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제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서민 생활과 기업 등 실물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경제주체들이 예상하는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3%로 9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물가 상승세가 빠르고 장기화할 것으로 보이자 소비자심리지수는 3개월 만에 하락했고 전국경제인연합회의 6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석 달 연속 100 이하에 머물렀다.
현장의 인플레이션 피해는 지표보다 훨씬 심각하다. 원자재 값 폭등의 직격탄을 맞은 건설공사는 철근·레미콘 부족 등으로 셧다운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조선사들이 2년 전 대규모로 받아놓은 수주는 치솟은 자재 값 때문에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다 보니 영업이익이 이자보다 적은 ‘일시적 한계 기업’이 지난해 기준 34.1%에 달했다.
금융에도 인플레이션과 긴축의 파고가 덮치기 시작했다. 5개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RBC)이 금융 당국의 권고 수준인 150% 아래로 떨어졌다. 식품 가격 급등을 견디지 못한 서민들은 살림살이를 바짝 죄고 있다. 1분기 가계 대출 잔액은 2002년 통계 편제 이후 처음 줄었다. 가계 빚 감소는 반갑게 들릴 수 있지만 경기 위축을 반영한 것이라면 버블 붕괴의 전주곡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인플레이션 쓰나미는 대증요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기업과 서민들이 모두 버티기 힘든 임계점에 섰다. 범부처 차원에서 실물의 타격을 막기 위한 비상 대책을 서둘러 마련하지 않으면 경기 경착륙과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기가 가라앉는다고 나랏돈을 더 푸는 유혹에 빠진다면 회복 자체가 어려워진다. 위기일수록 ‘행동으로 보여주는’ 규제 혁파와 세제 개혁을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 특단의 물가·경기 방어막을 찾지 못할 경우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부터 ‘식물 정권’이 될 수 있다. 물가 문제로 8년 9개월 만에 정권이 교체된 호주의 사례를 흘려 넘기면 안 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