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7월 6일 새벽. 네 명의 남녀가 한여름에 두꺼운 옷을 잔뜩 껴입은 채 암스테르담 거리를 서둘러 걷고 있었다. 프린센 운하 거리 263번지로 들어선 가족이 조심스럽게 책장을 밀자 벽 뒤에서 ‘비밀의 방’이 나타났다. 이 작은 공간에서 가족은 숨죽이며 불안한 삶을 이어갔다. 비밀의 문을 처음 열던 날, 프랑크 부부의 둘째 딸 안네는 불과 열세 살이었다. 재기 발랄한 이 소녀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책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이다. 많은 사람이 안네를 네덜란드인으로 알고 있지만 그는 독일의 금융 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독일 사람이다. 안네가 태어난 지 4년도 되지 않아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자 안네의 아빠는 1934년 온 가족을 이끌고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피신했다. 이로써 안네 가족은 난민이 됐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6년 후인 1940년 5월 암스테르담이 나치 독일의 수중에 넘어갔다. 안네 가족은 졸지에 무국적자 신세로 전락했다. 유대인 절멸이 임박하자 안네의 아빠는 운영하던 가게 건물 뒤편을 은신처로 개조했다. 숨 막히는 피난처에서 안네는 가족이 겪은 일, 라디오에서 들은 소식, 내밀한 마음까지 일기장에 기록했다. 일기 속에서 안네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꿨다. 하지만 소녀의 꿈은 1944년 8월 4일 제복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치면서 산산조각 났다. 760일간의 은신 생활이 끝나고 안네 가족은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 그 후 안네는 독일의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다시 이송돼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대량 난민과 같은 불행한 역사는 더 그렇다. 독일은 한때 엄청난 수의 난민을 유발한 원흉이었다. 그 독일이 지금은 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최종 목적지가 됐다. 우리는 그때와 현재 사이에 과거와의 철저한 대면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독일 국민의 적극적인 난민 수용에서 안네 프랑크가 언제나 중요한 주제로 교육돼왔다는 점이다. 오늘날 독일인들에게 안네는 난민의 대명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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