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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까지 일하는 세대, 공존 능력이 경쟁력…불행한 사람의 기술은 배척” [청론직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불안의 시대’ 건너려면 자신의 ‘적정한 만족감’ 알아야

젊은 직원들, 불행한 선배 맞닥뜨리니 희망 잃고 퇴사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선배 세대의 직무유기

‘느슨한 관계’를 지향하는 후속 세대의 특성 이해해야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가 27일 대학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적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정한 강도의 행복감과 만족감을 적정한 빈도로 가져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인류는 무수한 생존의 위기에도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남았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위기 등 생존을 위협하는 도전에 굴하지 않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불안의 강’을 건너며 ‘적정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근본적인 의문도 품게 됐다. 강제된 고독의 시간은 우리 스스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타인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수많은 강연과 저서를 통해 ‘시대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가 27일 서울경제와 만나 적정한 삶을 위한 지혜를 들려줬다. 김 교수는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긴 인생을 충만하게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라며 “자기 삶의 적정한 만족감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행한 사람의 기술은 아무리 좋아도 본받고 싶지 않다”며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식과 이 사회에 대한 직무 유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인구절벽으로 1970년생 전후 세대는 적어도 80세까지는 일해야 한다”며 후속 세대의 룰에 맞춰 공존하는 능력이 경쟁력이라고 덧붙였다.



-행복을 화두로 수많은 강연을 하면서 ‘적정한 삶’을 키워드로 제시했는데.

△인간의 기대 수명이 120세, 130세까지 늘어나면서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 됐다. 극대화된 삶, 혼을 불태우는 삶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자동차를 시속 200㎞ 속도로 몰아 부산까지 갈 수는 있지만 베이징까지 운전해서 가려면 적당한 속도 조절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적정하다’는 표현이 모호하지 않은가.

△극대화된 삶에는 대부분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모범 답안이 있다. 성적이나 직위·재산처럼 구체적이다. 하지만 ‘적정하다’는 개념은 개인 차가 크다. 내가 적정하다고 느끼는 정도의 만족감은 나 자신밖에 모른다. 다른 누구도 알려줄 수 없기에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 자신의 적정한 삶을 무시하고 남이 만든 기준대로 살아가기에는 인생이 너무 길지 않은가.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30만 년 동안 찾지 못한 ‘적정한 삶’을 규명해야 하는 과제가 2022년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셈이다.

-적정한 삶의 기준을 찾는 방법이 있는가.

△구체적인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 부자의 기준을 예로 들어보자. 나의 경우 주차 요금을 아까워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 자유다. 주차 요금이 아까우면 불법 주차를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안해진다.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는 상태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으면 굳이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게 된다. 예전의 나와 비교하면서 좀 더 나아진 현재에 만족하게 되고 마음도 편해진다.

-자신의 만족감 정도를 알아내는 게 참으로 어려울 텐데.

△만족감의 하한선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경험의 종류와 크기·빈도를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예로 들면 임진왜란이 벌어진 7년간 약 2539일의 기록을 담고 있다. 장군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기를 써가는 루틴을 통해 정신을 무장하고 리더로서의 불안을 다스렸다. 일기에 쓴 내용이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날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날씨가 어땠는지 등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이 쌓여서 ‘퍼스널 빅데이터’가 되는 것이다. 세상 속의 빅데이터는 평균치만 있지 나만의 것은 없다. 그날그날의 사소한 일상을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패턴을 파악하고 자신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가 27일 대학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당신이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않는 것은 자식에 대한, 사회에 대한 직무 유기”라고 말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만족은 크기가 아닌 빈도라고 하셨는데 ‘소확행’과는 무엇이 다른가.

△트라우마를 남길 정도의 큰 사건이 아닌 이상 우리의 뇌는 어떤 감정이든 크기보다 빈도를 중요하게 기억한다. 100점짜리 행복 하나보다 10점짜리 행복 10번이 더 강력하다는 얘기다. 강도가 너무 약한 행복은 효과가 거의 없다. 적정한 강도의 행복감과 만족감을 적정한 빈도로 가져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소확행과도 다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하는데 소소하다는 개념이 매우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곱게 나이 들어가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희망인데 어떻게 해야 이룰 수 있을까.

△추한 사람은 자신의 패를 잘 숨긴다. 반면 곱게 나이 드는 사람은 자신의 패를 보여줘도 주책 맞아 보이지 않는다. 흔히들 자기 패를 잘 숨기는 게 나이든 사람의 기량이자 인생의 지혜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대단한 오해다. 나이 들면서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자신도 이기면서 상대방도 이기게 만드는 ‘윈윈 역량’이다. 젊은 세대가 좀처럼 갖추기 어려운 능력이다. 윈윈을 잘 하려면 자신의 패부터 까야 하는데 이는 솔직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보통 사람들은 선택적으로 솔직한 경향을 보인다.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이득이 있을 때만 솔직한 것이다. 자신의 의도를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패를 보이려면 ‘진정성’이 수반돼야 한다. 패를 보여주면서도 주책 맞지 않고 외려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위트까지 갖췄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어른이 될 것이다.

-선배 세대의 역할이 막중한 것 같다.

△후속 세대가 선배 세대에게 가장 빨리 배우는 것이 ‘가성비 좋은 반칙’이다. 거짓말이나 속임수 같은 것들이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해지려면 정공법을 쓰면서도 행복한 선배들, 반칙을 쓰지 않으면서도 행복한 부모들이 많아야 한다. 행복하지 않은 선배나 부모에게서는 어떤 것도 배우고 싶지 않은 법이다. 불행한 사람의 기술은 아무리 좋아도 본받고 싶지 않다. 그래서 강연할 때마다 당신이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않는 것은 자식에 대한, 사회에 대한 직무 유기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게을리한다.

-직장에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근 몇 년 동안 소위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에서 젊은 직원들의 퇴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대부분 보수가 높고 기업 문화도 좋고 정년까지 보장되는 회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그 회사를 십수 년 이상 다닌 선배들이 불행해 보이기 때문이다. 기대를 품고 입사했는데 정작 맞닥뜨린 선배들이 불행해 보이니 희망이 송두리째 사라진 것이다. 조직을 이끌고 있는 리더들이 고민해야 할 포인트다. 말로만 행복한 조직 문화를 떠들게 아니라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후배들이 봤을 때 나는 행복한 선배인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현재 나의 삶이 후배들에게는 미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세대 갈등도 심각해지고 있는데.

△관계를 맺는 방식이 완벽하게 달라졌다는 점을 기성세대가 받아들여야 한다. 강력한 결속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은 ‘강도 10’인 관계 3개를 맺는다면 느슨한 관계를 지향하는 후속 세대는 ‘강도 3’인 관계 10개를 맺는다고 보면 된다. 강도의 총합은 똑같이 30이지만 강도와 개수가 다르기 때문에 접근하는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기성세대가 회식을 3차까지 하면서 강력한 결속력을 요구하는 반면 젊은 세대들은 1차에서 끝내기를 원한다. 회식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느슨한 관계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후속 세대에 맞춰야 한다는 건가.

△기성세대든 후속 세대든 조직 내에서 ‘여럿 중의 하나(one of them)’다.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되는 점은 후속 세대가 시간에 있어서는 강자라는 사실이다. 기성세대의 전성기는 지나가고 있으며 후속 세대의 전성기는 다가올 미래다. 게다가 인구절벽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면서 1970년생 전후 세대는 적어도 80세까지는 일해야 한다. 최소 20년 이상 후속 세대의 룰에 맞춰가야 한다. 후속 세대와 얼마나 잘 공존하면서 살아가느냐가 기성세대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열쇠가 될 것이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는 한국에 유리한 환경이 될 수 있는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이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을 했는데 그 명제가 딱 맞아 떨어지는 곳이 바로 한국 사회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관계주의가 강하기 때문이다. 가령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나는 자상하신 부모 아래서 몇 남 몇 녀 중 몇 째로 태어났다’며 ‘관계’부터 시작한다. 반면 집단주의가 강한 일본 사람들은 조직 논리에 무조건 따르는데 소속 집단이 다르면 어울리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 기업에서는 임원들이 ‘어떻게 하면 젊은 직원들과 소통할 수 있느냐’고 물으며 관계를 고민한다. 관계주의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기 때문이다. 집단주의는 잡음은 적지만 문제를 회피하는 성향이 강하다. 제대로 싸우지 않고 문제를 회피하는 게 나쁘다. 싸운다는 것은 문제를 직면한다는 뜻이며 잘 싸우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집단주의가 성장 동력이 됐지만 창의력과 다양성이 요구되는 21세기 생태계에서는 관계주의가 훨씬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매뉴얼 없이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해야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한 만큼 한국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고 본다.

◆He is…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를 받으면서 인간의 의사 결정, 문제 해결, 창의성 등에 대해 연구했다. 2006년부터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어쩌다 어른’ ‘세바시’ 등 방송 프로그램과 대학·기업에서 특강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지혜의 심리학’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적정한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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