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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헤어진 가족…판자촌 삶…비석에 서린 피란민의 애환

◆6·25전쟁 '1023일의 수도' 부산

일제강점기 '일본인 묘지' 버려진 동네

전쟁 피해 무덤 위에서 판자 덧대며 생활

계단·주춧돌 등 곳곳 옛 비석들 흔적이

동아대 캠퍼스엔 '임시수도 정부청사'가

이승만 대통령 관저도 그때 그대로 재현

피란 학교·열차 모습에는 애잔함이 가득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 모습. 구도심 개발 사업을 통해 알록달록한 무늬가 입혀져 있다.




현재 부산 동아대 박물관으로 사용중인 ‘임시수도 정부청사’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동아대 부민캠퍼스에 들어서면 한눈에 봐도 오래된, 붉은 벽돌로 만든 건물이 방문객을 맞는다. 한국전쟁(6·25전쟁) 시기에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정부 청사로 사용됐던 건물이라고 한다. 지금은 동아대가 박물관(석당박물관)으로 활용 중이다. 이른바 ‘부산 임시 수도 정부 청사’는 서구 르네상스 양식이 변형된 3층짜리 건물로 당시 부산역사·부산우체국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거대한 붉은 벽돌 건물로 유명했다. 둥근 모양, 직사각형 모양 등 크기와 형태가 다른 23종의 벽돌을 구워서 사용했다는 점이 흥미를 끈다. 지금도 당시의 굴뚝과 벽면, 지붕 구조물 일부가 보존돼 있어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한국전쟁 72주년을 열흘가량 앞두고 당시 임시 수도로서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운 부산을 여행했다. 부산시·한국관광공사 등은 임시 수도 정부 청사와 비석마을 등을 ‘한국전쟁기 피란 수도 부산의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 중이다. 부산을 ‘피란 수도’에서 ‘평화 수도’로 이미지 매김 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임시 수도 정부 청사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건축됐으니 거의 100년이 다 됐다. 당초 부산 지역 병원 용도로 신축됐지만 부산을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로 삼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이때 경상남도 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경남도청 청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전쟁 때 임시 수도 부산에서 3년간(날짜로는 1023일) 정부 청사로 사용됐던 역사가 메인 테마가 되고 있다. 이 건물에서 전쟁 상황에 대응하고 경제 운영을 위한 각종 정책을 수립·집행했다고 한다. 건물에는 내무부·외무부·국방부 등 정부의 주요 기관들이 입주해 있었다.

휴전 이후에 다시 경남도청이 됐다가 이후 부산지방법원 등으로 활용됐다. 2002년 국가 지정 등록 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됐고 2009년부터 동아대 석당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덧붙여 석당박물관 자체도 우리나라 3대 대학 박물관으로 꼽힐 정도로 유명한데 여기에는 국보 2점과 보물 12점이 소장돼 있다. 특히 창덕궁과 창경궁을 연구하는 데 핵심 사료 중 하나이자 현존하는 ‘동궐도’ 2점 중 1점(국보 제249호)이 이곳에 있다.

동아대 부민캠퍼스에서 서남쪽 직선거리로 100m 떨어진 곳에는 ‘부산 경무대’로도 불렸던 임시 수도 대통령 관저가 있다. 걸어서는 200m 거리다. 원래는 부산에 있던 경남도지사 관저였는데 부산으로 피란 온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대통령 관저로 사용했다.

2층 붉은 벽돌로 된 외관에 네모반듯한 창이 여러 개 있고 잘 손질된 정원수가 가득하다. 실내는 이승만 대통령이 관저로 사용하던 때의 구조와 분위기를 재현해 놓았다. 대통령이 정부 각료들과 회의하고 외교 업무를 보던 응접실, 대통령 내외가 사용하던 자개장과 반닫이 등 가구가 놓인 내실, 책을 읽던 서재, 거실, 식당과 부엌 등으로 꾸며졌다.



또 임시수도기념관 전시관이 대통령 관저 뒤편에 있다. 이곳에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던 열차 모형,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아버지의 위문편지, 피란민이 생활하던 판잣집, 일거리를 찾아 나선 사람들, 피란 학교의 모습 등 당시 피란민의 삶과 한국 경제의 모습을 추체험할 수 있다.

‘부산 경무대’로 불렸던 대통령 관저를 관람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 관저 내 이승만 모형이 전시돼 있다.


임시 수도 정부 청사와 대통령 관저가 정부 기능을 담당했다면 다른 한편으로 전쟁 시기 일반인들이 힘겨운 삶을 이어갔던 곳이 아미동 비석마을이다. 비석마을은 서구 아미산 아래 달동네다. 부산 경무대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600m 거리에 있다. 일반적인 주택지가 아닌 곳에 세워진 마을이어서 더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비석마을은 앞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와 화장장이 있던 곳이다. 일본인들은 이곳에서 주검을 화장한 뒤 제물을 올렸는데 이를 보고 까치 떼가 몰려 ‘까치고개’라는 이름도 붙었다고 한다. 해방 뒤 일본인 묘지는 방치됐고 한국전쟁 직후 피란민들은 버려진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피란민들은 무덤터 위에 판자를 덧대고 이어 집을 지었다. 무덤에 딸린 비석과 상석은 주택을 구성하는 자재로 이용됐다. 이후 ‘비석마을’이라고 불린 유래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계단이나 건물의 주춧돌, 가스통을 올려두는 받침대로 사용되고 있는 일본인 공동묘지 비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마을은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부산시 등록 문화재 1호가 됐다. ‘산 자의 주택’과 ‘죽은 자의 묘지’가 동거하는 역사적 공간이자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의 생활상과 주거의 변화 모습이 잘 보존된 도시 공간으로 가치가 높다는 것이 이유다.

일행을 안내한 손민수 부산여행특공대 대표는 “부산의 원래 모습은 산과 함께 이곳에서 생활한 사람들의 핵심을 이룬다. 산복도로 지역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정부가 ‘한국전쟁기 피란 수도 부산의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를 신청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이들을 포함해 모두 9곳이다. 구체적으로는 △부산 임시 수도 대통령 관저(부산 경무대) △부산 임시 수도 정부 청사(임시 중앙청) △부산지방기상청(국립중앙관상대) △근대역사관(미국대사관 겸 공보원) △부산항 제1부두 △부산시민공원(하야리아 기지) △부산 재한 유엔기념공원(유엔묘지) △아미동 비석마을 피란 주거지 △우암동 소막마을 피란 주거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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