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연임에 성공하며 절대 권력자로 장기 집권하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실각설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시 주석의 실각설이나 건강 이상설 등이 제기된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실각설이 의심되는 구체적인 정황 증거나 차기 권력 구도까지 거론되며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하는 양상이다.
시 주석의 실각설에는 다양한 버전이 있지만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중앙군사위원회 장유샤 부주석이 무혈 쿠데타를 통해 시 주석의 군 통수권을 무력화했다는 설이다. 이후 시 주석은 올 5월 개최된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정치 권력을 잃었고 현재 전임 총서기인 후진타오와 전임 총리인 원자바오 등 원로들이 정치를 관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시 주석이 올여름 개최되는 공산당 20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를 통해 총서기직에서 물러나고 대신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의 전 주석인 왕양 또는 현 부주석 후춘화 등 이른바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파’가 총서기직을 이어간다는 시나리오가 급부상하고 있다. 실각설의 근거로 여러 정황들이 지목되고 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시 주석은 5월 21일부터 6월 5일까지 14일 연속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어 이달 6일과 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도 불참했다. 브릭스는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중국 중심의 국가 모임으로 시 주석이 불참을 공식 통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 주석의 측근으로 알려진 군 고위직들이 숙청된 것도 실각설에 무게를 싣고 있다. 올해 3월 중국군 서열 3위이자 시 주석의 측근으로 알려진 허웨이둥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부패 혐의로 체포된 후 행적이 묘연하다. 지난달에는 먀오화 중앙군사위 주임이 부패 문제로 군사위원직을 박탈당했다. 먀오 주임은 시 주석이 지방 관리로 일할 당시 인연을 맺었으며 시 주석이 직접 중앙군사위로 발탁한 ‘직계 인사’로 분류된다. 먀오 주임의 해임 소식이 전해진 날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보좌관은 X(옛 트위터)에 "중국을 주시하는 사람들은 중국공산당의 핵심 구성원, 특히 대중과 국가 안보 부처의 신뢰 상실을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에서 분명히 권력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플린 전 보좌관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첫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다. 최근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이 ‘당 중앙 의사결정조정기구 업무 조례’를 심의한 것을 두고도 시 주석의 권력이 약화된 증거라는 설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시진핑 실각설이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며 반론을 펴고 있다. 현대 중국 정치 권위자인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8일 서울대 국제학연구소에 시진핑 실각설을 반박하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시 주석 측근 실각설에 대해 고위 당 간부와 군 장성의 처벌 및 교체는 시진핑 집권 기간 내내 이뤄졌다며 시진핑 집권 1기 5년 동안 해마다 88명의 고위 간부가 처벌됐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시진핑 권력 강화설이 나왔다고 짚었다. 군부 2인자의 쿠데타설에 대해서도 “독재 정권에서는 종종 일어나지만 사회주의에서는 전례가 없다”며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것은 공산당 전체를 적으로 돌린다는 의미이며 이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후진타오 등 정치 원로의 막후 정치도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반면 시 주석의 권력이 견고하다는 합리적 증거가 충분하다는 주장을 폈다. 실제로 시진핑 집권 1기 출범 당시 도입했던 정책들이 최근 속속 재추진되고 있다. 올해 3월부터 중국공산당이 추진 중인 반부패 척결 정풍운동은 시진핑 정부가 2012년 출범 당시 들고 나온 의제다. 2013년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된 ‘주변 외교 공작 좌담회’도 올해 4월 11년 만에 다시 개최됐다. 미중 무역 갈등에 대한 일관된 대응과 최근 시 주석의 활발한 해외 순방도 권력이 건재하다는 증거라고 조 교수는 짚었다.
시진핑 실각설을 두고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이제 시선은 매년 여름 열리는 ‘베이다허 회의’로 옮겨가고 있다. 베이다허 회의는 중국공산당 고위 관리들의 비공식적 회의지만 중국의 향후 국정 방향에 대한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다허 회의 이후 시 주석의 행보에 따라 실각설의 진위도 밝혀질 것으로 분석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