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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머니, 골프판 뒤집을까[동십자각]

양준호 골프팀 차장


지금 영국 런던에서는 세상에 없던 골프 대회가 열리고 있다.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 개막전이다. ‘LIV’는 로마 숫자 54를 의미한다고 한다. 3라운드 54홀 방식이라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또 파72 코스 기준으로 모든 홀에서 버디를 잡으면 54타가 된다. 상상 속의 스코어를 내세운 것은 이상적인 투어를 만들겠다는 포부인 것 같다.

4라운드 72홀이 보통인 주요 프로골프 투어 대회와 달리 LIV 골프는 하루를 덜 치른다. 그런데도 상금은 세계 최고 투어라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보다 많다. 한 대회 우승만으로 50억 원 이상을 챙길 수 있다. PGA 투어 대회 우승 상금보다 최소 5억 원 이상이 많다.

LIV 골프의 별칭은 슈퍼 골프리그다. 축구판에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아성에 도전한 유러피언 슈퍼리그는 기존 단체들의 반발에 지난해 사실상 없던 일이 됐는데 골프는 출범에 성공했다. 축구의 슈퍼리그가 일부 유명 구단들의 연합체를 표방했던 반면 골프의 슈퍼리그는 PGA 투어뿐 아니라 세계 각 투어를 대상으로 참가 선수를 모집했다.

LIV는 “선수와 팬들에게 광범위한 기회를 제공해 프로골프를 현대화하고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으려 한다”고 투어 창설 목적을 설명한다. 아킬레스건은 투어에 돈을 대는 곳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라는 것. PIF의 수장인 사우디 왕세자는 2018년 반정부 언론인 살해의 배후로 지목돼왔다. 인권 탄압에 대한 비판을 스포츠 이벤트로 세탁하려는 ‘스포츠 워싱’ 얘기가 도는 이유다. LIV 골프에 합류한 선수들을 두고는 피 묻은 돈에 영혼을 팔았다는 비난까지 나온다.

하지만 떠난 선수들을 배신자로 몰고 남은 선수들을 정의의 편에 섰다며 치켜세우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 물론 인권 문제를 소홀히 인식해서는 안되겠지만 ‘프로는 돈으로 말한다’에 담긴 뜻도 가볍지 않다. 계약 등 선택에 있어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에 두는 것은 프로 스포츠 선수의 당연한 권리다.

돈도 돈이지만 기존 투어의 운영 방식과 철학, 투어 내 동료들과의 관계 등 이직을 결심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다소 성급해 보인다. 최근 국제 정세에 비춰보면 ‘사우디는 무조건 안된다’는 일부 분위기에 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고유가 압박이 지속되자 사우디 왕세자와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고 있다.



LIV 골프에 합류한 선수들의 얘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가족이다. “대회 수가 적고 사흘 경기라 가족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좋다” “더 나은 아빠, 남편이 되고 싶었다”는 얘기들이다. 단체전 경기나 각 홀 동시 출발 등 새로운 시도, 환경에 대한 기대도 ‘이직’에 꽤 큰 요인으로 작용한 모양이다.

기존 투어에 남는 게 소신이라면 역사가 없는 새 투어에 뛰어드는 것도 또 다른 의미의 소신일 수 있지 않을까. 새 투어가 조금씩 자리를 잡으면 그 안에서 인권 문제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선수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논란 속에 어렵게 출범한 LIV 골프는 PGA 투어와 맞먹는 세계적인 투어로 발전할 수도, 그저 떠들썩한 돈 얘기만 남기고 사라진 반란군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다시 프로 스포츠의 정체성으로 돌아가, 실험의 성패도 결국 팬들의 판단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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