 이용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결국 택시가 최선이지만 보통 7시 전에는 타야 한다. 조금만 시간이 넘으면 병원에 가는 장애인들의 수요가 몰려 택시를 잡을 수 없다. 차가 막혀 지각할 지도 모르는 위험도 생각해야 한다.

이씨는 “퇴근 택시 잡는 것은 출근 시간대보다 더 어렵다”며 “오후 3~4시에 불러야 6시쯤 도착해 어떨 땐 다 포기하고 지하철을 타고 꾸역꾸역 귀가하기도 한다. 직장인들이 흔히들 말하는 ‘9 to 6(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는 꿈같은 이야기”라고 했다. 또 다른 구글러 서인호(26)씨도 “장애인 콜택시는 예측가능성이 많이 떨어지고 밤 늦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며 “개인적으로 좌충우돌 하더라도 몇 시간씩 늦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 저는 애초부터 포기하고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서씨는 앞이 보이지 않는 전맹(全盲) 시각 장애인이다.

이씨와 서씨 모두 일반 전형으로 쟁쟁한 경쟁을 뚫고 구글에 입사했다. 이씨는 앞서 국내 방송국, 통신사에서 근무하다 정식 채용을 통해 지난해 7월 구글로 이직했다. 서씨는 1년 간의 인턴을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돼 올 1월부터 출근했다. 한국에서 장애인이 구글 정직원으로 채용된 경우는 이씨와 서씨가 처음이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18일 이씨와 서씨를 만나 구글러의 일상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구글코리아 커스터머 솔루션 담당 이석현(29)씨. 사진 제공=구글 코리아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한다.

△(서인호) 구글에서 ‘텐서플로우’ 최적화를 맡고 있다. 머신러닝(인공지능(AI) 학습 기술) 효율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2020년 12월 인턴으로 입사해 리서치 업무를 해오다 지난해 12월 정규직으로 전환돼 올 1월부터 정식 업무를 시작했다.

△(이석현) 구글 커스터머 솔루션 본부에 소속돼 있다. 구글 광고주를 지원하는 업무를 한다. 고객들이 비즈니스에 맞는 광고를 활용하고 있는지, 효과를 더 키울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고 조언하는 일이다. 지난해 2월에 뜬 정직원 공고를 보고 지원해 7월 입사했고 근무한지 10개월가량 됐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서인호) 출퇴근 시간이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시차 때문에 아침 일찍 미국 동료들과 회의가 있으면 오전 7~8시 미팅을 하기도 한다. 이어 지하철을 타고 10시쯤 사무실에 도착한다. 오전 업무를 보고 점심 식사 후 오후 업무까지 소화하면 오후 6~8시 사이 집에 간다. 도보 이동을 위해 흰 지팡이를 주로 갖고 다닌다.

항상 노트북도 가지고 다닌다. 다른 엔지니어, 개발자 분들은 모니터 여러 개를 쓰기도 하는데 저는 노트북 하나로 업무를 본다. ‘스크린 리더’라고 화면을 읽어주는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는다.

△(이석현) 업무 특성상 내외부 미팅이 잦은 편이다. 요즘은 비대면으로 많이 만난다. 회사에 출근해야 할 때는 보통 첫 미팅이 오전 10시쯤 잡히는데 회사에는 8시쯤 도착한다. 장애인 콜택시를 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회사까지 약 1시간30분 걸리는데 오전 8~9시에 타면 수요가 몰려 잡기도 어렵고 차가 막혀서 새벽 6시에 헐레벌떡 일어나 7시에는 타야 한다. 회사에 너무 일찍 도착해 1~2시간 뜨더라도 어쩔 수 없다.

퇴근은 이동이 어려운 시간을 피하기 위해 오후 4시처럼 일찍 마치거나 아니면 아예 밤 늦게 집에 간다. 퇴근 시간 강남에서 콜택시 잡기는 하늘에서 별따기다. 오후 3시, 4시에 부르면 6시쯤 도착하기 때문에 어떨 땐 지하철을 타고 어떡해서든 가기도 한다. 직장인들이 흔히들 말하는 ‘9 to 6(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는 꿈같은 이야기다.

-장애인 콜택시가 특히 불편한 모양이다.



△(서인호) 그렇다. 예측 가능성이 많이 떨어진다. 오후 3시에 부르면 보통 5시, 6시는 돼야 오는데 간혹 4시에 올 때도 있다. 그럼 갑자기 회사를 퇴근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잘 이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6시 퇴근하고 부르면 8시, 9시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약속이 있을 때는 절대 이용하지 않는다. 그나마 회사에서 출퇴근 시간을 강제하지 않고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제가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지하철이 아닌 장애인 콜택시를 타는 이유가 있나.

△(이석현) 휠체어의 경우 특히 출퇴근 시간에 시민분들이 양보를 해주셔도 공간이 잘 나오지 않는다. 한때 여의도에서 직장을 다녔을 때 9호선을 탔던 순간은 악몽같은 기억이었다. 역에 따라 엘리베이터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리프트를 타야 할 때도 있다. 굉장히 불안정하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느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택시를 탄다. 그래서 보통 저녁 퇴근을 할 경우 아예 저녁 약속을 잡아서 더 늦게 집에 가거나 어떨 때는 호텔에 투숙하기도 한다.

△(서인호) 시각장애인으로서 석현님에 비해 물리적으로 타는 데 어려움이 덜하긴 하지만, 길을 찾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 평소 익숙한 길이라면 문제가 없는데 낯선 경로로 가게 될 경우에는 한참을 헤매면서 사람들에게 물어 도움을 받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좌충우돌 하더라도 몇 시간씩 늦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것 같다.

왼쪽부터 구글 커스터머 솔루션 담당 이석현(29)씨와 구글 엔지니어 서인호(26)씨. 서씨는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장에 간 관계로 화상 인터뷰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과 외국간 차이가 있을까.

△(서인호) 내게 금전적 여유만 있다면 장애인용 서비스를 이용할 필요없이 우버를 타면 해결된다는 게 미국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우버 기사들은 장애인이라고 소위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 물론 이상한 사람을 안 만난다는 보장을 할 수 없지만 지금껏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한국 택시는 잘못했다간 내가 길바닥에 버려질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우버는 서비스 이용료만 정확히 낸다면 승객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반대로 미국 대비 한국의 장점이라 하면 지하철이 편리하다는 점이다. 어느 역을 가든지 안내를 요청하면 역사 직원이 나와 A부터 Z까지 도와준다. 탑승은 물론 목적지를 알려주면 하차하는 역사 직원이 미리 대기해 맞이하게끔 해준다. 이어서 버스를 탈 거라고 하면 출구까지도 데려다 준다. 시각 장애인 입장에서는 굉장히 편리하다. 미국은 이러한 지원을 해 주는 곳이 있고 없는 곳도 있어 제도로 자리잡은 건 아닌 것 같다.

△(이석현) 휠체어 장애인 입장에서 지하철은 아쉬운 점이 많다. 인호님이 받은 에스코트 지원은 일본에서도 받아본 적이 있는데 굉장히 촘촘하게 신경써 준다. 몇시 몇분에 지하철이 오고, 환승 시간까지 고려해 안내를 해준다. 케어가 철저해 스크린도어 낙상 우려가 작다. 일본과 비교해 한국은 자동화가 잘 돼있다. 일본은 리프트만 있는 곳도 있는데 한국은 판교 등 상업지구가 발달한 지역은 엘리베이터가 잘 갖춰져 있다. 다만 너무 잘 갖춰진 탓인지 무인으로 운영돼 일반 시민과 섞여서 아예 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 역마다 인프라가 다르다 보니 자동화가 잘 됐다 한들 접근성이 제각각이라 휠체어 장애인 입장에서 불편한 점이 많다.

-업무상 겪는 불편함도 있을까.

△(서인호)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일 수 있는데 인터넷 공간에서의 정보 접근성이 굉장히 열악하다. 정보 접근성이란 예컨대 내 앞에 컴퓨터가 있는데 그 사실조차 모르면 정보 접근성이 없다고 말한다. 시각, 청각 등 감각 장애인에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대표적으로 화면에 무엇이 떴는지 알려주는 ‘스크린 리더’는 한국의 경우 국제 접근성 표준을 따르지 않는다. 해외 소프트웨어는 모두 국제 표준에 따라 설계되는데 한국은 한국만의 접근성 표준을 만들어 따르도록 돼 있다.

여기서 국내 사용자들은 한국형 스크린 리더에 종속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국내 앱이나 웹이라면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줌’이라든지 외국 회사에서 만든 소프트웨어를 쓸 때 한국형 스크린 리더로 읽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 예컨대 국제 표준을 준수해 설계된 스크린 리더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채팅도 읽고, 누가 들어왔다 나갔는지 알려주는데 한국 스크린 리더로는 이 같은 기능이 전혀 지원이 되지 않는다.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최근에야 개선됐다.

저 역시 구글 입사 전에는 한국형 스크린 리더에 종속된 사람이었다. 처음 구글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구글독스라든지 G메일 등 모든 자사 제품이 국제 표준을 따라서 한국형 스크린 리더로는 전혀 읽히지 않기도 했다.

△(이석현) 시설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구글코리아 사무실이 있는 테헤란로에서 사실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계단이 있으면 일단 불가능하고, 경사로라고 해도 회전문이나 여닫이문으로 돼 있으면 접근할 수 없다. 또 제가 타는 휠체어는 앞 바퀴가 작아 코너링이 잘 되는 등 실내 이동에 특화돼 있는데 바깥에만 나가면 보도블럭 홈에 빠지기도 하고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 간격이 넓으면 탑승이 불가능하다. 휠체어 장애인으로서 노동권이라든지 생활 속 편리 등 정성적인 부분을 얘기하고 싶은데 이를 논하기에 앞서 기본적인 1단계부터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과거에 비해 뭐가 좋아졌나 물으면 사실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