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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자퇴 '수포자' 수학 노벨상 품었다…50년 난제 푼 허준이 교수

◆허준이 교수 한국계 최초 필즈상 수상

40세 미만 '젊은 수학자'에 수여

학창시절 수학 성적은 신통찮아

습작 활동하며 한때 시인 꿈꾸다

20대 중반에야 수학자 길 들어서

2017년 '로타 추측' 증명해 업적

5일(현지 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에서 허준이(오른쪽)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수학 노벨상’ 필즈상을 수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현지 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에서 허준이(오른쪽)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수학 노벨상’ 필즈상을 받기 위해 대기해 있다.


한국계 수학자인 허준이(39·사진)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았다. 한국계로서는 첫 필즈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5일(현지 시간) 국제수학연맹(IMU)은 허 교수를 올해 필즈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허 교수는 수상 뒤 “필즈상 수상자 명단에 제가 하는 분야인 대수기하학에 큰 공헌을 하신, 저에게는 영웅 같은 분들의 이름이 줄줄이 있다”며 “그 명단 바로 밑에 내 이름이 한 줄 써진다고 생각하면 이상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제게 수학은 제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가는 과정일 뿐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또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일”이라며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일에 의미 있는 상까지 받게 돼 깊은 감사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한국계로는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을 거머쥔 허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이후 두 살 때 아버지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 어머니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과 명예교수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모두 한국에서 마쳤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검정고시를 통해 2002년 서울대(물리천문학부)에 입학해 졸업 후 서울대 대학원 석사(수리과학부)를 마치고 미시간대에서 박사(수학) 학위를 받았다.

필즈상 수상자 대부분이 유년시절부터 ‘천재성’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과 달리 허 교수의 초등학생 때 수학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스스로 수학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허 교수는 2017년 온라인 수학·과학 전문 매체 ‘콴타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수학을 ‘논리적으로 필요한 진술이 산더미처럼 쌓인 메마른 과목’이라고 봤다”면서 “진짜 창조적 표현을 하고 싶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습작 활동을 하며 시인을 꿈꾸던 허 교수는 ‘생계유지’ 방편으로 과학 기자로까지 눈을 돌리다 갑작스럽게 인생의 대전환을 맞게 된다. 학부 졸업반 때 서울대의 노벨상급 석학 초청 사업으로 초빙된 일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되면서다. 히로나카 교수는 1970년 필즈상을 받은 일본의 대표적인 수학자다. 자신의 첫 번째 과학 기사 인터뷰 대상을 히로나카 교수로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의 대수기하학 강의를 수강했고 히로나카 교수와 점심 때 수시로 만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20대 중반에 본격적인 수학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허 교수의 석사과정 지도교수인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히로나카 교수 수업을 수강할 것을 독려해 초기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몰렸지만 학기가 끝날 때 허 교수를 비롯한 몇 명만 남았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히로나카 교수가 눈에 띄는 학생 하나로 허 교수를 칭찬하기도 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허 교수는 박사과정 1학년 때인 2012년 50년 가까이 누구도 풀지 못한 수학계의 난제였던 리드(Read) 추측을 시작으로 강한 메이슨(strong Mason) 추측, 다울링-윌슨(Dowling-Wilson) 추측 등 난제를 하나씩 증명하며 수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허 교수가 ‘수학계의 정점에 섰다’는 평가를 받은 건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3년이 지난 2017년이다. 다른 2명의 수학자와 함께 ‘로타(Rota) 추측’을 증명하는 데 성공한 업적을 내면서다.

수학계에서는 허 교수와 같이 늦게 출발한 학자가 이런 성과까지 얻은 것에 대해 ‘18세에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은 선수가 20세에 윔블던에서 우승한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새로운 발견을 위해 길게는 수십 년간 연구해야 하는 수학 분야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을 법한 ‘뜻밖의 여정’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될 수도 있었던 허 교수의 경력은 필즈상 수상으로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한 셈이다.

1936년 제정된 필즈상은 4년마다 수학계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고 앞으로도 학문적 성취가 기대되는 40세 미만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수학 분야 최고의 상이다. 아벨상과 함께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필즈상은 한 번 시상할 때 보통 2∼4명의 수상자를 선정한다. 수상자에게는 금메달과 함께 1만 5000캐나다달러(약 1500만 원)의 상금도 전달된다.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메달은 지름 9㎝ 크기로 앞면에는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얼굴과 함께 라틴어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 세상을 움켜쥐라’고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전 세계에서 모인 수학자들이 뛰어난 업적에 (이 상을) 수여한다’고 적혀 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축전을 통해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이번 필즈상 수상은 수학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음을 각인시켜준 쾌거”라고 강조했다. 이어 “수학을 비롯한 기초과학 분야에 헌신한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결과”라며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대한민국에서 공부한 젊은 수학자의 수상이라 감격이 더하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인간 지성의 한계에 도전해 수학의 토대가 확장되도록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허 교수의 노력과 열정에 찬사를 드린다”며 “허 교수가 국내외 수학자들과의 활발한 연구 활동을 통해 인류 지성의 지도에서 길을 밝히는 나침반이 돼주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허준이(39. June Huh)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 교수가 5일(현지 시간) 필즈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 수학자로는 최초 수상이다. 이전까지 한국계나 한국인이 이 상을 받은 적은 없었다. 허 교수는 이날 국제수학연맹(IMU)이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에서 연 시상식에서 필즈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사진은 허준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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