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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건씩 '장벽' 쌓는 국회…입법권 행사인가, 규제 메이커인가

[이슈 리포트]1000조 투자에도 규제 갇힌 기업

김도훈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한국규제학회장)

시스템반도체·바이오·항공우주 등

5년간 유망 신산업 집중 투자 약속

R&D서부터 제품개발·사업화까지

혁신활동 가로막는 규제 허물어야

국내 산업생태계 제대로 작동 가능

국회가 규제산실 된 것은 이미 오래

규제영향평가 등 제도적 장치 마련

경기진작 위한 한시적 유예 등 필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재계가 움직였다. 5월 20~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시 적극적인 대미 투자를 발표한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 등이 곧이어 대규모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롯데·한화그룹도 동참하면서 이들의 투자 규모를 합치면 100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최장 5년에 이르는 투자 계획이라고 하더라도 모처럼 재계가 ‘통 큰’ 행보에 나선 것이다. 그만큼 재계가 윤석열 정부 출범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하겠다.



기실 문재인 정부 동안 재계는 홀대받아왔다. 재계가 반길 만했던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혁신 성장’이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혁신의 동력을 스타트업이나 중소·중견기업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내세웠다. 그동안 이들이 가진 혁신 동력이 대기업들의 시장 지배력 때문에 가로막혀 있었다는 인식이 컸기 때문이다. 어쩌면 박근혜 정부의 중도 하차를 불러온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대기업과 정부의 밀착 관계였다는 사실을 감안했을지 모르지만 이는 큰 잘못이었다. 우리가 벤치마킹하려는 실리콘밸리의 혁신 생태계를 제대로 살펴보면 스타트업에서 일어나는 혁신이 실제로 신산업으로 커가기 위해서는 기술력, 마케팅 능력을 두루 갖춘 GAFA를 필두로 한 플랫폼 자이언츠들과의 협업을 거치는 것이 거의 필수적인 과정이다. 신산업 태동을 이끄는 미국 플랫폼 자이언츠들의 역할을 우리 산업 생태계에서 해낼 수 있는 주체는 역시 성공한 대기업이라는 점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대기업의 역할을 철저히 무시한 것은 혁신을 이끄는 산업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한 소치였던 것이다.

이번에 재계가 투자하려는 분야들을 보면 미래 유망 신산업에 집중돼 있다. 시스템반도체, 바이오, 신성장 정보기술(IT)(삼성), 모빌리티 신기술(현대차), 바이오(롯데), 항공우주(한화) 등의 산업 및 기술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들 분야에서도 많은 스타트업과 중소·중견기업, 나아가 해외 스타트업의 창의적 에너지가 필요할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런 창의적 에너지를 성공적인 산업으로 키워낼 역할은 이들 대기업이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창의적 에너지가 플랫폼을 활용해서 제대로 커가는 것이 산업 생태계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산업 생태계가 신산업을 탄생시키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필자에게는 재계의 ‘통 큰’ 투자 계획이 더욱 반갑다.

그렇지만 김칫국부터 마시기는 이르다. 이런 산업 생태계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매우 큰 장벽들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산업에 투자하고자 했던 대기업들은 각종 규제들에 막혀버린 쓰라린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제시한 산업 및 기술 분야는 대기업들이 계속 사업을 영위해온 분야이므로 연구 개발과 시설 투자에 집중하면 되겠지만 향후 그 결과가 신산업으로 이어지게 될 때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들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융합이 이뤄져야 하고 때로는 전통 서비스와 충돌이 일어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연구개발에서부터 (혹은 창의적 아이디어 형성으로부터) 제품 개발, 사업화의 전 과정에서 혁신 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들을 개혁하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런 인식하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모두 규제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점도 환영할 만하다. 한 총리가 부처마다 규제 개혁과 융합을 가능하게 할 전담 조직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한 것도 부처 간 이해관계로 나타났던 칸막이 규제 때문에 더 이상 혁신 생태계의 작동이 가로막혀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라면 정부는 규제 개혁을 통해 신산업을 태어나게 할 의욕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더 높은 장벽이 있다. 국회가 이런 재계와 정부의 의지를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국회라고 ‘혁신’을 가로막는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불행하게도 결과를 보면 그런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국회에서의 규제 개혁 저지, 심지어는 새로운 규제를 담은 법 제정 때문에 가로막힌 창의적 신산업들의 리스트는 길기만 하다. 코로나 시기에 그토록 잘 작동한 원격의료, 타다로 상징되는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 줄기세포 기술이나 인공지능(AI)의 다양한 활용 등등. 사회적 관심을 일으켜서 잘 알려진 사례 외에도 국내에서 불가능해져 해외로 나선 신산업들도 부지기수이다.

국회가 새로운 규제의 산실이 된 것은 오래된 일이다. 역대 국회에서 발의된 의안 수가 1만 건을 넘어선 것이 18대 국회인데 그 이후 증가 일로를 걸어와 20대 국회에서는 드디어 2만 건을 넘어섰고 절반 정도의 임기를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이미 1만 4000건이 넘는 의안이 발의됐다. 반대로 발의된 의안들의 통과율은 저하 일로인데 18대 때 40%에서 21대에는 28%로 낮아졌다. 결과적으로 국회 차원에서 발의되는 의안들의 수는 늘어나는 데 비해 그 질은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부채질하듯 최근으로 올수록 정부가 도입하고자 하는 새로운 정책을 담은 법률안을 정부 의안으로 제출하기보다는 의원입법으로 제출하는 이른바 ‘청부 입법’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의안 제출이 국회의원 의정 활동의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으므로 이 추세는 꺾일 것 같지 않다. 이러한 의안들이 반드시 규제 강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 하지만 정부의 규제정보포털에 의하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회의원 발의 법안 중 규제 법안으로 분류된 법안이 총 4047건에 달해 하루 평균 2.77건에 이르는 것을 보면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소집한 ‘규제개혁장관회의’에 참석했던 필자는 의원입법의 범람 현상을 ‘황사’로 비유했다가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국회의 고유 권한인 입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질책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지만 의원입법의 질적 저하를 막기 위한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국회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모든 의안은 사회적 필요성 때문에 만들어지고 공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날지도 모르는 혁신의 저해, 국민 생활의 불편, 경제적 악영향 등 부작용의 가능성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선진국들에서는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의안들의 질적 개선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법안들에 규제 영향 평가를 포함해 위원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영국도 정부가 지원하거나 의원 발의 법안에 대해 규제 영향 평가를 실시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 또한 의회의 요청을 전제로 의원 발의 법안에 대해 사전·병행·사후 평가 등 3단계 영향 평가를 실시한다. 우리 국회도 하루빨리 이런 제도적 장치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국회 차원에서 과감한 규제 개혁을 선도해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윤석열 정부 출범 직전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들의 규제 개혁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예상대로 불만족이라는 응답이 나왔는데, 그 이유로 해당 분야 규제 신설·강화, 핵심 규제 개선 미흡 등이 핵심으로 지적됐다. 기업들이 제시한 해법 두 가지는 경기 진작을 위한 한시적 규제 유예와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나는 규제 개선이다. 국회가 경기 활성화와 글로벌화에 앞장서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형태로든 재계의 통 큰 행보에 국회가 화답해야 할 때다. 그래야만 미중 갈등, 국제 공급망 재편 등 국제적인 산업 질서가 요동치고 있는 시기에 우리 산업들도 한발 앞서나갈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도훈 교수는…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1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산업연구원에서 37년 동안 국내 산업 전반을 연구한 뒤 연구원장을 지냈다. 과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무역국에 파견돼 회원국 규제개혁심사팀에 합류, 일본과 한국의 규제 개혁 과정을 심사한 바 있다. 또 한국 규제학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규제 개혁 필요성에 대한 연구 활동을 벌였다. 현재 서강대 국제대학원에서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국경제발전론과 동아시아 산업 생태계 등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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