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5년 내 반도체 中에 추월 우려…무전공 도입 등으로 인재·기술 확보를” [청론직설]

◆서승우 대한전자공학회장(서울대 교수)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 산업 전반 기술 인력 만성적 부족

전공별 모집, 땜질식 인재 육성으론 미래 수요 충당 못해

칸막이 허물어 잠재 인력 풀 확대하고 생태계 조성해야

초격차 기술 확보 절실…정부가 산학 연결 다리 역할을





올 1분기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시장에서 SMIC 등 중국 업체의 점유율(10.2%)이 처음으로 10%를 넘었다.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반도체 굴기’에 속도를 내며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대만의 TSMC는 삼성전자와의 점유율 격차를 더 벌리며 앞서가고 있다. ‘반도체 코리아’가 위기에 처했다는 경고가 잇따르자 정부가 인력 육성 및 규제 개혁 방안 등 대책을 내놓고 있다. 대한전자공학회장인 서승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1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인재 양성 프로그램은 미래 수요를 충당하기에 부족하다”며 “무전공 도입 등으로 대학 교육 시스템을 바꿔 기술 인재 풀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해 “정부 지원, 인력, 생태계 등 삼박자가 잘 갖춰져 있어 5년 안에 한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투자가 많이 필요한 장치산업이기도 하지만 기간산업이므로 정부의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고 돈만 투입한다고 해서 잘되는 게 아니다. 사람이 있어야 한다. 결국 교수·학생을 모두 포함하는 인력의 문제다. 마지막으로 인프라, 즉 생태계를 잘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떤가.

△지난 10년 동안 문제가 많았다. 우선 정부의 태도다. 반도체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이 하는 사업이고 그 기업들이 잘하고 있는데 정부가 신경을 많이 쓸 필요가 있느냐는 안이한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반도체 산업 지원에서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인력도 마찬가지다. 수도권 과밀 문제 등의 이유로 반도체 등 특정 분야에 대한 인력 확충에 굉장히 인색했다. 생태계 조성도 전적으로 대기업에 맡겨놓았다. 정부가 나서서 생태계를 만드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세 가지 측면을 모두 봤을 때 한국 반도체는 지난 10년 동안 정체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사이 중국이 무섭게 추격해왔다.

△정부 지원, 인력, 생태계 등 세 가지를 우리보다 훨씬 잘 갖추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현재 중국에는 인공지능(AI) 관련 칩을 설계하는 회사가 2000~3000개 정도 있다. 이 업체들 대부분이 정부가 뿌린 돈으로 투자해서 먹고산다. 우리나라는 5~10개 수준으로 알고 있다. 한마디로 게임이 안 된다. 출발점부터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중국이 우리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그 시간은 5년 정도로 보는데 그동안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리 팹리스(반도체 설계) 분야는 왜 이렇게 뒤처지게 됐나.

△팹리스 역할은 주로 대학에서 한다. 대학은 기업처럼 공정 장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론 위주로 가르친다. 학생들이 그 이론을 기반으로 해서 다양한 반도체 칩을 설계해본다. 파운드리 회사들은 이렇게 디자인된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설계에 대한 피드백이 이뤄지면서 학생들의 설계 역량이 향상될 수 있다. 이는 팹리스 활성화로 이어지면서 바람직한 생태계가 형성된다. 하지만 우리 여건은 열악하다. 학생들이 만든 샘플 제작을 국내 파운드리 회사에 의뢰하면 칩으로 만들어주는 데 6개월 이상 걸린다. 학교에서 보낸 샘플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들이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총생산 용량이 부족하고 산학 협력 마인드가 미흡한 탓이 크다. 국내 반도체 분야의 많은 교수가 샘플 제작을 대만의 TSMC 등 외국 업체에 의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반도체 인력을 빨리 교육시키려면 직접 설계한 칩을 만들어 테스트하고 보완하는 과정들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떤가.

△대만의 TSMC에 샘플을 보내면 6주 정도면 가능하다. TSMC는 전 세계, 심지어 중국에서 들어오는 주문까지 다 받아서 제품을 만들어준다. 위탁 생산은 언제, 어디서, 어떤 주문이 들어올지 모르는 사업이다. 그런데 파운드리 회사가 큰 거래처의 주문으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면서 그 물량만 처리하다 보면 대학이나 중소기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TSMC는 우선순위가 있더라도 대학 등의 의뢰도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라인을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산학 협력에 적극적이다. 대만 반도체가 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TSMC가 만들어놓은 반도체 생태계 안에서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도 생태계 관점에서 이미 잘 갖춰져 있다.





-정부가 반도체 인력 양성 계획을 발표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5월 말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4대 과학기술원을 중심으로 5년 동안 석·박사급 반도체 전문 인력 3000여 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미래 수요를 충당하기에 부족해 보인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 사회를 덮친 심각한 저출산 문제로 특정 분야의 인력 양성은 다른 분야의 인력 부족 사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제로섬 게임’에서 생기는 풍선 효과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반도체 말고도 배터리·바이오·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세계 정상급 경쟁력을 갖춘 산업 분야가 많다. 지금 우리 산업계는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만성적 기술 인력 부족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빅데이터·로봇·반도체 분야는 산업 전반에 파급효과가 크다. 정규교육과정 수료자만으로 수요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상황이다.

-만성적 기술 인력 부족을 해소할 방안이 있다면.

△인구가 절대적으로 줄어가는 현실에서 지금과 같은 칸막이 구조의 기술 인력 육성 전략은 산업계의 변화무쌍한 수요를 맞추지 못할 것이다. 정부 부처별로 시행 중인 인력 양성 사업들은 땜질식 조치에 불과하다. 특정 분야의 인력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 부랴부랴 공고를 내는 식이다. 실제 인재를 양성하기까지 4~5년의 시차로 인해 파급효과도 크지 않다. 대학 몇 곳을 정해 자금을 지원해줘서 몇 십 명 길러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역대 정부는 일회성 정책을 남발해왔다. 이제는 뒷북 인력 양성 방식에서 탈피해 잠재적 기술 인력 풀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산업 트렌드 변화에 따라 재교육을 통해 수요가 폭증하는 분야의 인력을 최단 시간에 양성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인력 양성을 위한 근본적 대책은 무엇인가.

△대학 교육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 계열별로 모집하는 것을 넘어 다소 극단적이지만 무전공 모집 방안까지 도입해 다(多)학제적 교육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세부 전공별로 선발하고 교육할 것이 아니라 1~2학년까지는 각 계열에서 제공하는 교양 및 전공 기초 과목을 두루 수강하도록 해야 한다. 3~4학년에 진입할 때 세부 전공을 정하고 졸업 요건을 충족한 경우 학사 학위를 수여하는 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다양한 기술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도와 융합 능력을 최대한 높일 수 있다. 산업 기술 인력 육성 전략도 잠재적 기술 인력 풀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대폭 보강해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는 신기술을 빠르게 습득해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응용 개발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잠재적 기술 인력 풀이 넓어지면 각 기업에서 현장 맞춤형 교육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전문가를 육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다른 전공 인력들이 필요한 분야로 입문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전직(轉職) 사다리 프로그램을 상시 제공할 필요가 있다. 대학 및 부설 연구소 시설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초격차 기술 확보도 중요한 화두다.

△최근 삼성전자가 3나노 기술을 공정에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것이 초격차다. 중국·대만 등 경쟁자를 따돌리기 위해 꼭 필요하다. 초격차 기술 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만 반도체는 3나노 같은 첨단 기술을 요구하는 분야도 있지만 이전 기술을 이용하는 부문도 여전히 많다. 자동차는 10나노 공정으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기술 초격차 확보 전략과 함께 기존 시장에서도 리드해나갈 수 있는 시장 유지 전략도 세울 필요가 있다.

-기술 초격차를 위해서는 정부·기업·대학 모두의 협력이 필요할 텐데.

△첨단산업 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정부가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야 한다. 시스템반도체의 경우 일종의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인 만큼 설계 회사 등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 팹리스 업체들이 자유롭게 시제품을 디자인해 짧은 시간 내에 양산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의 인프라 조성이 진짜 필요하다. 이 같은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훨씬 빨리 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 정부는 인력 양성과 인재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예산·세제 등을 지원하고 기업과 대학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He is…

1964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조교수, 프린스턴대 연구원 등을 거쳐 1996년부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9년부터 서울대 지능형자동차IT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올해 1월 대한전자공학회장에 취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공학자의 시간 여행’ ‘보안경제학’ ‘축적의 시간(공저)’ 등이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