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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교육감 직선제 실험은 실패했다

김민형 바이오부장

590만 학생 교육 책임지는 자리

유권자는 후보들 공약도 잘 몰라

선거 결과에 현장 정책 오락가락

선진국들 오히려 임명제로 회귀





6·1 지방선거를 앞둔 5월 말. 경기도 고양시의 한 초등학교 정문에 시커먼 조화들이 주르륵 늘어섰다. 등교하던 학생들은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휘둥그레한 눈으로 조화에 쓰인 글을 읽어 내려가던 한 학생이 친구에게 물었다. “혁신학교가 뭐야?”

학교 측이 혁신학교 지정 투표를 추진하자 반대하는 사람들이 학교 정문 앞에 조화를 설치했던 것이다. 학교 측과 학부모들 간 극심한 갈등을 겪은 끝에 결국 혁신학교 지정 추진은 백지화됐다. 하지만 이 학교 학생들의 마음에는 선명한 상처가 남았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서로를 비난하던 모습을 바로 곁에서 똑똑히 지켜본 탓이다.

혁신학교는 ‘진보 교육감’ 진영의 대표 정책이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 교사가 학생들을 더 밀접하게 지도할 수 있도록 하고 주입식 교육보다 자기 주도 학습과 협동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도입 취지는 좋다. 하지만 입시 중심의 국내 교육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혁신학교가 기초학력을 떨어뜨린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찬반이 엇갈리다 보니 혁신학교 지정이 추진될 때마다 학교는 홍역을 치른다.

‘조화 사태’를 빚은 경기도는 2009년 김상곤 교육감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혁신학교를 도입한 지역이다. 경기도교육청은 2009년부터 12년간 진보 성향인 김상곤·이재정 교육감이 이끌어왔다. 두 교육감은 혁신학교로 전환하는 학교에 추가 예산을 지원하며 적극적으로 확대 정책을 폈다. 그 결과 경기도는 ‘혁신학교의 메카’로 성장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혁신학교 2746개 교 중 50.7%(1393개 교)가 경기도에 몰려 있다. 경기도만 떼 놓고 보면 도내 초중고 2455개 교 중 57%가 혁신학교다.



이번 6·1 지방선거에서는 보수 교육감이 약진했다. 14 대 3이었던 진보 대 보수 성향 교육감 비율이 9 대 8로 조정됐다. 보수 성향 교육감들은 임기 초반부터 혁신학교를 손보겠다며 벼르고 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혁신학교 신규 지정을 보류하고 전반적인 점검과 진단을 하겠다”며 “혁신학교 지정 여부에 따라 학교 지원에 차이를 두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수 성향 교육감이 선출되자 경기도교육청이 12년 동안 금과옥조로 여겨왔던 혁신학교가 찬밥 신세가 된 것이다.

교육감은 유치원부터 초중고교의 교육을 책임진다. 교육감들이 처리하는 한 해 예산만 80조 원에 달하고 학생 590만 명의 교육과 교원 50만 명의 인사를 결정한다. 과거에는 임명제였으나 2007년부터 직선제가 도입돼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

문제는 이렇게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교육감을 뽑을 때 후보자의 정책 등을 제대로 알고 투표하는 유권자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이번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상파 3사가 실시한 경기도교육감 선거 여론조사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47.8%)’와 ‘누구에게 투표할지 모르겠다(23.1%)’는 응답이 무려 70%였다. 결국 6·1 전국 교육감 선거에서 총 90만여 표의 무효표가 나와 시·도지사 선거 무효표의 2.6배에 달했다. 교육감 선거에 ‘깜깜이’라는 오명이 붙는 이유다.

지난 15년간 선거 결과에 따라 교육 현장은 뿌리째 흔들려왔다. 정치 성향이 강한 교육감에게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의 ‘백년대계’를 맡기는 것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제 교육감 직선제 실험을 그만둬야 할 때다. 지방자치가 발달한 선진국들이 오히려 임명제로 교육감을 뽑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50개 중 30개 넘는 주가 직선제를 택했던 미국은 교육 전문가가 아닌 ‘정치꾼’이 당선돼 교육을 후퇴시키는 경험을 하면서 임명제를 확대해왔다. 현재는 14개 주만 직선제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는 대통령이 30명 교육감 전원을 임명한다. 영국은 지방의회가, 독일·핀란드·일본은 지자체장이 임명한다. 학교에는 ‘정치색’이 아닌 ‘교육색’이 짙은 교육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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