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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으로 번아웃 겪느니 신입으로 도전" 쉰에 실리콘밸리 입성한 구글 홍반장

정김경숙 구글 인터내셔널 미디어·스토리텔링 디렉터 인터뷰

"번아웃과 무기력 사이에서 극복해 온 게 도전 원동력"

영어 공부 이상으로 체력에 투자해야

구글 인터내셔널 미디어·스토리텔링 디렉터 /사진 제공=정김경숙




12년을 다녔던 구글 코리아에서 구글 본사로 자리를 옮겼다. 다른 이들에게는 커리어 꽃길로 보였겠지만 구글 본사에서 맡게 된 역할은 팀원이 없는 1인 팀장 체제였다. 새로 생긴 자리인 만큼 성과를 낸다면 온전히 스스로의 것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팀의 쓸모는 없어질 터였다. 그때부터 실리콘밸리에서 성장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직접 실무를 맡으면서 90일 내에 회사 내 100명의 동료를 만났다. 회의에서 모르는 영어 표현이 나오면 무조건 그날 안에 공부를 끝냈다. 소극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 회의 시작 전에는 아이스 브레이킹을 주도하고 동료의 발표가 끝나면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쉰을 맞은 2019년 구글 본사에 입성한 정김경숙(54) 구글 인터내셔널 미디어·스토리텔링 디렉터의 이야기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구글 캠퍼스에서 만난 정김 구글 디렉터는 인터뷰를 통해 “직장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끊임 없는 번아웃(피로로 인한 탈진)과 보어 아웃(무기력감) 사이에서 이를 극복해 온 게 지금의 원동력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달 초 이 같은 경험담을 모아 직장인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책인 ‘계속 가봅시다 남는게 체력인데’를 펴냈다.

정김 디렉터는 2007년 구글 코리아 오피스에 직원이 15명이 채 안 되던 시절 홍보 담당으로 입사했다. 이후 10년간 구글 코리아가 성장하는 속도만큼 열심히 일했다. 2016년 3월 알파벳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세기의 대결로 화제를 모은 행사를 무사히 치러낸 순간 번아웃이 찾아왔다. 직장인들이 늘상 겪는 것이 번아웃이지만 이번은 달랐다. 내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보어아웃에 가까운 상태였다. 스스로 ‘내 것’이라 부를 수 있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프로젝트가 필요했다. 그는 보어아웃을 극복하기 위해 '구글에서 우리나라에 도움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을 하며 일에서 보다 큰 의미를 찾았다. "그렇게 한국의 스타트업을 발굴해 키우는 ‘글로벌 K-스타트업’ 프로젝트를 꾸려보기로 했어요. 내리 삼년을 하면서 레진코믹스, 클래스팅 같은 스타트업이 발굴됐죠. 사실 구글코리아가 세운 구글 캠퍼스 서울이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생긴 거예요.”

그가 보어아웃을 극복하는 동안 만든 또 다른 프로젝트도 있다. 홍보 담당자로 일해오다 보니 뉴스 생태계의 주축인 언론사가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넥스트 저널리즘’이라는 이름의 언론인 펠로우십 프로젝트로 한 해에 8명의 언론인과 40명의 꿈나무들을 배출했다. 그는 “사실 작은 프로젝트로 시작했는데 구글에서 뉴스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뉴스팀에 제 프로젝트를 셀링(어필)했다"며 “프로젝트를 키우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구글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본사에서 정김경숙(왼쪽) 구글 디렉터가 하이브리드 기자 간담회를 마치고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정김경숙


이쯤에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할 부분은 쉰의 나이에 구글 본사로의 도전을 감행하게 된 계기다. 주니어급의 직원들이 본사로 소속을 옮기는 경우는 많았지만 임원급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거치지 않고 본사로 입성하는 경우는 드물다. 정김 디렉터는 구글 코리아에서는 홍보를 총괄하는 임원(전무)의 자리에 있었지만 구글에 와서는 한동안 1인 팀장(인디비듀얼 컨트리뷰터)로 일했다. 게다가 그가 몸담은 홍보 분야는 해당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고 정확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정교한 영어를 구사해야 하는 분야다.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았다.


  • - 직함이 구글 인터내셔널 미디어·스토리텔링 디렉터예요. 원래는 없던 자리었다고 들었습니다.

  • = 사실 이거 제가 아이디어를 낸 자리인데요. 사심 없이 개인적인 문제의식으로 제안을 했어요. 본사의 PR 조직은 각 제품별 홍보 조직으로만 이뤄져 있었고 미국에 나와 있는 각 지역의 특파원들이 취재를 하고 싶을 때 이를 담당할 팀이 없었어요. 미국에서 큰 발표가 있을 때 이를 전 세계로 확장하는 데 있어 도와줄 일종의 ‘리에종(중개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일 년에 한 번 각 지역 담당자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에서 발표를 했죠. 2019년 6월 말이었어요. 당시 본사의 수석부사장(SVP)가 좋은 생각이라면서 고려해보자고 했어요. 그렇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삼주 뒤에 제안했던 포지션에 맞는 사람을 구하는 공고가 올라온 거예요. 이게 참 구글의 장점이에요. 그런데 열어 보니 직급도 부장급으로 올라와서 저와는 맞지 않았죠. 마침 노르웨이로 3주간의 트래킹을 떠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일단 물어나 볼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보니까 “로이스(정김 디렉터의 영어 이름)가 오면 환영이지. 직급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라는 답변이 왔어요. 그 자리에서 인터뷰를 하고 그해 9월부터 본사로 출근하게 됐죠.



사실 아이디어를 제안할 때 만 해도 내가 그 자리에 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막상 채용 확정이 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몰려 왔다. 한국에 가족을 두고 나만 훌쩍 떠나도 되는 걸까? 완전히 새로운 곳에 가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게다가 ‘인터내셔널 커뮤니케이션’은 영어 원어민도 힘들 다는 직무인 데다, 신생 팀이니 1인 팀으로 시작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나는 과연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일까? (13쪽)



  • - 속도감 있게 진행됐네요. 구글 본사에 와서 적응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 = 제가 덜컥 됐는데 걱정이 세 가지가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팀원도 있고 그간 쌓은 후광이 있었는데 쉰 살 넘어서 처음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겁이 나더라고요. 두 번째는 새로 생긴 제 팀이었어요. 새로운 팀이 와서 뭐 좀 해 달라고 하면 사실 기존에 없던 일이 생기고 누군가에게는 귀찮은 일이기도 하잖아요. 적당히 얼굴도 두껍게 하면서 셀링을 해야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영어인데 비영어권에서 온 친구들이 본사 PR 조직에 3명 있는데 그마저도 학부 유학 경험도 없는 건 저밖에 없었어요.




  • - 듣기만 해도 막막하네요. 어떻게 적응하셨는지 소개해주세요.

  • = 일단 신입사원의 특권이 모르는 부분을 마음껏 물어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걸 활용했죠. 만나봐야 할 사람이 정리해보니까 300명이나 되더라고요. 90일만에 100명 만나기 프로젝트를 했어요. 일대일로 영어로 집중해서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쥐가 날 정도였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그렇게 100명을 만나니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더라고요. 이 분야에서는 이 사람에게 연락을 하고 이 분야는 이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고 머릿속에 연결이 되기 시작했어요.



구글에서 한 해 한 해를 정신없이 보내는 동안 나는 나이 랭킹의 상위권도 갱신하고 있었다. 마침내 최고령자 그룹 혹은 최장기 근속자가 되어버렸을 때, 어느 순간 사무실에 선배보다 후배가 더 많아졌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나이까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되는 걸까?’ 그도 그럴 것이, 구글코리아에서 근무하는 12년 동안 사장이 세 번 바뀌었고 내 직속 상사인 아시아태평양(아태)지역 커뮤니케이션 총괄도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로 네 번이나 바뀌었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자타가 인정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난 분들이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볼 때면 ‘나는 왜 안 되나’ 하는 생각이 왜 안 들었겠는가. (47쪽)








  • 그의 영어 공부 프로젝트도 만만치 않게 난이도가 높다. 아침에 한 시간, 오후에 한 시간 달리거나 걸으면서 오디오북을 들었다. 회의에서 모르는 표현이 나오면 다 정리해뒀다가 반드시 그날 밤에는 뜻을 찾아내고 잠이 들었다. 여기에 개인적으로 회화 선생님과의 회화 수업도 병행했다. 사실 사람을 만나도 몰랐던 영어 표현을 지나치면 내 것이 되지 않는데 이를 꾸준히 해낸 것이다.




  • - 정말 꾸준함 인정입니다.

  • = 제 장점이 꾸준함이에요. 이전에는 30 넣으면 30 나오니까 억울하기도 했는데 또 반대로 생각하니 30 넣으면 30이나 나오니 열심히 하면 되겠더라고요. 루틴 정해놓고 계속 하다보니 이렇게 습관이 됐어요. 사실 복사용지 한 장은 두께도 없는 것 같은데 쌓이면 정말 높아지잖아요. 직장 생활이나 인생이나 복사용지 쌓는 것 같아요. 어느 날 1년 만에 만난 유럽 SVP가 영어 정말 늘었다고 칭찬하는데 실감이 되더라고요. 나 늘었구나.



구글 인터내셔널 미디어·스토리텔링 디렉터 /사진 제공=정김경숙



  • - 이년 간 팀의 성과에도 진전이 있었나요

  • = 인터내셔널 미디어 담당이 기본 업무였는데 유튜브, 틱톡 등 인플루언서 담당에 팟캐스트의 스토리텔링을 담당하는 업무까지 늘어났어요. 팀원도 3명이 됐어요. 300%나 성장한 거죠.



이제 300% 성장한 팀과 함께 그의 역할은 무궁무진하게 늘어나고 있다. 구글에서도 지난 3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먼저 하이브리드(오프라인, 온라인 병행) 행사를 해냈다. 아직도 그의 머릿속은 여러 프로젝트로 차있다. 그는 언제 은퇴를 생각하고 있을까. “예전만 해도 40세에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40세가 너무 빨리 오더라고요. 50세는 더 빨리 왔고요. 이제 은퇴 시기를 따로 잡지 않아요. 다만 내가 후배들이 빨리 크는 것을 시기하는 때가 오면 은퇴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아직까지 후배들의 성장을 시기한 적이 없다는 것도 신기하다고 하니 구글의 원칙을 들려준다. 그는 “구글은 직원을 뽑을 때 당신보다 똑똑한 사람을 뽑을 것을 굉장히 강조한다"며 “100% 확신이 안 서면 그 자리는 비워두라고 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사실 은퇴를 늦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비처럼 찾아오는 번아웃과 보어아웃을 극복하는 것도 과제다. 그가 사회생활 후배들을 위해 몇 가지 조언으로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1. 체력 :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에게 사람이 모입니다. (실제로 그는 달리기, 트래킹, 수영, 검도 등을 하고 있다)

  2. 공부 : 직장생활에서 채우는 게 있으려면 공부가 필수입니다. 번아웃의 해결책일 뿐만 아니라 대학원을 하면 만나는 사람이 생기고 내가 일을 하다 궁금한 게 생길 때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는 경영학석사(MBA) 외에도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경희대 E비즈니스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서울과학기술대 디지털문화 정책학과 등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쳤다)

  3. 하고 싶은 것 찾기 : 매일 하는 게 똑같다고 생각한 지 일년이 되면 정말 문제입니다. 일단은 회사 내에서 부서 이동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는 데 집중하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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