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찾은 인천 서부산업단지, 1971년 설립돼 업력이 51년이 된 A사는 지난달 초 문을 닫았다. 높은 기술력으로 2000년대 초 산업자원부 장관상까지 받으며 우수 중소기업의 대명사인 명문장수기업에도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초 시작된 원·부자재 가격 급등으로 극심한 경영난에 빠지며 결국 지난달 폐업을 결정했다. 이 회사 맞은편에 자리한 또 다른 공장 앞마당에도 철제 틀이 녹슨 채 쌓여 있었다. 서부산업단지 한 관계자는 “올해 주물과 도금 등 뿌리산업 업체들체이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며 남은 기업들도 간신히 버티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제조업 근간인 뿌리산업이 최근 2년 동안 매출규모가 12조원이 증발하며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 뿌리산업으로 꼽히는 주물과 열처리, 도금, 금형, 용접 업종의 중소기업들이 잇따라 폐업하는 지경이다. 최신 장비를 앞세운 해외 업체들과의 수주 경쟁에서 밀리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매출 실적이 연동하는 제조업 전반에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가 내놓은 ‘2021년 뿌리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국내 뿌리산업의 총 매출액은 2020년 말 기준으로 152조7233억 원을 기록했다. 2018년 165조2385억 원에서 2019년 162조3466억 원으로 매출이 3조 원이 줄어든 후, 2020년 들어 9조 원이 더 감소해 2년 동안 뿌리산업 규모가 12조 넘게 쪼그라들었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매출이 가장 많이 줄어든 업종은 소성가공으로 2018년 45조547억 원에서 2020년 38조8637억 원으로 6조1910억 원이 줄었다. 다음으로 용접 업종이 2년 동안 8조8515억 원이 감소했다. 표면처리도 2018년 25조6590억 원에서 2020년 22조8878억 원으로 2년간 2조7712억원이 사라졌다. 매출 감소 폭이 제일 큰 세 업종만 2년 평균 5조9379억 원의 매출이 날아갔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뿌리 산업의 큰 문제는 갈수록 영세해지고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업계 전반의 기초 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뿌리 산업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작업 환경을 개선하고 젊은 인력의 유입을 활성화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매출 감소의 주된 원인은 해외 업체들에 비해 노후화된 장비 경쟁력 탓이다. 뿌리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베트남 등지에서 대규모 신규 설비를 앞세운 업체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노후된 국내 뿌리 산업이 수주 물량을 잃어가는 추세”라고 했다.
매출 하락으로 뿌리산업이 흔들리면서 대규모 인력 유출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2018년 말 뿌리산업 전체 종사자 수는 55만 5072명이었지만 2019년 51만 6697명, 2020년 49만 936명으로 2년새 6만명이 넘는 종사자가 업계를 떠났다. 단조업체 대표 B씨는 “영세한 업체들의 경우 일거리가 없기 때문에 인력을 감축할 수밖에 없다”며 “정말 힘든 경우에는 공장 가동을 중지하거나 아예 매각해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처럼 뿌리업종이 매출 감소와 인력 유출 등 전방위적 고충이 가중되면서 산업 전반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종 제품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뿌리산업의 특성상 경쟁력 약화는 결국 국내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다. 이종길 한국금속열처리공업협동조합 전무는 “뿌리 산업은 아주 기초적인 공정이라 서로 긴밀히 연결돼있어 한 업종이 무너지면 다 같이 쓰러지는 구조”라며 “지금 같은 경제 상황이 지속된다면 제조업 기반 중소기업은 전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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